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에 관한 예수님과 초대교회의 가르침-2

토지/주택(부동산)에 관한 기독교 경제윤리
기사입력 2015.01.08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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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이노니아를 통한 초대교회의 자발적 희년 실천

다른 사람의 평등한 토지권을 침범하면서 많이 가진 토지를 팔아 가난한 자에게 주고 나를 따르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초대교회는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 이후 성령님의 힘으로 코이노니아(koinonia) 즉 나눔을 통해 자발적으로 실천한다. 즉 초대교회는 희년을 자발적으로 실천한 희년 공동체 교회다.
초대교회 당시는 로마의 식민지였고 주권 국가가 아니었기 때문에 구약 이스라엘처럼 국가적 혹은 민족적으로 희년을 선포하고 실행하기가 불가능했다. 또한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탐욕을 내려놓고 희년을 실천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는 초대교회 공동체는 성령님이 주시는 힘으로 탐욕을 이겨 내고 자발적으로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희년을 실천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관련 말씀을 자세히 한번 살펴보자.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받아 그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그들이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줌이라. 구브로에서 난 레위족 사람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라(번역하면 위로의 아들이라) 하니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그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행 4:31~37)."

초대교회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고, 그것을 각 사람의 필요에 따라 나누어줌으로써 희년 말씀을 자발적으로 실천한다. 또한 말씀을 살펴보면 토지를 가질 수 없는 레위지파에 속하는 바나바는 그 당시 희년 말씀을 어기고 땅을 많이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예수님을 믿고 회개한 바나바는 땅을 팔아 자발적으로 나눔으로써 희년을 실천한다.
이렇게 코이노니아를 통한 자발적인 희년 말씀 실천은 초대교회가 부흥할 수 있었던 큰 원동력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한국교회는 초대교회와는 정반대로 웅장한 교회 건물과 땅 즉 부동산을 축적함으로써 커지고 있다. 이런 성장이 진정한 부흥일까?

희년 실천과 정반대 되는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

반면 초대교회 공동체의 자발적인 희년 실천 말씀 바로 다음에 이와는 정반대되는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이 나온다. 이 말씀도 한번 살펴보자.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그의 아내 삽비라와 더불어 소유를 팔아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매 그 아내도 알더라. 얼마만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 베드로가 이르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마음대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아나니아가 이 말을 듣고 엎드러져 혼이 떠나니 이 일을 듣는 사람이 다 크게 두려워하더라(행 5:1~5)."
이 말씀에서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소유를 팔았다고 나오는데, 바로 다음에 베드로가 땅 값 얼마를 감추었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이들이 판 것은 땅이었음을 알 수 있다. 초대교회가 희년 말씀을 지키기 위해 성령님의 힘으로 다른 사람의 평등한 토지권을 침범하면서 많이 가지고 있는 땅을 팔아서 자발적으로 코이노니아(koinonia)를 한 것과는 정반대로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자신들의 땅을 팔아서 그 값의 얼마를 감추고 속이다가 결국 하나님이 치셔서 죽게 된다. 이 사건을 통해 희년 말씀을 실천하거나 혹은 어기는 것이 초대교회에서는 매우 중요한 일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구약의 희년 말씀이 현대에 적용 가능한가

이렇듯 구약과 신약의 말씀은 모든 사람에게 평등한 토지권과 노동권을 보장하라는 하나님의 희년 말씀을 동일하게 증거하고 있다. 그렇다면 구약과 신약에 담긴 "모든 사람에게 평등한 토지권과 노동권을 보장하라"는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오늘날 현실에 적용할 수 있을까? 아니 그 이전에 구약의 희년 말씀이 우리가 사는 현대 사회에 적용 가능한 걸까?
구약의 현대적 적용에 대한 신학적 입장은 대개 다음과 같이 나뉜다. 먼저 세대주의적인 입장이다. 지금은 구약 율법의 시대가 아닌 신약시대이기 때문에 구약은 폐기되었거나 효력이 없다는 주장이다. 따라서 구약을 현대에 적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구약은 폐기되었고 효력이 없다면 우리는 성경에서 구약은 모두 찢어서 버려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성경 말씀 66권을 모두 동일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고백하고 있다.

다음은 회의주의적인 입장이다. 구약은 과거의 이야기이고 사람들은 자신들의 생각과 가치관, 이해관계에 따라 구약을 읽기 때문에 구약을 현대에 적용하는 것은 불가능하거나 위험하다는 주장이다. 따라서 구약을 현대에 적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물론 사람들이 자신들의 생각과 이해관계에 따라 성경을 아전인수(我田引水)격으로 읽거나 합리화를 할 때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성경 말씀에 담긴 하나님의 뜻과 의도를 전혀 알 수 없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성경을 자신의 욕심에 따라 잘못 읽고 오용하는 걸 걱정하는 건 좋지만 그렇다고 해서 성경 말씀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우리가 알 수 없거나 적용이 불가능하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구더기가 무서워 된장을 담글 수가 없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반면 구약이 현대에 적용 가능하다는 입장 중에서 신율주의적인 입장이 있다. 구약을 문자적으로 오늘날의 현실에 단순하고 무리하게 적용하는 문자주의 혹은 율법주의적인 적용이다. 이런 단순무식한 적용은 경계해야 한다. 회의주의가 불신의 죄를 저지르고 있다면 신율주의는 너무 과도한 확신에 빠져 교만의 죄를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불신도 너무 과도한 확신도 아닌 겸손한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현실에 맞게 적용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개혁주의적인 입장이다. 구약에 담긴 하나님의 뜻과 원칙, 원리를 도출하여 오늘날의 현실에 맞게 창조적이고도 신중히 적용함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으로 현실의 여러 문제를 개혁하고 하나님나라를 만들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구약의 현대적 적용에 대한 건전한 태도는 이런 개혁주의적인 입장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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