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칼럼]지금도 일하시는 하나님

기사입력 2016.10.27 21:34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기사내용 프린트
  • 기사내용 메일로 보내기
  • 기사 스크랩
  • 기사 내용 글자 크게
  • 기사 내용 글자 작게
14885708_1274144705950201_727145386_n.jpg▲ 이찬우선교사는 인터서브선교회 남아시아 지역대표로 사역하고 있다.
나이 스무살에 ‘선교’라는 용어가 내 삶에 흔히 입에 오르는 단어가 되었다. 그리고 나이 서른 여섯에 타문화권에 ‘선교사’로 나가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 햇수로 이 십 년째 선교사로 살고 있다.

‘선교’의 정의가 선교학 교과서마다 각기 달리 정의되고 있고, 대부분의 선교사들도 자신들만의 ‘선교’에 대한 정의가 있을 것이다.필자도 타문화권 선교 경력이 20년이 가까이 오는 이 시점에 선교에 대한 정의를 여러 개 가지고 있다. 어떤 모임에 초청되어 선교 이야기를 나누게 될 때마다 각기 다른 정의로 선교를 이야기한다. 

그 중에서 가장 쉽게 누구에게나 공감받을 수 있는 정의는 바로 이것이다.

“선교는 하나님을 알리는 것이다.”

하나님을 알리기 위해서 나는 우선 그 분을 알아야 한다. 이것은 아주 당연한 원리이다. 선교사의 삶을 20년 가까이 사는 이 시점에 또 질문을 한다. 나는 정말 하나님 그분을 아는 사람인가?

제대로, 성경적으로 나는 그 하나님을 아는 사람인가?

그렇다고 한다면 이 얼마나 교만한 태도인가? 그 위대하신 하나님을 내가 안다고? 이 얼마나 무례한 태도인가! 한편 아니라고 하면 그럼 나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누구를 알리는 삶을 살고 있는것인가에 대한 깊은 회의가 동시에 들기도 한다. 

분명한 것은 지난 20여 년 동안나는 이런 저런 모양으로 내가 경험한 그 하나님을 알리는 삶을 살고 있다.


중앙 아시아 K국에서 선교 활동을 하던 2000년대 초반에 어느 날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마을 사람 전체가 무슬림 혹은 공산주의 시대를 살면서 무신론을 종교로 가지고 있는 이들에게 무턱대고 성경 구절을 말해주는 것은 결코 지혜롭지도 않았고, 또한 그렇게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이들을 대상으로 마을에서 지역사회개발 사역의 일환으로 여러 사역들을 진행하는 중에 문득 내 안에 질문이생겼다.

“나는 지난 2년 동안 이들에게 기회가 되는대로 내가 한국에서 신앙 생활을 하면서 경험한 그 하나님, 그리고 미국에서 10년 정도 살면서 알게 된 그 하나님이 누구인지 설명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이들은 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무슨 생각이 드는 것일까?” 혹시 이들은 나의 하나님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 그것은 너의 한국에서의 이야기이잖아. ”때로는 “아, 그래 그런데 그것은 네가 미국에 살때 미국에서 경험한 하나님 이야기이잖아~, 우리와는 별로 상관이 없는 이야기인데 이제 그만하자.”

이렇게 직접적으로 내게 말한 분은 없지만 그날 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다음과 같이 정리를 하게 되었다.


선교사는 어떤 의미에서 증인이다. 즉, 목격자이다. 하나님이 어떤분이시고, 어떤 일을 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목격하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증거해 주는 사람이다. 

한국에서 경험한 하나님 말고, 미국에서 경험한 하나님이 아닌,  이들 마을 사람들과 함께 일하고 살아가는 속에서 내가 경험한그 하나님을 증거해야 할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낀 것이다. 그래야만 이들이 내 이야기에 공감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때부터 사역의 현장, 삶의 현장에서 알게 된 하나님의 이야기들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현장의 이야기들을 이들에게 나누기 시작했다.

그 중에 한 에피소드를 적어 본다.

