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이라 불리운 안디옥교회

기사입력 2012.11.24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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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이라 불리운 안디옥교회
(행 13:2~3)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성경에는 두 곳의 안디옥이라는 지명이 기록되어 있는데 한곳은 수리아 안디옥이고 다른 하나는 비시디아 안디옥이다.
그 중 수리아 안디옥은 현재의 터키 남동부 지역으로서 지중해 연안의 시리아의 국경과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다.
수리아 안디옥의 오늘날 터키 지명은 안타키야로서 로마와 알렉산드리아와 더불어 그리스-로마 세계의 3대 도시 중의 하나였고, 초대 기독교 확장의 중심지였다. ‘안디옥’이라는 명칭은 주전 300년경 알렉산더 대왕의 장군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셀레우코스 1세(BC 321~281)가 건설하여,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안티오키아’라고 명명했으며, 마케도니아에서 인도 국경까지 이르는 시리아 왕국의 번창했던 수도이기도 했다. 이곳은 외항(外港) 셀레우키아를 통하여 지중해 각지와 연결되고, 또 동쪽으로 이어지는 대상로(隊商路)가 있어 통상 무역의 요지로서 예로부터 이 도시를 ‘동방의 여왕’이라고 불리웠으며 인구도 40- 50만에 달했다고 한다.
그 후 로마 제국, 비쟌틴 제국, 오스만 제국 등에 편입되었으며 1차 세계대전 이후 1918년부터 1939년까지 프랑스 자치령으로 있다가 주민 투표에 의해 터키 공화국으로 편입되었다.
이 과정에서 찬란하고 아름답던 안디옥은 작은 소도시로 전락하고 현재는 그 찬란했던 왕국의 유적마저도 찾아보기 힘들 정도가 되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에게 있어서는 여전히 잊지못할 중요한 도시로서 해마다 수많은 기독교 유적 방문객들이 몰려들고 있다.
안디옥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 불리웠던 곳이다.(행11:26) 스테반 집사의 순교 이후 예루살렘 교회의 성도들이 각지로 흩어지면서 시리아 안디옥 지역에 정착하여 안디옥 교회를 형성하였다.(행 11:19-21) 이들은 이곳에서 헬라주의 유대인들뿐만 아니라 “헬라인에게도”(행 11:20) 전도하는 이방인 선교를 시작하였다. 예루살렘 교회는 그 전도 사역을 돕기 위해서 바나바를 파견하였다. 그리고 바나바가 이곳에서 잠시 동안 전도한 후에, 그들은 극심한 기근을 만난 예루살렘의 성도들에게 구호품을 전달해주기 위해 파송되었다. 안디옥에 있는 제자들은 그곳에서 처음으로 “그리스도인들”이라고 불려졌다. 이는 별명을 잘 짓기로 유명한 그 지역 대중들에게서 나온 명칭인 듯하다. 어쩌면 우리나라에서 기독교인들을 예수쟁이라고 부르는 것과 비슷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상한 무리들, 자신들과는 분명히 다른 삶을 살아가는 무리들, 유대인과 이방인들이 한데 모여 살아가는 무리들을 향해 한편으로는 동경하는 마음으로, 한편으로는 비아냥거리는 마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안디옥 교회는 바울과 그의 동료들을 세 차례의 전도여행을 파송했고 베드로가 초대 감독이었고 이그나시우스가 2대, 제롬이 3대 감독으로 있었다고 한다.
3대 감독인 제롬과 교회사가 유세비우스의 글에 보면 누가가 이곳에서 출생했으며 전문 직업이 의사였다고 한다. 이것을 근거로 할 때 바울이 누가와 동역하게 되는 계기가 바울이 사역할 때 누가가 바울의 설교를 들었고 그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 틀림이 없는 것 같다.
서머나 교회 감독이었던 순교자 폴리갑이 이곳 출신이었다. 그는 원래 노예였으나 서머나의 돈 많은 과부가 그를 사서 서머나로 데리고 가 자유인으로 만들고 양육했다고 한다. 또한 갑바도기아 지역의 중세 수도원 운동의 지도자였던 성인 시몬이 이곳 출신이기도 하다.


현재 남아 있는 기독교 유적으로는 성베드로 동굴교회가 대표적인데 살피우스 산 중턱에 위치하여 있다. 베드로 사도가 이 곳에서 선교하였다고(갈 2:11)하여 ‘베드로 동굴 교회’라 부른다. 교회 내부에는 제단과 베드로 상이 남아 있으며 교회 내부에서 산 뒤쪽으로 이어지는 약 4Km정도 되는 통로가 나 있는데 당시 핍박당하던 성도들이 박해자들을 피해 도망하던 비상 출구로 사용되었고 산 위에 위치한 동굴 공동체로 가는 통로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실루기아 항구
안디옥에서 서쪽으로 30분 가량 거리에 실루기아 항구가 있다. 이 곳은 바울과 바나바가 최초로 전도여행을 위해 배를 타고 출항한 항구이다. 실루기아는 수리아왕 실루기스가 자기 이름을 따서 실루기아라는 성읍을 삼았고 그곳에 자신의 분묘도 만들어 놓았다.
 
지금은 그 어디에서도 옛 항구로서의 모습을 찾아 볼 수 없지만 이곳에 서서 지중해의 출렁이는 바다를 바라보노라면 바울과 바나바가 전도여행을 출발하던 그 첫 마음이 느껴진다.
“내 주 하나님 넓고 큰 은혜는 저 큰 바다보다 깊다. 너 곧 닻줄을 끌러 깊은 데로 저 한가운데 가 보라!
언덕을 떠나서 창파에 배 띄워 내 주 예수 은혜의 바다로 네 맘껏 저어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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