[신앙 Q&A] 구속사적 파노라마 < 창세기 >

기사입력 2013.01.01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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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의 구속사적 파노라마 1 < 창세기 >



우리는 앞으로 이 곳을 통해서 구약의 책별 개관(panorama)을 하나님의 구속 역사적인 관점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창세기의 구조적인 특징은 11번 나타나는‘톨레도트’(대략, 계보, 세대, 2:4; 5:1; 6:9; 10:1; 11:10; 11:27; 25:12; 25:19; 36:1; 36:9; 37:2)이며, 전체적인 내용을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다. 1장~11장까지는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으로서 홍수와 바벨탑 사건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를 악에서 보존하시는 소극적인 사역의 방식을 나타내는 데 비해 12장 이후는 인류를 구속하시려는 하나님의 적극적인 방법들을 소개한다. 즉 한 사람 아브라함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를 새롭게 하시는 역사를 시작하시려는 새창조 사역을 보여준다. 이런 의미에서 창조와 구속은 서로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두 번째 부분인 12장~50장은 계보와 연관하여 세분화 할 수 있는데 특별히 씨에 대한 약속의 성취와 관련된다. 창세기 내용을 구분하면 창조기사(1:1~2:3), 인간창조와 타락과 심판(2:4~11:26), 아브라함과 이삭(11:27~26:35), 야곱과 요셉(27:1~50:26)을 나눌 수 있다.

☞ 창 조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신 기사로 창세기는 시작된다. 하나님의 어떠하심을 그분의 사역을 통해서 자연스레 알도록 한다. 하나님은 누구신가? 태초에 하늘과 땅을 만드신 분이시다. 말씀으로 만물을 만드신 전능하신 분이시다. 이 창조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적 행위요 인간이 흉내 낼 수 없음을 보여준다. 엿새 동안 창조하시고 7일에 안식하셨는데 이 안식은 힘들고 피곤하여 안식하신 것이 아니라 완성된 피조 세계를 보고 만족스럽게 영광을 취하시는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그의 형상을 따라 만드신 사람에게 말씀하시고 교제하시는 인격적인 분이시다. 에덴동산을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드신 사람에게 맡기시고 하나님을 대리하는 통치권을 허락하셨다.

☞ 인 간

사람은 다른 피조물과는 달리 특별히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흙으로 빚어 만드셨다. 하나님을 닮았다는 것은 하나님과는 전혀 다른 존재라는 것과 하나님이 자신의 모든 것을 주시고 맡기며 인간을 사랑하셨듯이 인간도 인간의 모든 것을 동원하여 하나님을 위한다는 것을 말한다.

☞ 타 락

그러나 뱀의 형상을 한 사탄의 유혹을 받아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과실을 먹어 범죄하고 만다. 그 결과 여자는 해산의 고통을, 남자는 노동의 대가로 살아가게 되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나 더 이상 그 언약을 누릴 수 없게 되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고 하나님을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할 인간이 죄로 말미암아 자기를 위해서만 사는 이기적인 존재로 변질되었으며 하나님의 형상을 상실하게 되었다.

☞ 구 속

죄에 빠진 인생을 하나님께서 찾아오신다. 창세기 3장15절에서 뱀과 여인의 후손 간에 적대감을 두심으로 뱀은 여자의 후손의 발꿈치를 상하게 하고 여자의 후손은 뱀의 머리를 깨뜨리게 될 것을 계시하신다. 여자의 후손은 일차적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궁극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를 상징한다. 사탄은 여자의 후손에게 해를 끼치지만 여자의 후손은 사탄을 완전히 깨뜨릴 것이다. 구속은 댓가를 치르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행위를 말한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우리 죄의 댓가로 지불하시고 교회를 구원하실 것이다. 창세기에 나타난 하나님의 구원계획은 메시야 사상에 관한 점진적인 계시의 특성을 띠고 있다. 창세기에서 메시야 곧 그리스도는 혈통적으로 여자의 후손(창3:15), 셋의 계열(창4:24), 셈의 후손(창9:27), 아브라함의 씨(창12:3,22:18), 이삭의 후손(창21:12), 야곱의 후손(창25:23), 그리고 유다 지파의 후손(창49:10)으로 태어나실 것이라고 예언되었다. 

메시야는 창세기의 인물들과 사건들 속에서 예표적(모형적)으로 나타난다.