우리가 일하던 그 마을의 주 경제적 소득원은 양과 소, 그리고 말을 기르는 목축이었다. 조상대대로 유목민의 삶을 살아온 이들에게는 아주 당연한 삶의 모습이다. 그 중에서도 매일 젖을 짜서 생계를 유지하는 가정들이 아주 많이 있었다. 천산산맥 끝자락에 위치한 이 마을에는 주민들이 약 400여 명 살고 있었다. 대부분 가정에 한 두 마리의 젖소를 기르고 있었다. 일년에 한 번씩 소가 새끼를 낳는데 때로는 그 때가 한 겨울일 때가 있다. 한 겨울에는 기온이 영하 25도 이하로 내려가는 곳이다. 마을 사람들은 보통 자기가 기르는 암소가 새끼를 낳을 때를 알고 있다. 새끼를 낳기 며칠 전부터 어미소는 여물을 먹지 않는다. 이상한 울음 소리를 낸다. 어미소의 행동에 변화를 아주 잘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정확한 시간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때로는 저녁 내내 외양간에서 기다렸는데 결국 새벽 한 두 시에도 새끼를 낳기도 한다. 밖은 영하 25도, 외양간에 난방도 없는 곳에서 자칫 갓 태어난 송아지는 금방 얼어 죽을 수도 있는 상황. 이 때 집 주인은 밤새 깨어서 암소 곁에서 새끼 낳는 것을 지켜 보고 있다. 같이 그 추위에 고생을 하면서……누가 이 따뜻한 마음을 주신 것일까? 이들은 아주당연한 마음가짐이라고 말하지만, 짐승을 돌보는이 마음, 추위를 아랑곳하지 않는 그 인내의 마음은 분명히 창조주되시는하나님께서 주신 마음이다. 비록 그들은 아직 예수 그리스도를 모른 채 그들의 신인 ‘알라’를 부르고 예배하고 경배하는 삶을 살고 있지만…….별로 자신들을 가치있는 인생이라고 여기지 않는 이들에게 하나님이 당신들에게 이와 같은 따뜻한 돌봄의 마음 주신 분이라고 소개를 하며 지금도 그 하나님이 당신들 삶 속에서 역사하고 계시다고 이야기를 해 준다. 마을 사람들을 모아 놓고 우리가 하는 일들을 이야기 하면서 이들 가운데 지금도 살아계시며 역사하시는하나님의 이야기를 들려 줄 때는 이들의 입가에 은은한 웃음이 맺힌다. 그리고 서로를 바라보면서 미소로 자신들의 삶 속에 임한 그 분의 임재의 증거를 나눈다.


하나님은 지금도 지구촌 모든 구석구석에서도 일하고 계신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서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요한복음 5장 17절).

선교사들은 증인들이다. 목격자들이다. 자신을 증거하는 것이 아니고,자신의 사역을 증거하는 자들이 아니다. 자신의 교회를 증거하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을 증거하는 자들이다. 보냄 받은 지역에서 지금도 일하시는 그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이다.

사역지를 돌아다니는 일을 맡은 지 이제 2년이 조금 넘어가고 있다. 많은 사역자들을 만난다. 많은 사역지들을 돌아 본다. 정말 눈물 겹도록 감사한 사람들도 많고, 사역들도많다. 하지만 동시에 참으로 안타까운 현장들, 안타까운 사역자들도 보인다.

선교사들인데, 선교사역들인데……그 선교의 주인되시는 그 하나님은 안 보이고, 사람이 보이고, 사역들만 보이는…… 그 안타까운 현장을 본다. 더욱 안타까운것은 그들을 파송하고 후원하는 교회도 이 안타까움을 보지 못한채 지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아니 지나가는 정도가 아니고 오히려 그런 선교사를 칭찬하고 격려하고 그들이 한 사역을 자랑하고 추켜 세우는 모습들을 종종 본다.

선교는 하나님을 알리는 것이다. 그분을 경험하지 않고서는 그분을 알릴 수 없다. 본국에서의 그 경험이 아닌, 선교 사역지에서 경험한 그 하나님을 알려야 하는 것이다.

<저작권자ⓒCTMNews.kr & ctmnews.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
 
 
 
 

주소: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상로 102 3층(초량동) | 인터넷신문등록번호:부산광역시 아00096 / 등록일자 : 2011.07.25

발행인: 사단법인 로고스 김성철 / 편집인 : 김성철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주연 

TEL : 070-4070-9046 FAX : 03030-462-6698  | e-mail : ctmnews@ctm.kr 

Copyright ⓒ2011 http://ctmnews.kr All right reserved.

CTMNews.kr의 모든 콘텐트(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