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인물] 교회를 위한 교회의 신학자들-테르툴리아누스

기사입력 2017.07.11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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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르툴리아누스(Tertullianus = Tertullian. 영어식: 터툴리안; 불어식: 떼르뚤리앙; 독어식: 터툴리아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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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크빈투스 셉티미우스 플로렌스 테르툴리아누스(Quintus Septimius Florens Tertullianus)는 우리에게 ‘터툴리안’이라는 이름으로 익숙한데, 터툴리안은 영어식 발음이며 불어식 이름을 영어로 표기한 것에서 유래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잘 알려져 있는 터툴리안, 혹은 터툴리아누스라는 이름 대신에 더 복잡해 보이는 테르툴리아누스라는 이름을 선택한 이유는 단지 그 이름이 라틴어이기 때문만 아니라, 라틴 신학의 대부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최근에 한글로 번역된 ‘기독교고전총서’ 4권 <초기 라틴 신학> 역시 그의 이름을 테르툴리아누스라고 표기하고 있다.

 테르툴리아누스의 생애에 관한 기록은 많지 않다. 이유는 아마도 그가 로마 가톨릭 교회를 공격하면서 이단인 몬타누스주의자(Montanist)가 되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 그에 관한 기록은 대부분 삭제되었고 그나마 존재하는 것들은 대부분 그를 비난하고 공격하는 내용으로 부정확하고 주관적인 것들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독일의 유명한 신학자 알란트(Kurt Aland)는 테르툴리아누스의 생애에 대한 신뢰할만한 정보는 오직 그 자신의 기록을 전제로 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테르툴리아누스는 출생 년도도 사망 년도도 알려진 것이 없다. 하지만 그 자신의 기록에 의해 그의 출생지가 북아프리카의 카르타고(Carthago)였다는 것은 알 수 있다. 그는 이방인인 로마 장군(centurio. 100명 정도 되는 부대원의 수장이며 성경의 백부장에 해당됨)의 아들로 태어나 안정된 환경 가운데서 좋은 교육을 받았으며 수사학과 법학을 깊이 공부했다.

 이방인이었던 그가 언제 회심하게 되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최소한 그의 기독교 저작들의 저작 년대가 195-220년으로 추정되는 것을 감안한다면 그의 회심 연도는 분명 그 이전이었을 것으로, 즉 195년 이전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그가 언제 기독교로 회심했는지 학자들 사이에 의견이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회심 연대를 단정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대략 193-197년 사이로 추정한다.

 그의 회심 연도만 불분명한 것이 아니라 그가 교회 안에서 어떤 신분, 즉 어떤 직분을 맡았었는지도 알려진 것이 전혀 없다. 라틴어 성경, 즉 불가타(Vulgata) 성경을 번역한 히에로니무스(Hieronymus = Jerome. 제롬)는 테르툴리아누스가 사제서품을 받았다고 하지만 이것도 확실한 것은 아니다. 심지어 그가 교회에서 어떤 직분도 갖지 않은 평신도였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의 저작 내용을 감안한다면 그럴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테르툴리아누스가 교회에서 어떤 직분의 자리에 있었는지는 아직 알려진 것이 없다. 다만 그의 저술을 볼 때 그가 교회 직분자로 봉사했으리라고 추정하는 것은 확실히 정당해 보인다.

 테르툴리아누스의 생애에서 가장 불행한 일은 그의 생애 후반에 스스로 몬타누스주의자가 된 것이다. 몬타누스주의란 본래 157년경에 나타나 성령의 급속한 임재를 기다리고 그 조짐을 보았다고 가르친 이단자 몬타누스(Montanus)를 추종하는 자들을 지칭하는 용어였고 기록된 성경과 교회의 전통을 무시하고 하나님의 직통 계시를 중시하는 신령주의(Spiritualism)였다.
테르툴리아누스가 당시 가장 강력한 이단 중 하나였던 몬타누스주의(Montanism)에 빠지게 된 것은 205년경으로 추정된다. 그렇게 된 이유는 확실하지 않지만 아마도 이 당시 몬타누스주의가 신령주의 색채보다는 금욕적인 삶을 추구하는 엄숙주의(Rigorism) 색채가 훨씬 강했던 점과 연관이 있어 보인다.

