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이야기) 쯔빙글리와 언약사상

기사입력 2015.12.19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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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흥교수.jpg
 개혁주의 신학과 언약신학(Federal Theology, Covenant Theology)의 발전
종교개혁의 형식적 원리로 평가되는 ‘오직 성경으로써’(sola scriptura)와 그 성경에서 가르치는 올바른 구원의 교리로서 종교개혁의 ‘실질적 원리’라고 평가되는 ‘오직 믿음으로써’(sola fide)의 교리에 관해서는 루터파와 개혁파를 막론하고 동일하게 고백하며 강조하였습니다. 그런데, 츠빙글리로부터 시작되는 개혁주의 신학은 ‘오직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롭게 됨을 인정하는 자는 누구나 그 주님을 섬기는 일에 헌신해야 한다’는 사실을 특별히 주목하였고, 바로 그 헌신의 삶을 위하여 그리스도인들에게 율법이 순종의 삶의 지침으로 주어져 있다고 강조하였습니다. 율법, 특별히 십계명에 대한 츠빙글리의 긍정적인 평가는 모든 시대에 걸친 성령 하나님의 통일적인 역사하심에 관한 그의 인식에서 나왔습니다. 구약과 신약에 걸쳐 하나님의 뜻을 계시하신 성령님의 사역의 통일성에서 츠빙글리는 성경의 메시지의 통일성도 강조할 수 있었는데, 바로 그 통일성을 지적하기 위하여 그가 사용한 개념이 ‘언약’(covenant)입니다.

츠빙글리의 언약 사상은 특별히 취리히에서 일어난 재세례파 급진주의자들과의 신학적 논쟁에서 뚜렷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오직 성경으로써’의 원리를 문자적으로 적용하였던 재세례파 급진주의자들은 성경에 명백하게 언급되지 않은 모든 교회적, 신앙적 전통들을 반대하고 배격하려 하였습니다. 신약성경에 명시적으로 명령되지 않은 유아세례를 반대하고 자신의 입술로 신앙을 고백한 사람들에게 다시 세례를 베푼 것이 가장 두드러진 사례입니다. 또한 산상보훈의 가르침을 문자적으로 적용하여 모든 합법적인 맹세를 거부하고, 정부나 군대에서 봉사하는 일들도 비신앙적인 일로 간주한 일들도 그런 사례들로 들 수 있습니다. 이들 급진주의자들의 태도는 일견 아주 일관되고 철저한 ‘성결의 삶’을 추구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죽은 문자가 아니라 살아 있는 영’을 강조하였던 그들은 안타깝게도 바로 그 성령께서 하나님의 백성에게 신앙과 삶의 지침으로 주신 성경 말씀을 소홀하게 여기는 오류에 빠져들었습니다. (칼빈이 ‘사돌레토 추기경에 대한 답변서’에서 잘 지적하였듯이, ‘교회 안에 거하시는 성령 하나님’을 배타적으로 강조하였던 천주교, 그리고 ‘그리스도인 개개인에게 영감을 주시는 성령 하나님’을 앞세웠던 재세례파 모두 좌우로 치우쳐서, 정작 바로 그 성령께서 계시하신 객관적 표준인 성경을 소홀하게 여기는 모순에 빠져 버렸습니다.) 츠빙글리는 이런 재세례파 급진주의자들의 잘못된 성경 이해를 바로 잡기 위하여, 또한 성도들이 그들의 가르침에 현혹되지 않고 말씀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도록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을 ‘하나님의 언약’이라는 통일된 관점으로 보는 시각을 강조하게 되었습니다. (이와 연관하여, 지난 번 연재에서 ‘바덴 논쟁’과 ‘베른 논쟁’을 츠빙글리를 비롯한 초창기 개혁파 종교개혁자들이 ‘오직 성경으로써’ 원리의 의미를 바르게 규명하여, 극우의 천주교와 극좌의 재세례파의 위험에서 벗어나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말씀의 교훈을 바르게 세우려 노력하였다는 사실을 주목하여 살펴보았습니다.)
 
