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루터 (2003) Luther

기사입력 2017.12.01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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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 (2003) Luther

루터-포스터.jpg
장르 : 드라마
제작 : 독일

시간 : 123분
개봉 : 2017.10.18. 12세이상 관람가
감독 : 에릭 틸
주연 : 조셉 파인즈, 브루노 간츠, 알프레드 몰리나


 
‘Christ’에 ‘ian’이 붙어 ‘Christ-ian’이 될 때 1차 왜곡이 일어나고, 거기에 ‘ity’가 붙어 ‘Christian-ity’가 될 때 2차 왜곡이 일어난다고 오스 기니스는 말했다. 예수님의 원 복음을 특정 사람이 받아들일 때 그는 백지 상태에서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 사람의 경험, 생각, 삶 등의 선 이해구조 위에서 복음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것으로 재해석한다. 아울러 이러한 개인의 기독교인이 모여 조직을 이룰 때 그것은 기독교(회)가 되고 거기는 또 다른 선이해구조가 형성된다. 그래서일까? 한국의 기독교와 미국의 기독교, 혹 아프리카의 기독교는 상당히 다르다. 기독교 안에서도 로마 카톨릭과 개신교, 그리스 정교는 또 다르다.
 
대부분의 역사신학자들이 동의하는 바, 기독교의 큰 왜곡은 콘스탄티누스 이후에 일어났다. 황제가 기독교를 인정하고 이어 제국의 종교로 선포하고, 얼마 후 데오도시우스 황제가 국교로 선포하자, 기독교는 순식간에 왜곡되었다. 예수께서 전파하신 오리지널 복음은 교권으로 변질되었고, 진정한 회심 없이 신자가 된 자들이 자신의 선이해구조 이교 신앙을 그대로 지닌 채 살았다. 이러한 흐름은 약 1000년이 지난 즈음에 극에 달하였다.
 
스페인 출신의 로드리고 보르지아는 자신의 재력과 술수로 교황의 자리에 올라 알렉산더 6세가 되었으나 그는 공식적으로 3명의 정부와 5명의 자식을 두었다. 그의 아들은 10대에 추기경이 되었고, 악랄한 방식으로 정적들을 제거한다. 1513년 교황에 오른 레오 10세는 13세에 부제급 추기경에 서임되었고 그는 교황 재임 기간 중 성 베드로 성당의 건축을 마무리 짓고자 했다. 물론 그는 막대한 건축기금을 모으고자 했고 이런 과정에서 그 유명한 면죄부를 판매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중세의 타락상과 달리 또 하나의 움직임이 있었으니 바로 마르틴 루터라는 인물이다. 그는 1501년 에르푸르트 대학에서 교양과정을 마치고 1505년에 법학과정에 입학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운명은 그를 몰아갔는데 1505년 고향 만스펠트에서 에르푸르트로 돌아가던 중 심한 천둥과 폭풍우 번개를 만나게 되고 그는 자신도 모르게 "성 안나여 저를 도와주시면 수도사가 되겠습니다."라고 서약했다. 1505년 아버지의 반대를 무릎 쓰고 루터는 아우구스티투스회 소속의 수도원에 들어갔고 이는 거대한 종교개혁의 불꽃이 되었다.
 
수도원에 들어간 루터가 한 일은 자기 죄에 대한 두려움과 떨림을 없애려는 시도였다. 그는 온전히 공의로우신 하나님 앞에 서 있었다. 그 하나님 앞에서의 자신은 죄 투성이였고, 그 죄는 자신을 지옥불에 던지기에 충분했다. 초반부 영화 대사에서도 등장하듯 그의 화두는 ‘나를 구원하소서’ 그리고 ‘사탄아 물러가라’였다. 그는 독방에서 고행을 했고, 심지어 자신의 죄와 조부의 죄를 위해 로마의 교황청을 방문하기에 이른다. 성 베드로 성당의 계단 앞에는 면죄부가 판매되고 있었고 루터도 조부의 이름을 적은 면죄부를 사 들고 계단을 무릎으로 기어 오르기 시작한다. 그렇게 할 때 연옥에 있는 조부가 천국으로 한 계단 씩 오른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한참을 오르던 루터는 주위를 둘러본다. 수많은 인간 군상들이 계단을 광신도처럼 기어 오른다. 아무리 기워 올라도, 마음을 추슬러도,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루터를 사로잡았고 그는 면죄부를 찢어 버리고 수도원으로 돌아온다. 이후 수도원장이자 영적 멘토인 슈타우피츠의 권유로 비텐베르크 대학에서 학업을 계속하고 이어 강사 자리를 획득한다. 루터가 비텐베르크에서 집중한 것은 성경을 읽는 일이었다. 그는 성경을 읽고 연구할수록 로마 카톨릭의 가르침이 엉터리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루터는 두 가지 중요한 자신의 신념을 쌓아간다. 하나는,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획득한다는 소위 이신칭의 교리였고, 다른 하나는, 죄인을 받아 주시는 한없이 자비로우신 사랑의 하나님이었다.
 
