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물신숭배 시대, 기독교경제윤리가 필요하다

기독교경제윤리 연재 1
기사입력 2014.11.02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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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신앙을 가진 사람이건 아니건 간에, 지금 이 시대는 돈이 최고인 물질만능주의와 물신숭배의 시대라는 사실에 모두 공감할 것이다. 모든 것이 돈으로 평가되고 돈만 있으면 모든 게 다 되는 세상이다. 심지어 기독인들마저도 자신의 가치를 돈으로 평가하고, 비교하고, 질투하고, 분노하고, 좌절하고, 절망한다. 그렇다. 우리 기독인들도 세상 사람들과 별다를 바 없이 돈과 하나님 사이에서 매일 오락가락하고 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돈과 하나님을 같이 섬길 수 없다고 못 박아 말씀하셨다. 이처럼 물질적인 경제문제는 신앙의 핵심을 차지한다. 하지만 불행히도 한국교회에서는 물질축북에 대한 것이나 헌금에 대한 얘기는 많이 하지만, 신도들이 구체적인 삶의 경제문제에 대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거의 가르치지 않는다.
이는 한국교회뿐만 아니라 신학교에서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신학교에서는 기독교경제윤리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다. 그러니 목회자들도 신도들이 겪는 구체적인 경제문제에 대해 어떻게 할지 모를 수밖에 없다. 현대사회의 물질만능주의와 물신숭배 풍조 속에서 우리 기독인들은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과 기독교경제윤리를 따라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배워야 한다.
또 교회와 목회자, 신학자는 현대사회의 여러 경제문제에 관한 성경 말씀과 기독교경제윤리를 가르침으로써 기독인들이 세상 속에서 성경 말씀과 기독교경제윤리를 실천하면서 살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물신숭배의 시대, 지금 한국교회는 기독교경제윤리가 가장 절실히 필요하다.

물질적인 경제문제가 영적인 신앙과 무슨 상관인가? 
기독교경제윤리가 필요하다는 말을 하면 어떤 기독인들은 물질적인 경제문제가 영적인 기독교 신앙과 무슨 상관이냐며 반문한다. 교회 잘 다니고, 봉사 잘하고, 성경 잘 읽고, 기도 잘하면 됐지 무슨 경제얘기냐는 반응이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정작 현실적인 경제문제에 대해 어떻게 하면서 살고 있을까?
사람이 돈을 벌거나 쓰면서 사는 한 모든 사람은 경제를 떠나서 살 수 없다. 또한 현실의 경제문제에 있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라는 윤리적인 문제에서 절대 자유로울 수 없다. 모든 사람은 자기 나름대로의 경제학과 경제 윤리를 가지고 있다. 자신이 지금 돈을 벌거나 쓰면서 살고 있다면 자신만의 경제학과 경제 윤리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강원도 태백에 예수원을 설립한 고(故) 대천덕 신부는 <대천덕 신부가 말하는 토지와 경제정의(홍성사)>에서 "물질적인 것과 영적인 것은 분리될 수 없습니다. 물질적인 문제는 기도와 영적 전쟁 없이는 해결될 수 없으며, 영적인 문제는 현실의 삶 즉, 실제적인 문제를 직면하지 않고는 해결될 수 없습니다"고 말했다. 성(聖) 베네딕트는 이를 "노동이 기도요 기도가 노동이라"고 짧게 표현했다.
많은 기독인이 대천덕 신부를 좋아한다고 말하지만, 정작 대천덕 신부가 경제문제에 대해 어떻게 말했는지는 잘 모르고 있다. 비단 대천덕 신부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비롯해 열두 사도와 속사도, 교부들, 종교개혁자들이 경제문제에 대해 수없이 말하고 가르쳤지만, 정작 대부분의 기독인은 안타깝게도 이를 잘 모르고 있다. 지금부터라도 신도들이 깨어나 기독교경제윤리에 대해 배워야 한다. 교회가 가르쳐 주지 않는다면 스스로 찾아서라도 배워야 한다.

