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춘몽 A Quite Dream

기사입력 2016.12.08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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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몽.png
<그림출처 : 네이버 영화>
영화제목 : 춘몽 A Quiet Dream, 2016

장      르 : 가족영화

제 작 국  : 한국 101분

개봉일자 : 2016.10.13

 

감독 : 장률

출연 : 한예리(예리), 양익준(익준),

         박정범(정범),윤종빈(종빈)

   



장 폴 사르트르는 말했다. “만약 지옥이 있다면 그것은 곧 타인이다. 타인이 지옥이다.” 사르트르의 말을 곰곰이 생각한다. 그에게 타인은 어떤 존재였을까? 왜 그는 타인이 지옥 같았을까? 근자에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들을 보니 그의 말이 일리가 있다. 그의 말에 서글픈 공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동네 역사적 가치가 있던 집과 골목이 재개발이라는 명목 하에 순식간에 다 부서졌다. 수십 년간 터를 잡고 살던 사람들이 쫓겨나고 그들의 삶도 부서졌다. 재개발을 둘러싸고 갑론을박이 심했던 모양이다. 사람이 거리에 드러눕고 차라리 나를 죽이라고 아우성 쳤다. 건장한 남자들이 들이닥쳐 들쳐 업고 내어갔고, 이제 그 자리에 콘크리트가 부어지고 있다. 생명이 죽어간다.   

이어령은 아파트 문화는 죽은 문화라 했다. 단절이라 표현했다.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한 공간에 있으나 그들은 서로를 모른다. 행여나 승강기에서 만나면 어색한 인사와 정적이 흐른다. 승강기 문이 열리면 각자의 세계로 들어가고 철문이 닫혀버린다. 마음도 닫힌다. 철저한 고독, 배타적 관계만이 흐른다. 그렇다면 그곳은 지옥이다.   

상암DMC라고 불리는 곳, 한 때 쓰레기장이었으나 이제 거대한 빌딩들, 아파트들이 들어 서 있다. 장률 감독은 그곳에 산다. 그러나 그의 고백처럼 그곳에 사람 사는 냄새가 없다. 준비된 표정들만 있지 진짜 표정이 없다. 배타적 타인들만 존재하는 지옥 같은 곳이다. 그래서 지하도를 건넜다. 그가 건너간 수색이라는 곳, 거기에 사람이 있고 삶이 있다. 준비되지 않는 표정들, 거친 삶, 감춰지지 않는 삶이 그곳에 있다.   

장률이 수색에서 찾은 거친 삶의 주인공들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우리도 진짜 삶이 무엇인지 느끼게 된다. 조선족 예리, 그녀는 아버지를 찾아 한국에 왔다. 여행 왔던 남자와 사랑에 빠졌고 예리는 미혼모에게서 태어났다. 그리고 그 미혼모 어머니는 암으로 죽어갔다. 혼자 남겨진 그녀는 자기 존재를 찾아 한국에 왔다. 그러나 그녀가 맞닥뜨려야 한 현실은 냉혹하다. 그녀가 찾은 존재의 근원인 아버지는 중증 장애인으로 꼼짝하지 못하는 신세다. 예리는 그러한 아버지를 극진히 간호하며 살아간다. 뭐 하나 해 준 것 없는 무능한 아버지를 그녀는 버리지 못한 채 떠안고 살아간다. 그녀가 찾아온 아버지의 나라는 지옥 같은 곳이다.   

예리가 생계를 위해 운영하는 ‘고향 주막’, 오래된 주택 마당에 비닐로 대충 얼기설기 엮은 초라한 가게다. 손님이래야 기껏 세 명이다. 한 물 간 깡패 익준, 정신적 유아기에 머무르고 있는 종빈, 그리고 공장에서 쫓겨난 탈북자 정범이다. 하나같이 사회적 낙오자요 실패자로 보이는 인물들이다. 그들이 수색에 살아가는 표면적 이유요, 수색이라는 공간을 보여주는 상징적 인물들이다. 건너편 사람들의 시선으로 보면 지옥 같은 곳이다.   

춘몽1.png▲ <그림출처 : 네이버 영화>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니 여기가 천국이다. 비록 가진 것 없어도, 잘 난 것 없어도, 그들은 위선적이지 않다. 감출 것도 없다. 원색적 삶이 노출 되는 곳, 그러하기에 이들의 공간은 천국이다. 예리의 마음이라도 얻어 볼 참에 익준은 거동할 수 없는 그녀의 아버지를 씻겨준다. 그러나 가만히 보니 사실상 자신의 과거를 씻는다. 제 몸 하나 간수하지 못하는 종빈은 정범의 받지 못한 월급을 받아주겠다고 악덕 사장실로 다짜고짜 들이닥친다. 정범은 종빈을 무시하고 갖고 놀려는 마을 양아치들과 다짜고짜 멱살잡이를 한다.   

한편 예리는 가게의 다른 손님과 실랑이중이다. 술을 마시던 손님이, 이 가게에 죽치고 있던 양아치들이 안 보인다고 좀 모자란 친구들 어디 갔냐고 떠들어대자 예리는 견딜 수 없다. 역정을 내며 돈 안 받을 테니 당장 나가라며 그들을 쫓아낸다. 예리에게는 좀 모자란, 낙오자인 익준, 정범, 종빈이 진짜 사람들이다.   

장률은 그렇게 사람을 그렸다. 사람 사는 풍경을 그렸다. 별 내용도 없고 화면도 느리다. 특별한 사건도 없고 긴장도 없다. 그런데 묘하게 빨려 들어간다. 왜일까? 바로 내가 살아가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사람 사는 진짜 모습이다. 우리네 삶이 뭐 별거 있는가?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일하고, 밥 먹고, 싸우고 , 그러다 화해하고 , 울다 웃다, 그게 삶이지 않은가? 상암DMC의 사람들, 그 곳의 빌딩들과 차이가 있다면 이들은 지극히 솔직하고 드러내고 서로 의존한다. 그래서 나는 이들의 삶이, 이들의 공간이 천국으로 다가온다. 미라슬라브 볼프의 말처럼 단절이 아닌 관계가 있는 곳, 이기적 배제가 아닌 이타적 포용이 있는 곳, 그래서 수색은, 고향 주막은 천국이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가지 않은 이유도 비슷하지 않았을까? 갈릴리의 수도였던 티베리우스에 가지 않았던 이유를 알 것 같다. 예수께서 가버나움, 나사렛, 가나 같은 시끌벅적하고 소외된 사람들이 살던 곳으로 가셨는지 알겠다. 그들은 장률의 인물들처럼 어린아이와 같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전하신 ‘천국은 어린아이와 같은 이들이 들어가는 곳’이라는 말씀이 긴 여운으로 남는다. 이기적 욕망으로 쌓아올린 배타적 공간보다, 이타적 헌신으로 무너진 포용의 공간이 천국 아닐까? 그런 삶, 그런 사람, 그런 공동체를 꿈꿔 본다. 영화 제목처럼, 어느 시인의 고백처럼, 그렇게 살다가 이 생 끝나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고 싶다.




김양현목사.jpg본 글을 기고한 김양현 목사는
서울 영천교회 청년 담당목사로 영화와 신앙의 통섭을 꿈꾸는 기독영화평론가이다.

부산 CBS 시네마 톡톡을 오랜동안 진행했으며
현재 각종 신문과 잡지에 기독교적 관점의 영화평을 기고하고 있다.

본 글은 월간고신에 기고한 글을 재연재 하는 것임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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