언약적 관점에서의 성경 이해와 성경주의
츠빙글리의 언약 사상은 개혁주의 신학이 소위 ‘성경주의’(Biblicism)라는 함정에서 벗어나게 해주었습니다. 성경에 명백히 언급된 대로 해석할 것을 강조하는 재세례파의 성경주의적 입장은 오늘날에도 드물지 않게 나타납니다. 가령 구약의 안식일과 신약의 주일 사이의 차이를 강조하는 견해들에서 여전히 그런 모습을 봅니다. 신약성경에 안식일을 주일로 바꾸라는 분명한 언급이 없다는 이유로, 어떤 이들은 여전히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며, 다른 이들은 주일은 안식일과 본질적으로 다른 의미를 가진 날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언약 신학의 관점에서 개혁주의는 그 둘 사이의 밀접한 관계를 올바르게 가르칩니다. 개혁주의 윤리학자 다우마(J. Douma) 박사는 제4계명의 해설에서 츠빙글리로부터 시작된 언약적 관점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안식일에서 주일로의 변화는 자의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런 변화는 스스로 안식일의 주인이며 안식일의 완성이라고 부르실 권위를 가지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안식일로부터 주일로의 변천을 명확하게 밝혀주는 신약성경의 특별한 구절들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안마다 성경구절을 요청하는 성경주의(Biblicism)적 사고방식을 벗어나면, 유아세례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구체적인 성경구절들이 없어도 성경적인 근거를 가진 주제들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의 날로서 아주 의도적으로 ‘주의 날’(계 1:10)로 불린 일요일은 교회의 초창기부터 존중되어 왔습니다. 초대교회의 디다케(Didache), 안디옥의 이그나티우스(Ignatius)가 ‘마그네시아 교회에 보낸 편지’ 등에는 “그리스도인들이 더 이상 안식일을 기념하지 않고 그들의 삶을, 주님과 그분의 죽으심을 통하여 우리의 삶을 소생케 하는 ‘주의 날’에 맞추고 있다”고 말합니다. 순교자 유스티누스(Justinus)는 ‘일요일’에 도시에서나 농촌에서나 모두들 한 곳에 모여 예배 드린다고 하였고, 교부 테르툴리아누스(Tertullianus)는 일요일이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기쁨의 날’이며, 일요일을 지키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특징이 되었다고 전합니다.” (Jochem Douma, De Tien Geboden, II)

언약 사상은 츠빙글리로 하여금 구약과 신약을 밀접하게 연결하여 통전적으로 볼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언약에 관한 구약성경의 기록들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실현되므로, 츠빙글리는 구약과 신약 사이의 어떤 차이도 보지 못하였습니다: 아브라함 언약의 표징인 할례는 (이제 남자 아이뿐 아니라 여자 아이까지 포함하는) 유아세례로 이어졌고, 대속의 은혜를 가르치는 유월절은 그리스도의 희생제사를 기념하는 성찬으로 연결되었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맡아 그 백성에게 전달하였던 구약의 선지자 직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는 설교자의 직책으로 옮겨졌습니다. 그림자로 표상으로 약속으로 주어졌던 옛 언약의 중요한 요소들이 새 언약에서 실체로 본체로 성취로 이어졌습니다. 언약적 경륜이 다른 시대에 살았지만, 구약의 성도들의 신앙은 본질적으로 신약의 그리스도인의 믿음과 다를 바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츠빙글리의 언약적 접근방법은 다름 아니라 히브리서와 같은 신약성경의 관점을 올바르게 드러내어, 성경을 문자적으로 피상적으로 이해하였던 재세례파 급진주의자들의 오류에 빠지지 않도록 성도들을 인도해 주었던 것입니다. 
 