‣ 첫 사람 아담은 장차 새 창조의 머리로서 마지막 아담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표상이다. 타락한 아담과 하와에게 무화과 나뭇잎 대신 짐승의 가죽으로 옷을 지어 입힌 사건(창3:21)은 장차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인들에게 칭의(稱義)의 옷을 입혀 주실 것에 대한 모형으로 보는 학자들이 적지않다.

아벨과 아벨의 제사를 하나님이 받으시고 자기는 받지 않으시는 일로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인 사건(창4:4-8)은 단순한 살인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여자의 후손 곧 메시야의 오심을 방해하는 사건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구속역사는 계속된다. 아벨이 죽자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메시아 언약을 성취하시기 위해 아벨을 대신 셋을 허락하셨다. 사탄은 방해하나 하나님은 구원 역사를 신실하게 이루어 가신다.

셋의 아들 에노스는 처음으로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거룩한 신앙공동체를 형성하였다. 이렇게 형성된 거룩한 문화는 에녹 때에 절정을 이루었으나 에녹의 아들 므두셀라가 죽던 해에 노아의 홍수 심판이 일어난다.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승천하였다. 이 사건은 하나님께서 에녹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 천국의 실재를 보여주시는 것이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성도들을 위로하기 위함이다. 하나님과 동행하며 사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늘의 도성을 향하게 되어 있다.

‣ 노아의 방주
(창7:6-24)는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을 예표하기에 부족함이 없으며, 노아의 노래(9:25-27)속에서 메시야 대망 사상이 면면히 흐르고 있다. 신약에서 사도 베드로는 노아 홍수의 의미를 세례와 연결하여 교회론적으로 이해한다(벧전3:19). 노아 홍수의 물과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할 때의 물 그리고 신약시대 주님의 몸 된 교회에서 세례의 물은 동일한 주제로 통시적으로 연결된다. 곧 하나님의 택한 백성에게 세상으로부터의 분리와 참된 생명의 공급이 이루어짐을 계시를 통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노아언약은 셈의 장막을 통해 하나님의 거처가 형성되며 그것은 곧 세상으로부터 분리될 교회의 설립을 예표하고 있다.

노아 가족이 홍수가운데 살아난 것은 단순히 구사일생한 한 가족의 생존스토리가 아니다. 하나님은 창세기 3장15절에서 ‘그 여자의 후손’을 통해 회복하게 될 영광을 언약하셨고 이제 노아와 그 자손을 통해 그 뜻을 이루실 계획을 세우셨다.

하나님의 관심은 노아의 가족이 아니라 언약된 여자의 후손을 통한 하나님의 영광의 회복에 있다. 그러므로 노아홍수 사건에서 중심인물은 노아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메시아이시다.

‣ 바벨탑 사건
노아홍수를 경험한 인간들은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또 다시 여호와 하나님을 거부하고 자기 세계를 든든히 하려했다. 하나님을 떠난 죄인의 마음에는 언제나 하나님 없이 살아보려는 오만함이 배어 있는 것이다. 메시아 없는 인생을 누리려 하는 악한 마음이 바벨탑을 쌓게 했다. 거기에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메시아를 거부하는 인간들의 악함이 자리하고 있다. 이에 하나님은 언어를 혼잡케 하는 심판을 행하셨다. 하나님의 백성과 메시아를 위한 구속 사역의 방편이었던 것이다.

장차 하나님의 경륜을 따라 언약이 성취되면 나라와 피부와 문화의 장벽을 넘어 인간의 죄악에 대한 저주와 심판으로 주어진 언어의 장벽은 없어져야 할 것이었다. 그래서 오순절에 사방에서 민족들이 몰려와 성령 세례를 받음으로 각 사람이 자신의 난 곳 방언으로 하나님의 위대한 일을 듣게 된 것이다(행2:11). 그러나 그 때가 오기까지 인간은 바벨의 심판 후에도 계속 타락해 갈 것이고 하나님은 타락한 민족 중에서 한 사람 아브라함을 택하여 하나님 나라의 역사를 이루게 하신다.

‣ 아브라함과 이삭
하나님께서는 구속사적 경륜 가운데서 아브라함을 부르심으로써 언약을 구체화하셨다. 아브라함 언약은 창3:15의‘여자의 후손’을 보내시겠다는 언약과 연장선에 있고 노아의 계보와 연관되어 있으며 그 이후 다윗 왕국과 연관되어 있다. 그리고 이 땅에 오실 임마누엘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고 있다. 하나님은 이 아브라함에게 땅과 자손을 약속하셨다(창12:1~2). 이 땅과 자손은 앞으로 세워지게 될 왕국과 직접 연관된다. 그 자손 이삭만이 그의 왕국을 위한 백성의 조상이 되고, 이삭에게서 난 두 아들 중 야곱의 자식들만 그 왕국을 위한 백성들의 조상으로 삼았다. 이렇게 해서 하나님은 약속하신 땅과 백성 그리고 모세를 통해 주신 율법으로 이스라엘 왕국을 세우시게 된다.

