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파도가 지나간 자리-The Light Between Oceans, 2016

기사입력 2017.07.11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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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가 지나간 자리
The Light Between Oceans, 2016

170711-파도가지나간자리포스터.jpg
장르 : 드라마, 멜로/로맨스
제작 : 미국, 뉴질랜드, 영국

시간 : 132분
개봉 : 2017. 03. 08

감독 : 데릭 시엔프랜스
주연 : 마이클 패스벤더, 알리시아 비칸데르, 레이첼 와이즈



 세상과 등지고 자기만의 세상을 살아가려는 한 남자가 있다. 그는 세상에 환멸을 느꼈다. 세상에 상처를 입었다. 그는 전쟁 영웅으로 불렸지만 정작 자신은 그 전쟁터에 빚을 지고 있다. 사람을 많이 죽인 것이 무슨 영웅인가?
 
 그가 찾아 간 곳이 두 바다 사이 등대, 양쪽으로 갈라진 바다 사이에 있는 외로운 섬의 등대다. 등대, 어둠 속에서 빛을 비추는 곳, 칠흙 같은 어두운 밤에 등대의 불빛은 배의 항해를 돕는다. 배가 안전히 항구에 이르도록 돕는다. 톰은 자신의 인생의 빛을 찾고 싶다. 자신의 삶이 빛으로 비춰지기를 소망한다.
 
 이자벨은 바닷가를 자주 산책한다. 그녀 또한 전쟁으로 인한 상처를 안고 산다. 전쟁은 그녀에게 상실을 주었다. 두 오빠가 전쟁에 나가서 전사했다. 그녀는 묻는다. “오빠들이 사라졌는데 내가 동생으로 불릴 수 있을까요?”
 
 이자벨은 톰에게서 오빠의 빈자리를 찾는다. 이자벨이 톰을 사랑하게 된 것은 상실, 아픔에 대한 치유이자 미래에 대한 희망이다. 망설임 끝에 톰도 이자벨에게 마음을 연다. 세상에 대한 환멸, 자신에 대한 증오로 닫힌 마음을 조심스레 연다. 이자벨과 톰의 사랑, 그리고 그녀의 임신은 새 세상에 대한 희망이다.
 
 그러나 희망이란 본래 쉽게 오는 것이 아닌가보다. 비바람이 몹시 치던 그 밤에 이자벨은 유산을 한다. 아이를 잃은 슬픔, 절망, 단순한 유산의 아픔을 넘어 희망을 잃어버린 아픔이다. 그녀는 침울하게 하루 하루를 보낸다.
 
 어느 날, 육지에서 사람이 온다. 그는 등대지기 숙소 한 곳에 방치 되어 있던 피아노를 조율하러 온 사람이다. 전쟁이 시작되고 이자벨은 피아노를 그만 두었다. 톰은 그녀를 위해 낡은 피아노를 고치기 위해 사람을 불렀다. 아니, 이자벨의 상실, 아픔을 조율한다.
 
170711-파도가지나간자리2.jpg▲ <사진출처 : 네이버 영화>
 얼마 간의 시간이 흘러 섬으로 조그만 배 한 척이 몰려왔다. 이자벨과 톰은 배 안에 한 남자와 아기를 발견한다. 남자는 죽어 있고 아기는 보자기에 쌓인 채 울고 있다. 배가 난파한 듯 하다. 톰은 남자와 아기를 끌어내어 집으로 향한다. 톰은 망설임없이 육지로 이 사실을 알리려 하지만, 이자벨이 막아선다. 아무도 본 사람 없는데 누가 알겠냐고. 어차피 남자는 죽었으니 이 아기는 하늘이 우리에게 보내주신 선물 아니겠냐고. 이 아기를 내가 키우겠다고 막아선다. 윤리적 도리와 아내를 향한 사랑 사이에 톰은 갈등한다. 결국 남자는 묻고 아기는 자신들이 낳은 것처럼 일을 꾸민다. 그렇게 겉으론 행복한 시간이 그들에게 주어진다.
 