루터1.jpg▲ <사진출처 : 네이버 영화>
개혁가로서의 루터의 운명은 씨줄과 날줄이 얽혀 들어가는데, 루터 자신이 확립한 교리적 확신과 외부적으로는 면죄부 장사꾼 요한 테첼의 방문이었다. 레오 10세의 든든한 입이자 장사꾼인 요한 테첼은 특유의 익살과 말솜씨로 사람들을 선동하여 면죄부를 팔고 있었다. 물론 레오 10세가 진행하는 성 베드로 성당의 기금 마련 때문이다. 그는 사람들에게 벽돌 한 장 값을 헌금하면 조상들의 영혼이 한 계단씩 천국으로 향한다고 외쳤다. 이를 지켜보던 루터는 면죄부의 부당성과 그들이 가르치는 심판자 하나님에 대한 부당함에 대하여 그 유명한 95개조의 반박문을 작성하여 비텐베르크 대학교회 정문에 부착하게 된다. 이 후 이 반박문은 사람들의 손에 손으로 회자되고 급기야 교황청에 보고되어 루터는 1521년 당시 황제 카를로스 5세가 소집한 보름스 제국회의에 소환된다.
 
황제와 선제후들이 둘러싼 가운데 루터는 그 유명한 말을 남긴다. “성경과 명료한 이성이 나를 정죄하지 않는 한 나는 교황과 공의회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다. 내 양심은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할 뿐이다. 나는 어떤 것도 취소할 수 없고 취소하지도 않겠다... 하나님 저를 도와주소서. 아멘” 제국회의에서 자신의 주장을 철회하지 않은 채 비텐베르크로 돌아오던 루터는 숲에서 정체모를 자들에게 납치되는데, 이는 루터의 목숨을 건지고자 작센의 선제후인 프리드리히의 계획이었다. 루터는 프리드리히의 후원 하에 바르트부르크 성에서 1여년 동안 지내면서 라틴어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게 되었고 이는 개혁의 불을 지피는 일이 되었다.
 
영화 루터는 두 가지에 집중한다. 우선 루터 자신의 영적 고뇌다. ‘하나님 앞에(Coram Deo) 선 죄인’이라는 자신의 정체성과 구원의 가능성에 대한 그의 고민이 영화 내내 흐른다. 그가 ‘오직 믿음, 오직 은혜’라는 교리적 확신과 ‘죄인을 받아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결론에 이르기까지의 개인 영적 여정을 담담히 그린다. 또 하나, 영화 루터는 루터를 둘러싼 당시 교황청과 독일제국 간의 정치적 흐름, 그리고 인쇄술이라는 기술의 발전, 르네상스라는 거대한 인문주의적 흐름을 보여준다. 이런 외적 조건으로 말미암아 그가 번역한 독일어 성경을 사람들이 읽게 되었고 사유하며 깨닫게 된 것이 개혁의 원동력이었다. 영화는 이 두 마리 토끼를 비교적 잘 잡은 셈이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여 재개봉한 영화 [루터]는 오늘 우리에게 큰 숙제를 안긴다. 500여년 전 그 때나 지금이나 양상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교황 알렉산더 6세가 자식들에게 재산을 물려주고 추기경 자리를 임명하는 것이나, 교황 레오 10세가 엉터리 면죄부를 발행하면서 거대한 건축을 시도한 것이 오늘 우리 시대의 어떤 양상과 오버랩되기 때문이다. 결국 루터의 고민이 필요하다. 우리의 선 이해구조를 제거하기 위해 원전인 성경을 열심히 읽어나가는 일이며, 또 하나 거대한 조직이 되어 버린 교회를 벗어나는 일이다. 개인을 개인되게, 교회를 교회되게 하는 신 종교개혁을 염원하는 자들에게 영화 [루터]는 상당한 힌트를 줄 것으로 여겨진다. 누구의 말처럼 여명이 밝아오기 전이 가장 어두운 것이라면, 오늘 우리는 그 대안으로 새로운 운동을 일으키실 하나님을 기대해도 좋겠다. 21세기의 루터, 그리고 깨어 있는 기독교인들을 기대해 본다.



김양현 목사.jpg
본 글을 기고한 김양현 목사는
서울 영천교회 청년 담당목사로 영화와 신앙의 통섭을 꿈꾸는
기독영화평론가이다.
부산 CBS 시네마 톡톡을 오랜동안 진행했으며 현재 각종 신문과
잡지에 기독교적 관점의 영화평을 기고하고 있다.
본 글은 월간고신에 기고한 글을 재연재 하는 것임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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