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변산 Sunset in My Hometown, 2017

기사입력 2018.08.03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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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산 
Sunset in My Hometown, 2017

변산-포스터.jpg
장르 : 드라마
제작 : 한국

시간 : 123분
개봉 : 2018 .07.04
감독 : 이준익
주연 : 박정민(학수), 김고은(선미), 신현빈(미경), 장항선(학수 아버지), 고준(용대)



“괴물과 싸우다 보면 자신도 괴물이 되어간다.”고 니체가 말했다. 사람은 자신이 싸우는 대상을 닮아가기 마련이다. 왕정을 몰아내고 공화정을 세운 프랑스 혁명은 단두대를 세워 수많은 사람을 처형했다. 찰스 디킨스는 그 위험을 자신의 책 ‘두 도시 이야기’에서 풀어냈다. 과격한 혁명일수록 과격한 폭력을 동반하기 마련이다. 공산주의 혁명을 완수한 구 소련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처형했는지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조지 오웰 역시 공산주의 지도자들의 한계를 동물농장에서 그렸지 않은가? 자신들이 그토록 싫어했던 군주들의 모습을 그들은 정확히 닮아 있었다.

변산의 주인공 학수는 고향이 지긋지긋했다. 그래서 떠났다. 서울에서 그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단칸 고시원에서 지내며 살아간다. 그는 유명 래퍼를 꿈꾸며 연습에 몰두한다. 배고픔과 외로움도 그의 꿈을 막을 수는 없다. 그는 보란 듯 성공하고 싶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본선에서 계속 탈락이다. 6년 째 학수는 ‘쇼미더머니’라는 래퍼 배틀에 참가하지만 번번이 탈락이다. 이 쯤 되면 포기할만 하지만 래퍼라는 꿈은 갈 곳 없는 학수의 마지막 희망이다. 이번에도 본선에서 아쉽게 탈락한 학수는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아버지가 뇌졸중으로 쓰러져서 입원해 있는데요, 보호자시죠?”
운명의 장난일까? 그렇게 가기 싫었던, 아니 보란 듯 성공해서 금의환향하고 싶었던 학수는 어쩔 수 없이 고향으로 향하고 아버지가 입원해 있는 병원으로 간다. 그러나 아버지를 본 순간 학수는 오히려 분노가 치밀고 거친 말들을 쏟아낸다. “도대체 아버지가 나한테 해 준 것이 뭐가 있데요? 네? 말 좀 해 보쇼? 지금도 내 발목을 잡고 있지 않냐고요?”

변산1.jpg▲ <사진출처 : 네이버영화>
우리는 학수의 구구절절한 사연을 이후 만나게 된다. 그렇다. 아버지는 학수에게 증오의 대상이다. 한 때 변산 일대의 건달이었던 아버지는 학수를 돌보지 않았다. 아니 가족을 돌보지 않았다. 그러던 중 어머니는 불치병에 시달렸고 제대로 치료도 하지 못한 채 돌아가셨다. 그 장례식에 아버지는 오지 않았다. 수배 중이었던 아버지는 경찰이 진 치고 있는 장례식장에 올 수 없었다. 학수는 그 아버지가 너무 싫었다. 아니 증오했다. 나는 저런 아버지가 절대 되지 않으리라 다짐하고 또 다짐했었다. 그리고 아버지와의 인연을 끊고자, 아니 고향에서의 아픈 기억을 지워내려고 서울로 무작정 향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아버지가 지금 학수의 앞에 있다.

아버지만이 아니다. 학수는 자연스레 고향 친구들과 조우한다. 그러나 그 친구들도 반가운 존재들은 아니다. 우선 그의 친구들은 고향을 지키며 지극히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다. 카 센터를 운영하는 친구, 양식장을 운영하는 친구, 그리고 군 사무소에서 9급 공무원으로 있는 친구, 학수에게는 구질구질한 기억들이다. 그가 그토록 싫어했던 고향의 모습이자, 벗어나고 싶었던 모습들이다. 그가 학창 시절 썼던 싯구처럼 ‘내 고향은 폐항. 가난해서 보여줄 건 노을밖에 없네.’ 고향은 학수에게 버리고 싶은 모습들이다.

