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기독교 교육현장에서 죽음이해및 죽음교육의 필요성(1)

기사입력 2018.08.20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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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호목사사진.jpg▲ 필자는 죽음교육연구소 소장으로 섬기고 있다.
 살아있는 한 죽음보다는 삶에 더 집중합니다. 의식의 흐름이나 생각을 사로잡아 해부해 보면 살아있는 순간 순간에 더 예민하게 도 충실하게 반응하며 살고 있습니다.

가끔 질문을 받습니다. 목사님, 무엇을 하며 살면 좋을까요? 중년을 넘어선 이들은 생존 자체에 위협을 받고 있기에 미래가 막막하고 힘드니 물어오는 질문입니다. 그때마다 이렇게 답하곤 합니다. 

'당신이 결국 무엇인가는 할 것입니다. 건강을 완전히 잃거나 죽지 않는 한 당신은 무엇을 할겁니다. 문제는 어떤 사람으로 그것을 할 것인가에 대하여 고민을 많이 해봤으면 좋겠습니다.' 

물질적 환난이든, 생물학적 환난이든, 본의 아니게 어려움을 맞이 합니다. 누구든지 지난 세월동안 자신이 어떤 사람으로 살아왔는지 큰 그림속에서 소소한 순간들을 돌아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드물게는 무엇을 할것인가 보다는 어떻게 살 것인가, 또는 어떤 사람으로 무엇을 하면서 살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고민을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봅니다. 참 잘하는 자기 돌봄입니다. 건강한 분들입니다.  
죽음의 문제도 이와 같은 접근이 필요합니다. 사람은 하루 하루 한순간 한 순간을 살아냅니다. 살아내고 난 삶은 뒤로 서서히 물러갑니다. 시간으로 보면 과거에 속한 삶의 자리에 머물게 됩니다.  

하루를 살고 우리는 "오늘 하루도 잘 살았다, 또는 그저 그랬다, 영 아니었다" 는 등등의 평가를 합니다. 그런데 대개는 하루 살았다는 것만 생각하지 하루 죽었다고는 잘 생각하지 않습니다.  

흐르는 시간으로 볼때, 80년 살 생애라면 그중에 하루가 없어진 것이니 하루 죽은 셈이기도 한 것입니다. 결국 오늘 잘 살아낸 다는 것은 오늘하루를 올바르게 죽었다는 것을 의미이기도 합니다. 

마치 손바닥의 양면 처럼 삶과 죽음은 붙어 있는 셈입니다. 그런의미에서 삶에 관한 생각과 죽음에 관한 생각은 병행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삶의 질, 존재의 가치, 미래를 더 풍성하게 소망할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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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은 죽음을 생각하기 싫어합니다. 어쩌면 이게 죽음이 가진 음모이기도 할 겁니다. 죽음은 자신을 철저히 숨기고 마지막날 사람들을 어둠의 골짜기로 갑자기 데려가기위해 은혜, 엄폐하고 존재하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전서에서 죽음의 화살을 찾습니다. "죽음아! 네 쏘는 살이 어디있느냐? " 죽음을 그냥 내버려 두지 않고 죽음이 쏜 살을 찾습니다.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그것이 어디에 박힐지 깊은 관심사를 가지고 죽음을 호명합니다.  

저는 바울이 사도로서 삶과 죽음에 관한 깔끔한 모델을 제공하시는 분이라고 확신합니다. 바울은 사망의 쏘는 살은 죄와 율법이라고 그 정체를 드러냅니다. 사망의 화살은 죄와 율법의 과녁을 향해 날아 든다고 통찰해 내는 것입니다.  

죄와 율법에 포로가 된 사람들은 죽음을 죽이시고 사망을 사망시킨 그리스도 앞에서 자신을 숨깁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고 동산수풀에 숨어있었던 것 처럼 그렇게 수치와 부끄러움으로 인해 자신을 은폐합니다. 이미 죽음의 포로가 되었던 셈이지요. 

교회된 성도라면 죽음을 드러내야 합니다. 죽음의 정체, 사망의 정체를 완전히 드러내야 부활에 참여하는 즐거움을 맛볼수 있습니다. 또 하나님이 설계하신 멋진 삶을 살수 있습니다. 부활생명을 가지신 주님께서 사망을 결박하셨기에 사망의 정체를 더 명징하고도 정확하게 드러내야 합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죽음에 대한 공개와 이해, 그리고 구체적인 가르침, 즉 교육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공과에서 인간의 죽음을 다루어야 합니다. 설교에서도, 성경공부에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어린이도 죽습니다. 청소년도 죽습니다. 청장년도 어느날 갑자기 목숨을 잃습니다. 노인들은 물론입니다. 모두가 맞이할 죽음을 올바르게 배우지 않고 덮어놓고 산다는 것은 뭔가 단단히 잘못된 것입니다. 

교회교육에 있어서 죽음이해및 죽음교육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성도는 죽음을 이기신 우리주님의 몸이니 더욱 부활 생명을 가진자로서 자신이 맞이 할 죽음의 정체에 대하여 적나라하게 이해해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서 그리스도의 몸으로,교회로 신부로 자신의 신분과 정체성과 처지와 소망스런 미래를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죽음과 사망, 이별과 애도, 몸의 죽음, 정신의 죽음, 영적인 죽음, 문화적 죽음, 생체적 죽음, 심리적 죽음, 사회적 죽음, 자기살해... 수많은 죽음의 정체를 이해하고 올바로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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