언약 사상과 사회개혁
그뿐 아니라, 그의 언약 사상은 교회가 사회적 문제들을 비껴가지 않게 해 주었는데, 츠빙글리는 설교를 통하여 종종 그리스도인의 사회 생활, 곧 소작료의 급격한 인하와 같은 경제적인 문제들, 학교교육에 대한 강조와 배려와 같은 교육적 사안들, 가난한 자들을 돌보는 일과 같은 복지 문제들, 가난의 원인에 대한 규명과 같은 사회학적 문제들을 다루었습니다. 용병사업이 주된 산업이었던 스위스 연방의 고질적인 문제들 가운데 하나로 상이군인들의 경제적 심리적 피폐의 현실을 도외시 하지 않고, 취리히에서 곧바로 시정부의 재정 지원과 교회 직분자들의 노력 봉사를 통하여 무료 급식을 실시하였던 일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일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데도 급식에 의지하려는 시민들은 몇 차례 훈계한 후에 추방하도록 조처한 결정은 ‘하나님의 결정적인 은혜의 행위는 인간에게 대답을 요구한다’는 츠빙글리의 언약적 신념과 연결하여 생각해 볼 만한 사례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교회’와 ‘국가’라는 개념과 상당히 차이 있는, 소의 하나의 연합된 기독교 사회(corpus Christianum)이라는 개념이 여전히 남아 있었던 16세기의 상황에서, 츠빙글리는 1525년 이래로 취리히 시의회의 행정부 역할을 하는 소위원회 혹은 내각(Secret Council)에서 당국자들에게 성경을 해설하고 하나님의 뜻을 밝히는 ‘선지자’의 자리를 차지하고, 그 도시국가를 말씀에 따라 개혁하는 권징의 조치들을 적극적으로 시행하였습니다. 그의 지도하에 취리히 시당국은1523-1531년 동안 권징의 문제에 점점 더 깊이 개입하였는데, 이것은 일부 기독교 역사가들이 비판하듯이 (마치 훗날의 칼빈의 경우처럼) 츠빙글리가 종교적으로 국가를 지배하였고 국가와 교회의 개념을 혼동하였던 연고가 아니라, 그의 언약 사상이 교회 안팎에서 구체적으로 실천되었던 까닭입니다. ‘영혼이 육체를 지배하듯이, 교회가 설교한 말씀을 통하여 국가가 다스려져야 한다’고 믿었던 츠빙글리의 정치 사상은 그의 언약 사상과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습니다.

츠빙글리의 후계자 불링거(Bullinger, 1504-1575)와 언약 사상
츠빙글리의 언약사상은 그의 후임으로 취리히의 개혁교회를 지도한 하인리히 불링거에 의하여 꽃을 피우게 됩니다. 천주교를 지지하던 보수적인 캔톤들과의 전투에서 전사한 츠빙글리는 언약신학을 더욱 발전시킬 기회를 얻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1525년 이래로 츠빙글리를 도왔던 불링거는 츠빙글리의 신학 사상의 핵심 주제라고 할 수 있는 ‘언약’ 사상을 한층 깊이 발전시켰습니다. 그의 저서인 ‘단일하고 영원한 하나님의 언약에 관하여’(De Testamento seu foedere Dei unico et eterno, 1534)는 그 제목에서 구약과 신약에 대한 통전적인 이해를 뚜렷하게 드러내 보입니다. 두 언약의 본질적인 통일성을 강조하면서 동시에 경륜의 차이를 잘 설명함으로써, 불링거는 ‘모든 시대의 교회’가 오직 하나의 굳건한 토대, 곧 예수 그리스도 위에 서 있다는 사실을 잘 증거합니다. 언약의 ‘본질’(substantia)과 그 ‘실행’(administratio) 사이의 성경적인 개념 구분은 불링거의 언약 신학이 성경의 가르침을 풍성하게 이해하고 반영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쯔빙글리논쟁.jpg
 


