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다음 침공은 어디? (Where to Invade Next)

기사입력 2016.11.21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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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21_18-25-58.png▲ <그림출처 : 네이버 영화>
 
다음 침공은 어디? Where to Invade Next, 2015



다큐멘터리미국119분 2016.09.08 개봉

 

감독 : 마이클 무어

출연 : 마이클 무어



오래 전 선지자 이사야는 외쳤다.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는, 어린 양과 이리가 함께 먹으며 독사 굴에 손을 넣어도 물지 않고,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는 나라, 해함도 없고 상함도 없는 나라가 될 것이라 외쳤다. 그 곳은 공의와 평화가 공존하는 나라다. 선지자는 이러한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며, 우리가 이러한 나라를 이루어야 한다고 외쳤다. 아모스 선지자도 마찬가지다. 정의를 강물같이, 공의를 하수같이 흘러가게 하라고 외쳤다.   

우리는 이러한 나라를 꿈 꾼다. 물론 이런 나라는 피안의 세계가 아니다. 선지자들이 꿈꿨던 나라는 현실세계다. 우리가 발 디디고 사는 이 땅, 우리가 함께 먹고 마시는 이 곳에 이상적인 나라가 가능하다고 외쳤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본질적으로 거룩한 불만을 안고 사는 삶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이상적 나라에 미치지 못하는 현실 세계에 대한 거룩한 불만이 있다. 그러한 것이 선지자적 삶이다. 선지자적 삶은 늘 더 나은 나라, 더 나은 세상을 지향한다.   

그런 의미에서 마이클 무어는 현대판 선지자라 할 수 있다. 그는 미국이 더 나은 나라 되기를 꿈꾼다. 전작에서 그는 총기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루었다. 고등학생이 기관총을 들고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난사하는 나라가 어떻게 정상이냐고 외쳤다. 도대체 세계 경찰을 지향한다면서 미국은 왜 늘 전쟁에 가담하는 지를 따져 물었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전쟁이며 누구를 위한 총기 허용인지를 물었다.   

이번에도 그는 아주 재미있게 그리고 의미 있게 질문들을 던진다. 그의 제목이 참으로 역설적이다. 그가 정한 제목인 ‘다음 침공은 어디?’는 미국 정부의 정책을 비꼰다. 세계 경찰을 자처하면서 침공하는 미국 국방부에 일침을 가한다. 그들의 정책은 실패했으니 이제 자신이 직접 침공을 감행하겠다고 도전한다.   

마이클 무어는 유럽의 9개 국가를 찾아 다녔다. 미국이 세계 최고의 나라라는 자부심이 과연 맞는 지, 미국이 소위 american standard 가 맞는 지 하나씩 짚어 나간다. 그의 침공을 따라 우리도 가 보자.   

2016-11-21_18-29-12.png▲ <그림출처:네이버 영화>
 우선 그가 처음으로 도착한 나라는 이탈리아다. 이탈리아는 일년에 8주 유급휴가와 13번 월급이 보장된다. 점심시간이 두 시간, 그들은 사내 급식으로 대충 떼우지 않고 집에 가서 요리를 해서 먹고 여유 있게 다시 일에 임한다. 물론 회사의 이사들과 직원들의 협업은 최고다. 최고의 품질과 질 좋은 상품을 생산한다.

이어서 프랑스로 가 보자. 프랑스의 공립 학교에서는 코스 요리가 점심으로 제공된다. 프렌치 프라이라는 것은 프랑스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인스턴트 음식을 학생들에게 절대 제공하지 않는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렇게 제공하고도 급식비가 우리보다 더 싸다는 사실이다.

숙제를 전혀 시키지 않으면서 최고의 교육을 자랑하는 핀란드, 교육의 목적이 아이들의 행복이라는 교사들, 자유로운 토론과 자신이 원하는 과목을 집중해서 공부할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 그리고 굳이 대학을 가지 않아도 풍요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제도가 갖춰진 나라, 교사들과 학생들의 표정에 그들의 행복이 묻어난다.

이름이 생소했던 나라 슬로베니아, 그들은 대학 교육이 무상이다. 정부가 모든 대학생들의 학비를 제공한다. 그들은 대학을, 그리고 대학생들을 사회적 자산으로 여긴다. 물론 대학이 돈 벌이를 추구하는 일은 없다. 정부의 지원으로 공부한 학생들은 당연히 사회에 기여하는 직업으로 진출한다. 선순환이 진행된다. 그들에게 학자금 대출과 상환을 이야기하자 그게 가능한 일이냐고 의아해한다.

