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염력 念力, Psychokinesis, 2017

기사입력 2018.03.27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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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력 
念力, Psychokinesis, 2017

염력-포스터.jpg
장르 : 코미디
제작 : 한국

시간 : 101분 
개봉 : 2018 .01.31
감독 : 연상호
주연 : 류승룡(신석헌), 심은경(신루미)



“신화는 현실을 반영할 뿐 아니라(model of reality), 현실을 개선하고자(model for reality) 합니다.”고 신화학자 기어츠가 말했다. 신화는 인간 사회에서 있을 만한 이야기에서 시작하나 인간이 다다를 수 없는 열망을 투사(projection)한다.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을 신들은 할 수 있다. 신화를 통해 인간은 자신들의 삶을 반추하고 이겨나갈 희망을 가진다. 나는 영화가 그렇다고 생각한다. 영화는 21세기의 신화다. 그러므로 영화는 현실을 반영하고 또한 현실을 개선하고자 한다.

마블이나 D.C. 코믹스의 영웅들이 계속해서 등장하는 이유다. 우리는 영화에서 영웅적인 활동들을 본다. 슈퍼맨, 배트맨, 스파이더 맨, 원더우먼 등을 본다. 이러한 인물들은 현실과 초현실의 경계선을 넘나든다. 현실의 일상에 발을 딛고 있으나 또한 현실의 어려움과 난제들을 극복해 나간다. 우리는 이러한 히어로들의 활약상을 통해 우리 삶의 답답함을 이겨나간다. 비록 그들이 현실 세계의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더라도 상관이 없다.

연상호 감독의 신작 [염력]이 그러하다. 염력은 팍팍한 일상에서 시작한다. 염력의 등장인물들은 요즘 말로 노답인생들이다. 답이 없다. 그들은 출구가 없는 방 안에 갇힌 인물들이다. 그래서일까? 연상호 감독은 영화의 미장센(배경)을 어둡고 좁은 상가 건물들로 꽉 채웠다. 햇빛이 들지 않고 이런 저런 물건들로 넘쳐나는 배경들은 등장인물들의 삶에 다름 아니다. 도무지 헤쳐 나갈 힘도 방법도 없다.
이들은 재개발이 결정되어 철거가 시작된 상가의 상인들이다. 더 이상 갈 곳도 물러설
곳도 없다. 자본의 힘은 도무지 그들의 사정을 들어주려 하지 않는다. 사업장인 태산 건설의 젊은 상무도, 그리고 그들을 위해 일하는 용역회사 젊은 사장도 돈의 논리 앞에서 인정사정이 없다.

신루미는 청년 창업주다. 자신만의 비법으로 맛있는 청양고추 치킨을 개발했고 장사가 잘 되어 자리를 잡았다. 방송에도 나가고 손님들이 차고 넘친다. 그녀는 미래를 꿈꾸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러나 자본의 힘, 개발자인 태산과 용역들이 그녀의 가게를 철거하기 시작했고 그녀의 삶과 꿈도 무너져 버렸다.

염력1.jpg▲ <사진출처 : 네이버 영화>
이러한 자본의 힘과 폭력 앞에서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어 보인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다. 고양이에게 몰린 쥐에 다름 아니다. 물러설 곳도 없고 돌파구도 보이지 않는다. 자본의 힘에 의해 공권력도 그들의 편에 서지 않는다. 이들이 헤쳐 나갈 방법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연상훈은 신화의 힘을 빌렸다. 인간의 힘, 지식, 방법으로는 도무지 헤쳐 나갈 수 없어서 영웅을 등장시킨다. 그런데 연상훈의 초인간은 서구의 영웅들과는 사뭇 다르다. 연상훈의 초인간 신석헌은 사업실패와 빚더미로 인해 아내와 딸을 버리고 도망쳐 버린 무능한 사람이다. 건물 경비원으로 살아가는 그는 은행 고객을 위한 커피를 몰래 가져다 먹고 공용화장실 휴지를 훔쳐가는 소심한 인간이다. 영웅과는 한참 거리가 멀다.