개혁주의 신조들 가운데 탁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제2차 스위스신조(Helvetica Posterior)는 불링거가 1561년에 작성하였는데, 1566년 팔츠의 선제후 프리드리히 III세의 요청을 받아 30개의 신앙조항으로 그곳에도 보내어, 독일 남동부 지역에도 불링거의 개혁 신학이 영향력을 발휘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언약 사상은 이 신앙고백서의 근본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 신조의 두 번째 장은 ‘성경과 교부들, 공의회들, (교회적) 전통들의 해석에 관하여’(Of Interpreting The Holy scripture;and of Fathers, Councils, and Traditions)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데, 성경의 올바른 해석의 원칙을 다음과 같이 선언합니다:

“우리는 성경의 해석은 정통적이고 참된 것, 곧 성경 자체에서 나온 (즉, 성경이 기록된 그 언어의 본질에서, 또한 그 성경이 기록된 상황에 따라서, 그리고 좀더 명백한 다른 많은 구절들의 빛에 따라 해명된) 것이어야 하며 신앙과 사랑의 규칙에 일치하며, 하나님의 영광과 인간의 구원에 크게 공헌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견지에서 개혁주의는 사사롭게 성격을 해석하지 말도록 경고하는 베드로 사도의 말씀을 지적하면서(벧후 1:20) ‘성경에 대한 가능한 모든 해석들’을 허용하지 않으며(재세례파의 오류!), 성경의 신뢰할 만한 해석자로서 자처하는 천주교의 주장도 배격합니다. 성경 자체가 가르치는 언약적 관점에 대한 안목 덕택에, 개혁주의 신학은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성경을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크신 뜻을 받들어 바르게 그 말씀을 깨달아 가르치고 배우며 실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청교도의 언약 사상과 한국교회
츠빙글리-불링거의 언약 사상은 취리히에 유학하였던 청교도들에 의하여 영국에도 소개되었고,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들로써 그 훌륭한 열매를 맺었으며, 오늘 한국의 개혁주의 교회들에까지 전해졌습니다. 초기에는 취리히에 그리고 나중에는 제네바에 유학하여 개혁주의 신학을 배우고 실천하였던 청교도들은 언약 사상을 한층 더 깊이 발전시켜 ‘성경 전체에 대한 체계적인 이해의 틀’로서 언약 사상을 제시하였습니다. 심지어는 츠빙글리 불링거 칼빈 등의 신학을 ‘언약적 신학’(covenantal theology)라고 부른다면, 청교도들의 신학은 ‘언약신학’(covenant theology)이라고 부를 수 있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웨스트민스터에 모인 청교도 신학자들은 일관되게 언약적 관점에서 성경을 이해하고 설명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에덴동산의 아담에 대한 하나님의 특별하신 섭리를 ‘생명의 언약’(WLC 20, WSC 12) 혹은 ‘행위언약’(WCF, 7)으로 그리고 구속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인류의 구원을 ‘은혜 언약’(WSC 20)으로 설명하는 관점이나, 십계명의 제4계명에서 명한 안식의 날이 신약의 경륜에서는 주일, 곧 ‘그리스도인의 안식일’로 이어졌다는 교훈(WSC 59)은 언약사상에 대한 개혁주의의 강조를 단적으로 드러내 보여줍니다.
우리나라의 장로교회는 바로 이런 언약 사상에 깊이 뿌리를 내린 개혁주의 신학을 공식적으로 고백하는 교회입니다. 그 언약 사상은 성경의 메시지를 일관되고 통전적으로 가르쳐줍니다. 즉 제2차 스위스신조가 가르치듯이 ‘하나님의 영광과 인간의 구원’에 크게 이바지하는 올바른 성경 이해를 제공해 줍니다. 참으로 귀한 보물이 우리에게 선물로 주어졌습니다! 바로 우리 눈 앞에 오랫동안 있었습니다! 우리는 밭에 감추인 보물을 발견한 농부, 극상품 진주를 발견한 상인처럼 반응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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