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오리엔트 특급 살인 Murder on the Orient Express, 2017

기사입력 2018.02.01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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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엔트 특급 살인
Murder on the Orient Express, 2017

오리엔트-포스터.jpg
장르 : 드라마 미스터리, 범죄 
제작 : 미국 

시간 : 114분 
개봉 : 2017 .11.29
감독 : 케네스 브래너
주연 : 케네스 브래너(에르큘 포와로), 페넬로페 크루즈(필라 에스트라바도스), 윌렘 대포(게르하르트 하드만)



“살인하지 말라” 구약 십계명의 핵심 명령이다. 살인하지 말라, 그 이유는 생명은 신에게 달려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생명의 창조자가 아니며 생명의 주인도 아니다. 그러므로 살인해서는 안 된다. 타인의 생명을 취해서는 안 된다. 유대인들의 탈무드에서는 절대로 지옥에서 벗어날 수 없는 범죄가 세 가지라고 가르친다. 살인, 간음, 그리고 형제를 욕하는 자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인류의 최초의 범죄는 가인이 아벨을 죽인 끔찍한 살인이다. 역사 이래 살인은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인류의 중범죄다.

그렇다면 살인을 행한 자에게 주어지는 형벌은 무엇인가? 성경은 기본적으로 살인자에 대해서는 처형이라는 극형을 부가한다. 생명에는 생명으로 갚아야 한다. 그런데 우리가 유심히 살펴보아야 할 것이 있다. 비 고의성 살인에 있어서는 의외로 관대하다. 우연한, 혹은 사고로 인해 타인의 생명을 취했을 경우 범죄자는 일정한 피난처-도피성로 피할 수 있고, 그는 정당한 재판 절차를 통해 사형을 면한다. 물론 죽을 때까지 도피성을 떠날 수 없는 형벌은 주어진다.

한 남자가 기차 안에서 목숨을 잃은 채 발견되었다. 눈보라가 휘몰아치던 밤 달리던 기차 안에서 살인이 일어났다. 골동품 상인인 라쳇이 변사체로 발견된다. 외부인이 도무지 들어올 수 없는 상황, 범인은 이 기차에 타고 있는 승객 중 한 명이다. 마침 기차는 폭설로 인해 멈춰 서 있고 탐정 포와르는 범인을 찾아 나선다. 과연 누가 살인자인가? 라쳇을 죽일 정도의 원한 관계가 있는 사람은 없는가? 혹 그를 제거함으로 이익을 볼 사람은 누구인가? 포와르는 명석한 추리로 한 사람씩 면담을 해 나가기 시작한다. 허바드 부인, 공작 부부, 슈미트, 선교사 메리, 백작 부인, 전직 군인, 의사, 도대체 누가 이 사람을 죽였단 말인가?

오리엔트2.jpg▲ <사진출처 : 네이버 영화>
수사를 해 나가면 나갈수록 포와르는 미궁에 빠진다. 승객들의 알리바이가 완벽하다. 그 밤 라쳇의 살인 사건에 연루된 자는 적어도 이 기차 안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죽였단 말인가? 포와르는 수사 과정에서 5년 전 일어난 암스트롱 가의 딸 데이지 납치 사건의 범인이 라쳇임을 알게 된다. 아이를 납치하여 살해한 끔찍한 사건, 게다가 언론은 그 집 하녀를 지목하게 되고, 이로 인해 하녀가 오해를 받게 된다. 이렇게 시간을 끄는 동안 아이는 죽임을 당했고, 부모 또한 자살로 이어지고 가정 전체가 파탄이 나 버렸다. 물론 범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5년 후 이 끔찍한 기차 살인 사건의 피해자가 바로 그 범인이었다는 뒤늦은 단서만이 남겨진 채 사건은 또 다시 미궁인 채로 남을 것인가?

미궁 속에 빠질 뻔 했던 이 사건은 포와르의 냉철한 이성과 철저한 수사, 그리고 추리로 마침내 밝혀지게 된다. 라쳇을 죽인 범인은 특정인이 아닌 이 기차 안의 모든 승객이라는 것이 그의 결론이다. 이 승객들 모두가 알고 보니 암스트롱, 혹은 데이지와 직 간접적으로 얽히고 섥혀 있다. 결국 데이지 살해 사건으로 인해 고통 받고 아프게 살아왔던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의를 통해 라쳇을 제거한 격이다. 암스트롱, 그리고 데이지의 복수를 치밀하게 행한 셈이다.