 하지만 감춰진 것은 드러나지 않는 법이 없다 했던가? 아이의 유아세례식에서 톰은 슬피 울고 있는 한 여성을 발견하고, 그녀가 곧 자신이 묻은 남자의 아내며 이 아기의 친모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진실을 알게 된 이상 더 이상 자신과 친모를 속일 수는 없었다.
한 사람의 행복은 다른 사람의 불행이라는 것을. 얻은 자의 행복은 잃은 자의 불행을 담보로 주어졌다는 것을, 그 현실 앞에 톰은 갈등한다. 아이는 처음부터 자신들의 소유가 아니었음을. 나의 행복은 타인의 불행임을. 전쟁터에서 뼈저리게 겪었던 그 냉엄한 사실- 내가 살기 위해 남을 죽여야 하는 현실을 그는 반성하고 있다.
 
 고뇌 끝에 톰은 아기와 함께 온 부엉이 장식을 친모에게 보내고 아기가 살아 있음을 알린다. 경찰의 수사가 진행되고, 톰은 시신 유기와 아기 납치라는 오명을 뒤집어 쓰고 감옥으로 향한다. 물론 이 사실을 알렸다는 이유로 이자벨 역시 다시는 톰을 보지 않으려 한다. 왜 그랬냐고? 꼭 그래야만 했냐고? 그녀는 톰에게 울부짖는다.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 쓴 톰은 현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자기희생을 통해 두 여인에게 속죄하려 한다. 그는 변명하지 않고 묵묵히 죽음을 받아들인다. 실상은 전쟁에서 흘렸던 피에 대한 속죄다.
 
 아이의 친모인 한나, 비록 아이를 다시 찾았지만 그녀 역시 갈등하고 괴로워한다. 아이는 톰과 이자벨을 아빠요 엄마로 알고 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아이가 받아 들여야 하는 상실이 너무 크다.
 
 한나는 톰에 대한 고소를 철회한다. 실상 자기 남편이 바다에서 죽은 것도 증오와 냉대 때문이었다. 한나는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독일인과 결혼했다. 남편은 영국인 사이에 살아야 했던 죄없는 독일인이었을 뿐이다. 그토록 착하고 다정했던 남편이 집단 증오에 의해 희생당했다. 그녀의 딸도 따지고 보면 증오의 희생양이었다. 이 증오, 이 원망을 끊을 수 있는 힘은 사랑, 그리고 용서다. 한나는 그 길을 받아들인다. 어른들의 증오로 아이가 희생될 수는 없기에, 아이만은 사랑과 희망으로 살아야 하기에.
 
 르네 지라르는 십자가는 폭로라 했다. 예수는 십자가 위에서 인간의 죄를 폭로하신다. 인간의 잔인함, 실체, 폭력, 증오를 폭로하신다. 예수는 그 십자가에서 인간의 본성을 폭로하실 뿐 아니라 치유하신다. 예수의 방식은 용서와 사랑이다. 십자가에서 세상의 모든 폭력을 끌어안으시고, 대신 사랑으로 빚을 갚으신다. 폭력의 순환고리를 끊으신다. 그래서 십자가는 역설이다. 인간이 신을 정죄하고 있으니 역설이고, 죄인이 의인을 정죄해서 역설이다. 사랑을 받는 자가 사랑을 베푸는 자를 거절해서 역설이다. 그러나 그 역설이 사랑의 본질이고 치유의 핵심이다.
 
 두 바다 사이의 등대의 불빛이 비춰진다. 오해와 갈등, 원망과 증오, 전쟁과 상처로 갈라진 사람들 사이의 바다를 비춘다. 파도가 지나간 자리, 그 자리에 사랑을 새기자.


김양현 목사.jpg▲ 김양현 목사 <기독영화 평론가>
 
본 글을 기고한 김양현 목사는
서울 영천교회 청년 담당목사로 영화와 신앙의 통섭을 꿈꾸는
기독영화평론가이다. 
부산 CBS 시네마 톡톡을 오랜동안 진행했으며 현재 각종 신문과
잡지에 기독교적 관점의 영화평을 기고하고 있다.
본 글은 월간고신에 기고한 글을 재연재 하는 것임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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