아브라함이 복의 근원, 복이 된 것은 이 땅에 사는 삶이 형통하거나 더해가는 것과는 별 상관이 없다. 창12장에 약속한 복은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게 되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신 것은 일차적으로 는 그의 후손들을 위한 것이지만 궁극적으로는 하나님과 그의 언약으로 말미암은 메시아와 그의 왕국(신약 교회) 때문이다. 아브라함이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오는 길에 만난 살렘 왕이요 하나님의 제사장인 멜기세덱의 축복행위(창14:18-20)는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적 사역을 예표 한다고 히브리서 기자는 증거하고 있다(히 7:15-17).

아브라함이 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번제로 바치려했던 사건은 아브라함의 단순한 충성심, 결단력을 말하지 않는다. 그러면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이삭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늘의 별과 해변의 모래처럼 많은 자손들을 허락하신다는 약속의 자녀들 가운데 있는 인물이다. 아브라함에게 이스마엘도 있었지만 하나님은 이삭을‘네 사랑하는 독자’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이삭을 바치는 모리아 산은 하나님께서 주시마고 하신 가나안 땅 중에 중심적인 의미를 지닌 산이다. 모리아 산 위에는 장차 예루살렘 성전이 건립될 것이다. 그 곳에서 숱한 어린 양이 참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가 오실 때까지 바쳐져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독자 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제물로 바치게 하신 일은 장차 갈보리 산에서 인류를 위해 제물이 되실 그리스도를 보여 주는 예표적인 사건으로 보인다(창22:1-19).

‣ 야곱과 요셉
야곱과 그의 아들들의 부도덕하고 불신앙적 모습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구원역사는 당신의 경륜을 따라 친히 이루어 가신다. 하나님은 속이고 속는 생애를 살던 야곱을 얍복강 나루에서 만나주시고 그에게 이스라엘이라 불러주신다. 아버지의 아내인 서모와 간통한 르우벤, 그 일에 대해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는 가족들, 야곱의 딸 디나가 강간을 당하자 디나의 형제들이 벌인 살인극, 자기 며느리 다말과 간음하여 쌍둥이를 낳은 유다, 요셉을 죽이려다 노예로 팔아버린 형제들, 그런 자들이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조상들이다. 하나님은 인간의 윤리와 도덕, 어떤 수준에 의해 언약을 이루어 가시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홀로 거룩한 구원역사를 이어 가신다. 피신 중에 지치고 초라한 야곱에게 나타나 하늘의 사닥다리는 거룩한 하나님과 죄 많은 인간을 이어 주는 그리스도의 중재(仲裁) 사역을 예표한다(요1:51).

요셉의 인생은 참으로 놀랍다.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다 형들의 미움, 자신의 꿈 해석으로 죽음의 위협과 노예의 비참한 삶, 억울한 누명을 쓰고 죄수의 신분으로 감옥까지 내려갔던‘꿈꾸던 자’가 꿈을 해석하는 자가 되어 애굽의 총리가 된다. 이 모든 것은 특별한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경륜에 따른 것이다. 하나님은 그를 단순히 출세시킬 목적으로 인도하신 것이 아니다. 그것은 야곱의 가족을 애굽으로 불러오심으로 큰 민족을 이루어 약속하신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시기 위해서였다. 하나님의 관심은 메시아와 그 왕국을 세울 통로인 이스라엘 민족이었다. 하나님은 메시아 언약을 경이로운 방법으로 이루어 가시는 것이다. 창세기가 마무리되면서 야곱을 통해 예언된 유다 지파의 왕권은 그리스도의 왕권을 예표한다(창49:10).

☞ 나가면서
구속사적인 관점에서 창세기는 인간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역사의 과정과 방법을 계시해 주고 있는데 특히 그리스도를 향해 점차적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이천년 전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다시 오고 계시다. 그분의 몸 된 교회와 성도는 오늘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여전히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추구해야 한다(마6:33).
부경 성경 연구원(http://www.bkbs.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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