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 고향 다소

기사입력 2012.11.24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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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고향 다소는 현재는 타르수스(Tarsus)라고 불리우는데 터키의 남동부 지역 지중해 연안에 위치했던 화려한 항구도시였으며 소아시아 길리기아의 수도였으나 지금은 지중해에서 15㎞의 내륙에 위치한 도시이다.
고대 북부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하나인 히타이트 문명의 영향 하에 건설된 도시로서 고고학의 발굴 결과에 따르면 사람이 정착하기 시작한 시기는 기원전 3000-40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고 전설에 의하면 아담의 셋째 아들 셋이 이 도시를 건설하였다고 전해진다. 이러한 오랜 역사를 지닌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거의 대부분의 유적들은 지하 15~20미터 이하에 뭍혀 있으며 지금은 그 화려했던 면모를 잃은 작은 도시로 남아 있다.
바울이 자신의 고향을 “소읍이 아닌 길리기아 다소 성”(행 21:39)이라고 말한 것과 같이 바울이 살던 시대에 다소는 정치, 경제, 학문적으로 아주 발전된 도시였다. 다소는 동서를 잇고 바다가에 발달된 도시로서 히타이트, 페르시아, 시리아, 이집트, 로마. 비잔틴 그리고 오스만 제국 등 수많은 제국들의 중요 도시였다.
다소는 직물과 천막 제조업이 성했던 도시였는데 그 원료는 길리기아산 아마였고, 천막 제조 재료는 킬리시움이라 불리는 염소털의 직물이었다. 천막 만드는 사람이었다고 알려진 아버지의 영향으로 바울도 자연스럽게 천막 만드는 일을 배웠고 후에 사역을 하며 천막 만드는 일을 할 수 있었다.
       

현재까지 남아있는 유적지로서는 바울의 문, 바울의 우물, 바울 기념교회 등이 있다.
 도시를 들어서다 보면 도로 가에 돌로 만든 작은 문이 하나 서 있는데 이 문의 이름은 원래는 바울의 문이라 불리웠으나 이후 이슬람이 이 지역을 지배하면서부터 클레오파트라의 문이라 불리게 되었다. 세계 각 지역의 사람들이 지중해를 통해 다소에 도착하여 도시와 바다를 이어주는 도로에 위치해 있던 이 문을 통해 당시 최고의 도시 다소로 들어왔을 것이다. 사도바울도 어린시절 이 문을 통해 드나들던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바라보며 세계적인 시각을 가졌었고 하나님은 이러한 그를 사용하여 세계 복음화의 사명을 감당케 하셨다.
이 클레오파트라 문과 관련하여 전해지는 이야기가 있다.
주전 41년 이집트의 여왕 클레오파트라는 지중해를 배를 타고 거슬러 올라와 이곳에 주둔하고 있던 로마의 안토니우스 장군을 방문했다. 클레오파트라는 줄리어스 시이저를 유혹하여 자신의 보호자로 삼았으나 그가 암살당하자, 안토니우스 장군에게 접근하기 위하여 다소까지 찾아왔던 것이다. 이 때 클레오파트라는 왕위의 표상이 되는 온갖 여왕의 장신구들을 장식하고, 제2의 사랑과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와 같은 모습으로 방문했다. 다소에서 이 두 사람의 낭만적인 만남은 그 후의 역사를 크게 바꾸어 놓았다. 다소에 세워진 클레오파트라 문은 그녀의 다소 방문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워진 것이라고 한다.
지난 5백년 동안 회교의 지배하에 있는 다소는 아직 유적들이 발굴 중이어서 이 도시는 외부 관광객의 방문이 거의 없다. 바울의 생가와 그 마당에 위치한 바울의 우물(우물의 깊이는 38미터)과 바울 기념교회를 보기 위한 기독교인 순례객들이 꾸준히 이곳을 찾고 있을 뿐 이곳 다소에서 바울은 전혀 무명의 이방인에 지나지 않다.
사도바울은 다소에서 자라며 자유로운 헬라도시의 문화적 분위기를 접하고, 또 유대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유대인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로마 시민권자로서 최고의 교육과 문화적인 혜택을 받았던 것 같다. 바울은 이로인해 당시의 공용어였던 헬라어와 유대인들이 사용했던 아람어 그리고 학문 연구용 라틴어와 지역 언어인 아나톨리아 방언 등을 두루 배울 수 있었다. 이러한 다양한 문화를 배경으로 자라난 바울은 이방 선교를 위해 잘 준비된 일꾼이었다.
사도바울이 고향 다소로 돌아온 후 바나바와 안디옥 교회에서 동역을 시작하기 전까지 다소에 머물렀던 시기동안 그이 행적에 대한 기록은 거의 없다. 그러나 그의 생애를 생각해 볼 때 그는 다소라는 세계적인 도시에 몰려들었던 수많은 이방인들과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을 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바울을 바나바가 안디옥 교회로 데리고 가서 함께 동역하여 바울은 안디옥 교회의 큰 부흥을 일으키는 중심 인물이 되었고 이방 선교를 위해 파송된 최초의 선교사가 되었다.
다소를 돌아다니다 보면 회당이나 시장 그리고 바울의 우물이 있는 자신의 집에서 사람들에게 열심히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는 바울의 음성을 듣는듯 하다. 그리고 다소가 다시금 복음의 일꾼을 키워내고 전 세계에 복음을 전하는 도시로 변화되어지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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