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 아버지인가? 아빠 아버지인가?

기사입력 2017.12.29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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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종길.jpg▲ <필자인 변종길교수는 고신대학원 신약학 교수로 재직 하고 있다.>
  개역개정판에는 예전의 성경에 비해 달라진 것이 많이 있는데, 그 가운데 특이한 것 하나는 ‘아바 아버지’를 ‘아빠 아버지’라고 바꾼 것이다(막 14:36, 롬 8:15, 갈 4:6). 왜 ‘아빠 아버지’라고 한 것일까? 개역개정판 성경에 그 이유가 설명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성경 번역자들이 현대 신학의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에 그 흐름에서 추측해 볼 수 있다.

요아킴 예레미아스의 영향

   신학을 조금 공부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듯이, 여기에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은 독일의 요아킴 예레미아스(Joachim Jeremias)이다. 그에 의하면, 구약 시대에는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호칭’으로서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았는데, 신약 시대에 와서 예수님이 하나님을 ‘아바’(Abba)로 불렀다고 한다. 아람어 Abba는 원래 어린아이의 말인데, 예수님은 이 말을 하나님께 사용하였다고 한다(Neutestamentliche Theologie, 3판, 67-73쪽).

그러나 예레미아스는 후에 예수님이 갓난아기의 말을 채택하였다는 처음 주장을 철회하였다(위 책 73쪽). 왜냐하면 신약 이전 시기부터 성인이 된 아들딸들도 아버지를 “Abba”라고 부르는 문헌들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레미아스는 단지, 예수님이 자녀가 아버지에게 하듯이 신뢰하면서, 친근하게, 경외하는 마음으로, 순종하는 자세로 “Abba”라는 말을 사용했다고 한다(같은 곳).

위 주장의 문제점

   그러나 예레미아스의 이러한 주장에는 무리가 있다. 우선 구약 성경에도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말하는 곳이 더러 있다(신 32:6, 사 63:16, 64:8, 렘 3:4,19, 말 2:10). 그런데도 그는 ‘진술’(Aussage)로서는 나타나지만 ‘호칭’(Anrede)으로서는 나타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진술’로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말한 곳이 나타난다면, 유대인들은 이미 구약 시대에 하나님을 ‘아버지’로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하지 않는가? ‘진술’과 ‘호칭’ 사이에 그렇게 대단한 차이가 있는 것일까?

뿐만 아니라 예레미야 3:4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호격으로 “나의 아버지여”라고 불렀다고 한다(히브리어 원문 및 RSV, NRSV, NASB, NIV, ESV 등 참조). 이것은 예레미야 당시의 유다 백성이 하나님을 “내 아버지여”라고 불렀다는 것을 말해 준다. 따라서 요아킴 예레미아스의 주장은 첫 출발부터 삐걱거리게 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마가복음 14:36, 로마서 8:15, 갈라디아서 4:6이 “아바 아버지(여)”(Abba ho patēr)라고 함으로써, ‘아바’는 곧 ‘아버지’임을 말해 주고 있다. ‘아바’(Abba)는 아람어이고 ‘호 파테르’(아버지)는 헬라어이다. 이 둘은 다른 것이 아니라 같은 것을 가리킨다(Greijdanus, Romeinen, I, 371쪽). 따라서 아람어 ‘아바’는 ‘아버지’란 뜻임을 성경 자체가 말하고 있다. 그렇게 한 이유는 그냥 ‘아바’라고 말하면 이방인들은 무슨 뜻인지 모르기 때문에 헬라어로 번역해 준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반복은 이 호칭에 ‘강렬함’과 ‘내면성’을 더해 준다(Greijdanus, 같은 곳).

아람어 Abba

    아람어 Abba는 원래 ‘강세형’(status emphaticus)인데, 히브리어에서와 마찬가지로 ‘호격(呼格)’으로 사용된다(M. Zerwick, Biblical Greek, §34). 그래서 ‘아버지!’ 또는 ‘아버지여’라는 뜻이다. 좀 더 설명하면, Abba는 ‘아버지’란 뜻의 ‘아브’(ab)에 강세형 접미사(히브리어 관사 ha와 같은 것) ‘아’(a)가 붙은 것인데, 이 경우에 앞의 자음이 중첩된다.

강세형 아람어 Abba는 당시에 사용하지 않게 된 Abi(내 아버지)를 대체하게 되었다고 한다(Strack-Billerbeck, Kommentar, II, 49쪽). 그리고 아람어 ‘아브’(ab)의 원(原)형태는 ‘아부’(abu)로 추측된다고 한다(Bauer-Leander, Grammatik des Biblisch-Aramäischen, 77쪽). 우리나라 방언 ‘아부지’의 ‘아부’에서 그런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아람어 Abba의 음역?

   그런데 어떤 해설 성경에 보면 ‘아빠’는 아람어 Abba를 음역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Abba를 정확하게 음역하면 ‘압바’이지 ‘아빠’가 아니다. 자음이 두 개 겹칠 경우에 우리말로 표기하는 방법은 하나는 받침(終聲)으로 보내고 다른 하나는 초성(初聲)으로 보내는 것이다. 예를 들어 라틴어 “summa”를 우리말로 음역하면 ‘숨마’가 되며 ‘수ㅁ마’가 아니다. 그리스어 “Hella”도 우리말로 음역하면 ‘헬라’가 되지 ‘헤ㄹ라’가 아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Abba”도 우리말로 음역하면 ‘압바’가 되어야 하며 ‘아빠’가 아니다. 따라서 개역개정판의 ‘아빠’는 아람어 Abba를 음역했다는 주장은 맞지 않다.

따라서 아람어 Abba의 정확한 음역은 ‘압바’가 되겠지만, 오늘날 현대어에서 자음 둘이 겹칠 때 대개 하나만 발음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영어에서 그러하다. 뿐만 아니라 한국 교회에서도 ‘아바 아버지’란 표현이 이미 굳어져 있기 때문에 굳이 ‘압바’로 음역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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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아버지’

   마지막으로 우리말 ‘아버지’에 대해 생각해 보자. ‘아버지’는 ‘아버’와 ‘지’의 합성어이다. 원래는 ‘아바’와 ‘지’의 합성어라고 한다. 평안도 방언에서는 아직도 ‘아바지’라고 한다. ‘지’는 ‘거지’, ‘거러지’의 예에서 보듯이 사람이란 뜻이다. 따라서 ‘아버지’는 원래 ‘아바’와 ‘지’의 합성어인데, ‘지’는 의미상 불필요한 것이고 ‘아바’가 고유한 의미 요소가 된다. 옛날에는 ‘아비’라 불렀으며 ‘아바’라 부르기도 했다(서정범, 「國語語源辭典」, 411쪽). 그렇다면 우리말의 ‘아버지’(아바지)는 어원적으로 셈족어와 일맥상통하는 전통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것을 보더라도 ‘아바 아버지’란 표현이 적합하다고 생각된다.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

   ‘아바 아버지’를 통해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은,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고 우리는 그의 ‘자녀’라는 사실이다. 어린아이의 말 ‘아빠’에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다. 혀짜래기소리 ‘아빠’에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 되시고 우리는 그의 자녀가 된다는 사실에 큰 의미가 있는 것이다(마 6:9, 7:11, 요 1:12 등).


(「선지동산」 63호(2012. 11. 12. 발행) (신약 난제 해설 [5]), pp.18-19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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