독일은 과거사를 역사책에서 정확하게 가르친다. 그들은 지난 세월 나찌 정권의 만행과 홀로코스트의 희생을 학생들에게 가르친다. 그리고 다시는 이 땅에서 이런 비극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교육한다.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는 나라, 총리가 직접 무릎 꿇고 사과하는 나라, 그래서 독일은 무서운 나라다. 물론 그들이 이룬 복지는 덤이다.

죄를 범한 자들을 죄인 취급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적응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포르투갈과 노르웨이, 그들은 생각을 달리 했다. 범죄자들이 자신의 과거를 반성하고 다시 사회에 적응하도록 하는 것이 교도소의 역할이라는 것을 분명히 한다. 물론 재범률을 줄고 새출발은 늘었다.

아이슬란드는 국가 부도의 위기에 처했었다. 무분별한 금융 투자로 인해 그들은 파산 직전에 이르렀다. 아이슬란드 국민들은 그러한 끔찍한 실수를 반복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우선 금융 파산에 이르게 한 자들을 엄중하게 심판했다. 그리고 남성들 위주의 리더십에 변화를 꾀하였다. 금융 위기에서 살아남은 은행권은 대부분 여성 사장들의 것이었다. 남성들에 비해 여성들은 덜 탐욕적이고 무리한 투자를 하지 않아서다. 이 교훈을 바탕으로 그들은 여성들에게 금융과 기업을 맡겼다. 결과는 대단히 만족스럽다. 남성들은 자기들 밖에 모르지만 여성들은 전체를 아우른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고 그들의 생각은 결과적으로 맞았다. 상생의 경제가 정착되었다.   

마이클 무어는 이러한 유럽의 앞서가는 국가들보다 미국이 어떤 점에서 더 나은 지, 어떤 면에서 최고인지 묻는다. 인정할 것은 인정하자는 게다. 전쟁같이 무력으로 침공하지 말고 이런 좋은 제도를 왜 도입하지 않는지 따져 묻는다.   

우리도 마찬가지 아닌가? 어떤 이들의 기도에서 늘 나오는 레파토리가 있다. “이렇게 좋은 나라 이렇게 행복한 나라에서 살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그 기도를 들을 때마다 의아스럽다. 무엇이 좋은 나라인지, 무엇이 행복한 것인지 묻고 싶다. 아마도 그러한 기도 속에는 자신은 행복하고 편하게 산다는 좁은 생각, 그리고 우리보다 못한 제3세계- 아프리카나 일부 동남 아시아 국가들과의 비교에서 나온 생각임이 분명하다. 좋은 것을 보지 못했으니 더 나은 세상을 꿈꾸지 못하는 것일 테다.   

마이클 무어의 다큐를 보는 내내 불편하고 답답하다. 왜 우리는 저러한 세상을 만들지 못할까? 왜 우리는 노사가 함께 행복한 나라 만들지 못할까? 왜 우리의 대학생들은 학자금, 하숙비, 취업난에 허덕일까? 왜 우리는 비싼 병원비를 내고 살아야 할까? 왜 우리의 학생들은 형편없는 급식에 만족하고 살아야 할까? 왜 우리는 주어진 환경이 제일 좋은 것이라고, 우리나라가 제일 좋은 나라며 잘 사는 나라라는 생각에 만족하고 살아야 할까?  

마이클 무어가 찾아 간 사람들, 그들은 하나같이 대답한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라고. 부단히 의문을 제기하고, 부단히 맞서 싸우고, 부단히 고민한 결과라고. 엄청난 시행착오를 거쳐 이룬 사회적 합의라고 말이다. 그렇다. 깨어 있는 시민의 연대가 필요한 시점이다. 숙명론에 젖어 너무 쉽게 만족하는 대신, 더 나은 세상을 꿈꾸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의지와 참여다. 선지자적 외침과 동참이 그런 세상을 만든다.   

마이클 무어가 우리나라에 침공할 날을 기대할 수 있을까? 우리는 무엇으로 그의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을까? 우리는 무엇으로 그의 카메라 앞에 설 수 있을까?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대통령, 민생을 최우선으로 하는 정치인들, 노동자들의 권익을 우선시하는 기업가, 학생들의 행복을 일순위로 생각하는 교사, 대화와 타협으로 이룬 통일국가? 꿈이라도 꿔보자.


김양현목사.jpg

본 글을 기고한 김양현 목사는
서울 영천교회 청년 담당목사로 영화와 신앙의 통섭을 꿈꾸는 기독영화평론가이다.

부산 CBS 시네마 톡톡을 오랜동안 진행했으며
현재 각종 신문과 잡지에 기독교적 관점의 영화평을 기고하고 있다.

본 글은 월간고신에 기고한 글을 재연재 하는 것임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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