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론]사망아 네가 어디 있느냐?

기사입력 2016.11.07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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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청난 일을 하는 사람들도 죽을 병들어 침대에 눕게 되면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엘리자베스 귀블러로스는 죽음선고를 받은 사람은 대체로 다섯단계를 지나면서 죽음에 이른다는 연구조사를 발표했는데 학계에서는 이를 "죽음의 단계" 라고 명명하여 가르치기도 하고 배우기도 합니다. 제가 조금씩 덧붙여서 나눠보려고 합니다.
첫단계는 거부입니다. 거부란 인정할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 하필이면 나냐? 나는 아직 그것을 인정하거나 동의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는 이성적인 부정을 의미합니다.
둘째단계는 분노입니다. 왜 하필이면 나인가? 나보다 훨씬 죽음에 이르는 문턱에 다다른 악인들이 많고 또 흉악한 인생들이 허다한데 나같이 열심히(?) 살아온 사람에게 죽음의 방문이란 말인가? 화가나는 단계입니다.
세째 단계는 타협이라는 것입니다. 뭐 방법이 없을까? 꼭 죽어야만 하는가? 궁리와 고민속에서 조물주 또는 전능자라고 여겨지는 자신의 신에게 소위 흥정같은 거래의 손을 내미는 것입니다.
"내게 한번의 기회를 준다면 정말 재산다 팔아 고아와 과부를 위해 살테니 기회를 달라" 뭐 이런 유형의 타협을 시도하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간절한 기도를 하기도 하고, 실제로 기부행위도 하면서 그렇게 살것임을 맹세하는 과정이 있기도 합니다.
넷째 단계는 우울입니다. 문제해결의 기미가 안보이고 병세는 깊어지고 살수있는 길이 안보일 때 찾아오는 마음의 낙심입니다. 울기도 하고, 정신적인 무너짐이 심해져서 홀로 있고 싶어 사람들을 외면하기도 하는 과정을 지나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이 단계의 마지막 부분에서 자신의 우울을 창의적으로 활용하기도 합니다. 이별을 준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는 과정에 틀어졌던 관계를 후회하면서 만남을 갖고 화해를 하거나 좋은 관계로 정리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마지막 단계는 수용입니다. 수용의 단계에서 다양한 작은 단계들이 포함되어 있기도 합니다. 이젠 정녕내가 죽어야 하는구나... 하는 마음의 준비가 되는 마지막 단계입니다. 여기서 인간은 성자가 되기도 하고 그저 별특이한 모습을 보이지 않고 죽어가는 사람을 봅니다.
넷째단계에서 화해와 용서를 시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다섯째 단계에서 그일을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유언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종교적 귀의를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죽음의 마지막 순간에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기대와 소망을 크게 갖는 사람도 있습니다.
죽음학의 대가로 이름난 독일인 학자 알폰스 데켄은 죽음에 이르는 단계를 여섯단계로 보면서 그 단계를 기대와 소망의 단계라고 명명하였습니다.
육신은 죽으나 영혼은 결코 소멸되지 않는다고 믿는 데켄은 이 단계에서 자신이 평생 사모해온 부활의 주, 하나님이 통치하는 영원한 나라를 환희가운데 믿음으로 바라보면서 기대하고 소망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합니다.
사실 저는 그리스도안에서 죽는 죽음은 복된 죽음이라고 믿는 사람입니다. 성도의 죽음은 존귀한 죽음이라고 생각합니다. 곤고하고 피곤한 이 세상을 떠나는 영원한 안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손톱이나 머리카락과 매일 매일 이별하면서 그것은 빤히 바라보고 죽음을 묵상합니다. 육신일부인 손톱이나 머리타락과의 이별을 내눈으로 바라보면서 영원한 작별연습을 합니다. 수고했어... 그동안 고마웠어... 나를 위해 진심 말없이 수고해 주어서 고마워...
마지막날 내 육신전체와도 그렇게 이별할 것입니다. 내 몸아... 정말 수고했다. 너로 인해 내가 이땅에서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 생을 살았는지 몰라... 너의 수고로 인해 내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주의 아름다운 성도들과 복음안에서 교호하며 주를 찬양했었단다...
그렇게 죽음을 맞이할 육신의 일부와 교제합니다. 죽음이 그렇게 낭만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교통사고로 길에서 갑자기 죽음을 맞이할수도 있습니다. 사고사로 비명횡사 할수도 있습니다.
전염병이나 질병으로 죽을수도 있습니다. 장수하다가 땅에서 영광을 누리며 살다가 아름다운 자연사를 맞이할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아무도 예측할수 없습니다. 그래서 평소에 죽음을 묵상하고 죽음을 받아들일 준비를 합니다.
오늘은 토요일 아침 화창한 아침에 아름다운 죽음을 묵상해 봅니다. 모든이들과 할수있는 한 화평을 도모하고, 할수 있는한 선한사랑을 나누기를 소망합니다. 동기가 악하지 않다면 모든 과정에 일어나는 연약함들은 서로가 사랑으로 격려하고 믿음으로 소망하는 삶을 사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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