그러던 우리의 신 씨가 어느 날 약수를 마시고 복통을 호소하더니 이상한 힘을 발휘한다. 술에 취해 곯아떨어진 그가 누운 채로 담배를 피우려는데 라이터가 거리가 멀다. 라이터를 잡으려 팔을 뻗었더니 글쎄 멀리 떨어져 있던 라이터가 손으로 빨려 들어온다. 꿈인지 생시인지 자신도 당황한 채 다시 힘을 주었더니 술병들이 춤을 춘다. 방안의 온갖 집기들이 떠다닌다. 초능력 즉 염력이 생겨났다.

자신의 몸에 이상이 생긴 것을 알아챈 신 씨는 고작 한다는 것이 나이트클럽 매니저를 찾아간다. 차력 쇼를 해서 돈을 벌겠다는 게다. 무엇인가 대단한 일, 범죄를 소탕한다든지 지구를 구한다든지 등 서구의 영웅들과는 한참 거리가 있다. 자신에게 생겨난 염력을 통해 고작 한다는 것이 입에 풀칠하는 정도다. 그런데 나는 연상훈 감독의 이 설정이 참 좋다. 삶의 역설이다. 초능력으로 먹고 사는 것이 아니라 먹고 살기 위해 초능력이 필요한 세상이기 때문이다. 신 씨의 염력은 삶의 고달픔에 대한 역설이다.

이후 신 씨는 아내의 죽음을 통보받고 딸과 재회한다. 그러나 10살 때 자신을 버리고 간 아버지에 대한 딸 루미의 마음이 좋을 리 없다. 더군다나 루미는 철거당한 자신의 가게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상황이라 자신의 몸 하나 가눌 길 없는데 무능력한 아버지의 존재가 반가울 리 없다. 차력으로 한 몫 잡겠다는 신 씨의 목표는 뒤늦게나마 방향이 바뀐다. 딸을 위해, 철거 위기에 모인 상인들을 위해 힘을 쓰게 된다. 용역 회사의 깡패들이 동원되고 공권력이 투입되어 일촉즉발 위기에 처한 상인들을 구하는 데 자신의 힘을 사용한다. 그렇다. 염력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타인을 위해 쓸 때 정당성을 얻는다. 아니 타인을 위해 제 한 몸 아끼지 않고 싸우는 자들 모두 초능력, 염력을 가진 자다. 감독의 역설적 메시지가 만화처럼 전개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렇다. 신자유주의니 금융자본주의니, 4차 산업혁명이니 하는 거창한 담론들은 우리의 삶을 몰아간다. 일자리는 줄어들고 먹고 살기는 더 힘들어진다. 거대한 빌딩들과 아파트들은 올라가지만 서민들은 외곽으로 내몰린다. 나에게도 염력이 있으면 좋겠다. 아니, 이 팍팍한 삶을 살아내기 위해서 염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어쩌면 잘 견뎌내고 있는 모두가, 이웃을 돌아보며 함께 살아가는 모두가 바로 염력을 가진 자, 초인간이다. 그렇지 않고야 어디 제정신으로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인가? 감독이 내세우는 염력은 초라하고 거대한 벽을 뚫고 나가지 못하기에 더욱 안타깝고 역설이기에 안쓰럽다. 차라리 초능력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김양현 목사.jpg
본 글을 기고한 김양현 목사는
서울 영천교회 청년 담당목사로 영화와 신앙의 통섭을 꿈꾸는
기독영화평론가이다.
부산 CBS 시네마 톡톡을 오랜동안 진행했으며 현재 각종 신문과
잡지에 기독교적 관점의 영화평을 기고하고 있다.
본 글은 월간고신에 기고한 글을 재연재 하는 것임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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