이원론과 영지주의의 덫에 빠진 한국교회
예수님을 비롯해 우리보다 앞서 간 수많은 신앙의 증인들이 가르쳐 왔듯이, 기독교 신앙은 물질적인 경제문제와 영적인 신앙의 문제를 분리하지 않는다. 기독교 신앙은 영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이 분리된 이원론이 아닌 영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이 하나로 통합된 일원론에 가깝다. 즉 물질적인 문제는 영적인 문제다.
이원론은 기독교적인 것이 아닌 고대 헬라 철학(헬레니즘)에서 온 이단적인 것이다. 초대교회도 바로 이 영지주의 이원론과 처절한 사투를 벌여야만 했다. 유대 헤브라이즘과 기독교는 물질세계를 창조하신 선하신 하나님의 선한 창조를 강조한다. 기독교는 물질세계와 육체, 노동을 천시하고 경멸하는 헬라 철학이나 영지주의 이원론의 창조 신화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하지만 불행히도 지금 한국교회의 모습은 영지주의 이원론에 더 가까워 보인다.
아이러니하게도 자신들은 영적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결국 물질을 추구하게 되고 물질의 포로가 된다. 지금 한국교회의 모습이 딱 그렇다. 한국교회도 점점 맘몬의 포로가 되어 돈, 권력, 명예를 숭배하면서 서서히 무너져 가고 있다. 곳곳에서 교회 재산을 둘러싼 분쟁과 추문이 들려온다. 한국교회는 지금부터라도 영지주의와 이원론에서 돌이켜 물질을 어떻게 하면 바르게 다스릴지 배워야 한다. 기독교경제윤리 교육이 시급하다.
인간은 영혼육이 분리된 존재가 아니라 영혼육이 하나로 통합된 존재이듯 영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은 분리된 것이 아닌 하나다. 육체 없이 영혼만 있는 인간은 없다. 그런 존재는 귀신에 가까울 것이다. 반대로 영혼 없이 육체만 있는 인간도 없다. 그런 존재는 좀비에 가까울 것이다. 인간은 물질적인 육체와 영적이고 정신적인 영혼이 통합된 존재다.
온전한 사람이시자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인간의 육체로 이 땅에 오셨다. 이는 기독교 신앙과 신학에서 매우 중요한 것이다. 성부 하나님은 선한 물질세계를 창조하셨고 성자 예수님은 사람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셨다. 또한 성부 하나님이 노동하시니 성자 예수님도 노동하신다. 기독교는 물질세계와 육체, 노동을 천시하고 경멸하는 영지주의 이원론과 정반대다. 성부 하나님의 물질세계 창조와 성자 예수님의 성육신, 두 분의 노동에는 이원론과 영지주의가 들어설 자리가 없다.
인간에게서 영혼육을 분리할 수 없듯이, 또한 하나님이 물질세계를 창조하시고 예수님이 육체로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과 같이 일하셨듯이, 기독교 신앙에서는 물질적인 경제문제와 영적인 신앙의 문제를 분리할 수 없다. 물질적인 경제문제는 곧 영적인 신앙의 문제다. 따라서 한국교회는 물질적인 경제문제에 대한 기독교경제윤리를 반드시 가르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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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최윤목사는 경제학 박사이자 시인이며 
  현재. 고신대 기독교교육학 박사과정에서 공부하며 
  부산 새한교회 부목사로 있다.
  초등학교 때부터 신앙의 길에 들어섰었으나 
  대학교 2학년 겨울 교회를 떠나 세상으로 나갔다.
  첫 직업은 경제학 교수였다.
  기업체 특강강사로 컨설턴트로 
  ISO 국제규격 심사위원으로 벤처기업 대표로 
  인생의 바벨 탑을 쌓았다.
  무너져 죽음의 땅 끝까지 가봤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교회로 돌아와 신학을 하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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