그러던 학수에게 다가온 첫 사랑 미경, 학창 시절 좋아했던 감정들이 다시 살아나면서 학수는 상경을 포기한다. 미경은 고향에서 피아노 학원을 운영하는데 여전히 아름다워 학수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러나 어디 인생이 만만한가? 미경을 둘러싼 원준 선배와 친구 용대와의 치열한 쟁탈전이 벌어진다. 게다가 원준은 그 예전 학수의 학교에 교생으로 있었고, 자신의 시를 도용해서 상을 받고 그것을 계기로 기자가 되어 있지 않은가? 용대는 예전 학수에게 늘 얻어맞던 친구인데 지금은 변산에서 건달로 자리잡고 있다. 학수의 인생이 점점 점입가경이다.

영화의 후반부는 이 얽히고설킨 관계를 학수가 풀어나가는 과정이다. 맞닥뜨리는 과정이다. 달리 말하면 학수의 성장기다. 잊고 지냈던 아니 떨쳐 내고 싶었던 고향의 여러 관계를 다시 만나며 그는 성장해 나간다.

그렇게도 보기 싫었던 아버지, 미워했던 아버지를 학수는 지긋지긋할 정도로 함께 할 수 밖에 없다. 병실에 누워있는 아버지에게 유일한 보호자니 어쩔 도리가 없다. 그러나 이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인해 학수는 아버지를 달리 보게 된다. 아니 받아들이고 이해하게 된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는 아버지를 끌어안는다. “이놈아, 네가 날 미워하는 것은 나도 안다. 그래서 나 때문에 그렇게 사는 거냐? 아니야. 네 놈이 나에게 복수하고 싶거든 잘 살아라. 보란 듯 잘 살아가는 게 이 아비에게 하는 최고의 복수야.”
 
자신의 시를 훔쳐 출세한 선배 원준도, “예전에 네가 나를 많이 때렸지? 이제 네가 좀 맞아야겠다.”라고 덤벼드는 용대도 학수는 넘어서야 했다. 처절하게 맞닥뜨리고 싸워서 넘어서야 했다. 그건 피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었다. 맞닥뜨리고 부딪혀서 깨어지고 쓰라리며 넘어서야 하는 과거이자 자신의 모습이었다. 이 과정을 통해 학수는 제대로 된 가사를 쓸 수 있고 최고의 래퍼가 될 수 있다. 그에게 고향은 성장통이자 통과의례였다.

괴물과 싸우지만 괴물이 되지 않은 방법이 있다. 그 괴물을 사랑하는 것이다. 끌어안는 것이다. 싸움은 끝이 없고 미움도 끝이 없다. 오직 사랑만이 끝을 낸다. 원망의 관계를, 저주의 관계를, 마음 속 응어리를 풀어낸다. 달리 방법이 없다. 그래야 성장한다. 자유를 누린다.

그 예전 니체는 십자가를 나약하다고 보았지만, 아니다. 십자가야 말로 강력하다. 예수께서는 십자가라는 방식을 통해 괴물을 넘어서셨다. 괴물과 싸우셨으나 괴물을 넘어서셨다. 그것은 곧 괴물을 사랑하시고 끌어안으심으로 괴물을 변화시키는 방식이다. 지라르의 표현처럼, 그래서 십자가는 역설이다. 싸우되 사람이 아니라 악의 실체와 싸우셨다. 죽음으로써 살아나고 사랑으로 승리하신다.
오늘 우리에게도 학수에게 일어난 변화가, 그의 성장통이 일어나기를 학수고대 해 본다.



김양현 목사.jpg
본 글을 기고한 김양현 목사는
서울 영천교회 청년 담당목사로 영화와 신앙의 통섭을 꿈꾸는
기독영화평론가이다.
부산 CBS 시네마 톡톡을 오랜동안 진행했으며 현재 각종 신문과
잡지에 기독교적 관점의 영화평을 기고하고 있다.
본 글은 월간고신에 기고한 글을 재연재 하는 것임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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