 이와 같이 몬타누스주의 이단이 금욕적 엄숙주의로 등장하고 성행하게 되었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당시 교회의 세속화였던 것으로 보인다. 교회가 세속화 되고 타락의 길을 걸을 때마다 신령주의나 분리적인 엄숙주의가 등장하기 마련이다. 이러한 역사는 오늘날에도 반복되고 있다. 때론 교회의 세속화가 교회를 사랑하는 열정을 가진 사람들을 이단의 길로 가게 만들기도 하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테르툴리아누스의 경우이다. 하지만 그가 이단에 빠진 것은 결정적으로 그 자신의 잘못이다.

 비록 테르툴리아누스가 말년에 이단에 빠지는 신앙적인 우(愚)를 범하긴 했지만 그의 저술에 나타난 신학만큼은 초대 교회의 가장 건전한 기독교 사상에 속한다. 그의 이름을 가진 이단이 발생하여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의 시대까지 명맥을 유지했는데 이 이단에 대한 아우구스티누스의 비판은 결코 호의적이지 않았다. 테르툴리아누스의 성경적 신학은 로마 가톨릭 교회 안에서 큰 영향을 행사한 반면에 그의 극단적 신앙은 오히려 교회 밖에서 더 큰 영향을 행사한 것으로 보인다.

 의를 사랑하고 불경건한 자를 미워하는 성품의 소유자 테르툴리아누스에 대해 독일의 유명한 초대교회 연구가 한스 폰 캄펜하우젠(Hans von Campenhausen)은 다음과 같이 결론 내린다. “신학적으로 평가하자면 그는 거의 유대인(beinahe ein Jude)이다.”
 
저술

 테르툴리아누스는 최초의 가장 뛰어난 기독교 저술가로 평가 된다. 특히 라틴어로 된 신학 용어들을 개발하기도 했는데, 이런 점 때문에 그는 기독교 라틴어의 창시자로 불리기도 했다. 아무튼 그의 라틴어 저술들은 당시 신학 저술이 대부분 학문언어인 헬라어로 기록되던 점을 감안할 때 매우 획기적인 것이었고 또한 서방교회가 자신의 신학적인 입장을 세우는 일에 지대한 공헌을 한 것만은 사실이다.

 이미 언급한 것처럼 그의 저술 속에 사용된 라틴어는 기독교적으로 새롭게 차용되거나 만들어진 것이 많아 그의 글을 바르게 이해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 테르툴리아누스의 글들은 대체로 그의 다혈질적인 성격이 반영되어 직선적이고 호전적이지만, 라틴어 문체는 정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헬라어 저술들은 한 권도 남아 있지 않는 반면에 그의 라틴어 저술들은 31개가 남아 있다. 테르툴리아누스가 로마 가톨릭 교회의 적대자였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저술 대부분이 보존되었다는 사실은 매우 특이하고 예외적이다.

 남아 있는 라틴어 저술들은 연대별로는 몇 권을 제외한 나머지 모두 그가 몬타누스주의자가 되기 이전(대략 195-205년)과 이후(대략 205-220년)의 것으로 분류 되고, 신학적으로는 기독교를 변호하는 변증적 저술들과 교리적-논쟁적 저술들과 실천적-금욕적 저술들로 분류 될 수 있다.

 대표적인 변증적 저술들로는 <변증>(Apologeticum), <영혼의 증거에 관하여>(De testimonio animae), <유대인에 반대하여>(Adversus Iudaeos), <총독 스카풀라에게>(Ad Scapulam) 등이 있고, 교리적-논쟁적인 저술들로는 <이단들에 대한 규정들에 관하여>(De praescriptionibus haereticorum), <헤르모게네스에 반대하여>(Adversus Hermogenem), <마르키온에 반대하여>(Adversus Marcionem), <발렌티누스주의자들에 반대하여>(Adversus Valentinianos), <프락세아스에 반대하여>(Adversus Praxeas), <영지주의자들에 대항하는 전갈해독제를 통해>(Scorpiace contra Gnosticos), <그리스도의 육신에 관하여>(De carne Christi), <영혼에 관하여>(De anima) 등이 있다.