우리는 여기서 몇 가지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세상은 얽히고설킨 관계망으로 이루어져 있다. 데이지라는 소녀가 죽임을 당한 사건은 데이지 혼자만의 아픔이 아니다. 우선 그의 부모, 친척, 암스트롱과 가까이 지냈던 동료, 자신이 한 눈 판 사이에 아이가 납치된 것에 대한 죄책감을 떨치지 못한 하녀, 암스트롱 부인의 언니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이 사건의 직 간접적 피해자다. 라쳇은 한 소녀를 죽였지만 실상 많은 사람을 죽였다. 그의 살인은 사회적 살인이다. 그 파장이 만만치 않다. 그래서 성경도 살인죄를 다룰 때, 살인이라는 행위는 단지 한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작게는 가정이라는 공동체, 크게는 사회 전반을 파괴하는 중범죄로 규정하고 있다.

한 사람의 죽음은 단지 한 사람으로 끝나지 않는다. 가정이 파괴되고 친구들이 고통 받고 공동체가 무너진다. 사회적 살인도 마찬가지다. 한 가장이 직장에서 해고될 때 그 여파는 생각보다 훨씬 크다. 우선 당사자의 삶이 엉망이 되고, 아이들의 삶도 무너진다. 우리는 지난 10여 년간 이런 일들을 많이 겪고 보고 있다. 쌍용차 집단 해고는 우리 사회에 심각한 가정의 파괴를 연쇄적으로 가져왔고, 세월호 사건은 공동체 전체, 아니 국가 전체의 파괴로 이끌었다. 몇 백 명의 아이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그들의 가족들, 친구들, 공동체, 사회가 무너진다. 그래서일까? 이륙 후 엔진사고로 추락의 위기를 겪은 비행기를 안전하게 허드슨 강에 불시착하게 해서 모든 승객을 구출해 낸 설리 기장은 말한다. “저는 순간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 비행기에 타고 있는 100여 명의 승객만의 문제는 아니다. 그들의 가족, 동료, 사회 전체의 문제다. 그러기에 반드시 살려야 한다.”

이제 포와르의 결말로 가 보자. 분명 한 사람이 살해 되었고, 여기 이 살인 사건에 가담한 13명의 승객이 있다. 이들을 어떻게 처벌해야 하는가? 포와르는 우리의 기대와 다른 결론을 내린다. “정의의 저울이 기울어질 때도 있군요. 불균형을 감당하는 법을 배워야겠지요. 옳고 그름 사이에 당신들이 있습니다. 이 중에 살인자는 없습니다. 대신 치유가 필요한 사람들만 있을 뿐입니다. 이제 여러분들이 여러분들의 상처의 해답을 찾아야 합니다.”
포와르는 회복적 정의를 말하고 있다. 물론 직, 간접적으로 이들은 살인에 가담했으므로 형벌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형벌에 앞서 포와르는 이들의 치유가 먼저라고 말한다. 그들은 이래저래 상처를 입었고, 상처 속에 살아가고 있다. 그것이 우선이다. 일찍이 도스토예프스키도 자신의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를 내세워 말한 바 있다. 라스콜은 고리대금업자 노파를 살해하고 양심의 가책 속에 살아간다. 때론 자신의 행위를 스스로 변명한다. 자신은 살인을 저지른 것이 아니라 사회적 악을 제거한 것이라고, 그러므로 자신은 초인이라고 변명한다. 그러나 그가 소냐의 낭독을 들을 때 양심은 살아났고 자수를 하고 시베리아로 보내 져 남은 형벌을 감당한다. 도스토예프스키도 말하고자 했다. 형벌보다 우선은 치유라고, 회복적 정의, 회복적 형벌이 중요하다고. 기억하자. 한 사람이 죽을 때 사회 전체가 죽고, 한 사람을 살릴 때 사회 전체가 살아난다. 세상에 절대 고독은 없는 법이다.



김양현 목사.jpg
본 글을 기고한 김양현 목사는
서울 영천교회 청년 담당목사로 영화와 신앙의 통섭을 꿈꾸는
기독영화평론가이다.
부산 CBS 시네마 톡톡을 오랜동안 진행했으며 현재 각종 신문과
잡지에 기독교적 관점의 영화평을 기고하고 있다.
본 글은 월간고신에 기고한 글을 재연재 하는 것임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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