 실천적-금욕적 저술들로는 <순교자들에게>(Ad Martyres), <기도에 관하여>(De oratione), <극장들에 관하여>(De spectaculis), <세례에 관하여>(De baptismo), <인내에 관하여>(De patientia), <참회에 관하여>(De paenitentia), <아내에게>(Ad uxorem), <우상숭배에 관하여>(De idololatria), <일부일처에 관하여>(De monogamia), <박해 시의 도피에 관하여>(De fuga in persecutione), <정결에 관하여>(De pudicitia), <금욕에 관하여>(De ieiunio) 등이 있는데, 이 가운데 마지막 네 개의 저술에는 몬타누스주의의 과격한 사상이 반영되었다.

 <그리스도의 육신에 관하여>, <이단들에 대한 규정들에 관하여>, <우상숭배에 관하여> 등은 한글로 번역되어 있다.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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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방교회의 교리 형성에 끼친 테르툴리아누스 신학의 영향은 거의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특별히 삼위일체 교리와 기독론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테르툴리아누스는 <프락세아스에 반대하여>에서 세 분 하나님께서 한 하나님이심을 의미하는 ‘삼위일체’(trinitas)라는 용어를 기독교 역사상 최초로 사용했다. 그는 삼위 하나님을 ‘세 위격’(tres Personae)이며 ‘한 본질’(una substantia)이라고 설명한다. 즉 성자와 성령은 각각 2위와 3위이시며 삼위 하나님께서는 한 본질, 한 실재, 한 능력이시라는 것이다.

 테르툴리아누스는 삼위가 ‘한 분’(unus)이 아니라 ‘하나’(unum)이심을 강조한다. 그리고 세 분 하나님 각각의 활동, 즉 경륜(oikonomia)에 따라 삼위가 구별되지만 그 경륜적 활동이 통일성(unitas)을 가진다고 주장하는데, 이것이 곧 경륜적 삼위일체론이다. 또한 그는 ‘unio’(우니오)와 ‘unitas’(우니타스)를 엄격하게 구분하는데, ‘unio’는 숫자로 ‘하나’ 내지는 ‘단수’를 의미하는 반면에 ‘unitas’는 여러 부분이 구분되지만 결코 분리될 수 없는 ‘단일한 통일체’를 의미한다.

 기독론과 관련하여 테르툴리아누스는 그리스도께서 양성, 즉 신성과 인성을 가진 한 인격이심을 강조했다. “우리는 하나님이시요 인간이신 예수님께서 한 인격 안에서 혼합된 것이 아니라 결합된 이중적 상태[라는 것을] 압니다.”(Videmus duplicem statum, non confusum sed coniunctum, in una persona deum et hominem Iesum) 그는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 사이를 어느 정도 구분했지만 분리하지 않았다.
이러한 테르툴리아누스의 영향으로 서방의 로마 가톨릭 교회는 동방교회가 그리스도의 양성 논쟁과 삼위일체 논쟁에 휩싸이기 훨씬 전에 이미 그리스도의 양성 문제를 신학적으로 해소하고 삼위일체 개념을 세운 것으로 보인다.

 테르툴리아누스는 이방 철학이 신학에 도입되는 것, 즉 성경과 철학이 혼합되는 것을 막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그는 사도적 진리를 거부하는 것을 이단으로 정의했고 이러한 이단의 세례는 무효라고 가르쳤으며 박해를 피해 도망가지 말라고 경고했다. 또한 이방인과의 결혼을 금했고 재혼하지 말 것을 권면했다.

 뿐만 아니라 테르툴리아누스는 기독교를 옹호하는 자신의 책 <변증>을 마무리하면서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남겼는데, 이 말은 로마의 기독교 박해 역사가 어떻게 종결될지를 내다본 예언이 되었다. “우리가 당신들에 의해 추수될 때마다 우리는 훨씬 더 많아집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들의 피가 씨이기 때문입니다.”(Plures efficimur, quotiens metimur a vobis: semen est sanguis Christianorum.) 기독교를 박해하던 로마 제국은 십자가의 희생적 사랑, 즉 순교자들이 흘린 피에 의해 정복되어 기독교 국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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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대우 교수
·고신대학교 교수
·개혁주의학술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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