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 게임 속에 그려진 슬픈 우리 신앙의 자화상(3) 240번 캐릭터

기사입력 2021.11.18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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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최윤목사는 청어럼교회 담임으로 섬기고 있으며, 경제학박사이기도 하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타락은 심각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데, 근본적이고 핵심적인 원인은 바로 신앙의 근간을 이루는 세계관의 문제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기독교적인 가치가 오늘날은 교회 안에서도 무시당하고 있다. 많은 신자들이 기독교 교리를 받아들이고 신앙의 대상은 바꾸었지만 가치관은 바꾸지 못하는 것이다. 교회 안에서의 유교적 계급주의와 자본주의적 계층주의가 팽배해 있는 것이 그 대표적인 모습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우리 크리스천들이 영원히 소망하고 추구해야 할 삶의 목적과 내용과 그 방편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것이다. 목회자들도 큰 차이가 없다. 목회자들 중에도 하나님나라의 가치를 제대로 알지 못하거나 알고는 있지만 확신이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보니 계속 세상 풍조에 흔들리고 휩쓸린다. 이건 보통 문제가 아니다. 한국교회는 지금 세속주의의 광풍에 뿌리까지 흔들릴 지경에 있다.


    ‘오징어게임’ 5화의 마지막 줄 당기기를 위해 탑승한 엘리베이터에서 244번의 기도를 조롱하며 등장한 240번은 6화에서 구슬치기 놀이를 위해 67번 ‘강새벽’과 짝을 이루었을 때, 자신에 대해 이야기한다. 어느 날 학교 갔다오니 어머니가 죽어있었으며 그 곁에는 칼든 아버지라는 인간이 있었고 어머니를 폭행하고 자기에게 그 짓(성추행,폭행이라 추측됨)을 하고 나면 자기의 죄를 사해 달라고 기도하던 인간이 어머니를 죽인 그때에는 기도하지 않더라고 자신도 사람을 죽인 그 죄만큼은 용서받지 못할 것을 안 모양이다고 몇 년이 지난 후 자기 아버지가 죽었으며 그 곁에는 자기가 칼을 들고 서 있었고 그 아버지란 인간의 직업은 목사였다고 이야기 한다.

 

    이 땅의 많은 목회자들이 목회의 성공을 세속적인 성공과 동일시 한다. 그들은 도시 목회를 통해 손이 부드럽고 경건한 선지자처럼 얼굴이 하얗게 빛나며 값비싼 양복을 입고 다니고, 고급스러운 세단을 몰며 늘 맛있는 음식을 대접받고 다니는 것을 즐기는 사람들이라고 한다면 지나친 억측일까? 이러한 세속적 목회 성공주의와 신앙은 지난 시기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세’라는 급격한 경제성장 마인드와 더불어 일부 교단의 물질숭배적 ‘기복신앙’이 교회를 엄청나게 부흥시키는 것을 목도한 후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대부분의 교회는 교단과 교리와 말씀을 불사하고 물질적 부흥이 그 목적이 되어 버렸다.

 

   한국교회와 목회자의 타락의 주범은 교회와 목회성장주의다. 여기서 말하는 성장이란 본질을 잃어버린 성장이다. 복음을 믿고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들의 수가 더하여지는 성장이 아니라 단순히 종교인의 수가 더하여지는 성장이다. 이는 경제영역에서의 물량주의와 조금도 다를 바가 없다. 많은 목회자들이 7-80년대의 양적 부흥과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에 휩싸여 자신들도 모르게 성장주의 곧 성공주의에 함몰돼버렸다.

 

   교회의 본질적 특성을 변질시키고 훼손하는 악한 사상이 한 두 가지가 아니지만 한국교회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끼친 대표적인 사상은 성장주의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성장주의가 한국교회를 이렇게도 깊이 병들게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목회자들이 이를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교회성장은 선하고 거룩한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교회가 양적으로든 질적으로든 성장하고 부흥하는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고 기뻐하시는 일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이런 일부의 진리를 방패로 삼아 세속적 성장주의를 정당화하고 있는 것이 문제다.

 

   한국교회가 성장주의에 사로잡힌 지가 이미 오래되었다. 7-80년대부터 "많은 교인, 큰 교회당"이 우상이 되었다. 그러면서 전도는 사람 모으기 운동으로 전락했고, 세상 사람들은 교회의 전도를 상업적인 판촉활동으로 여기고 있다. 실제로 교회마다 5월과 10월, 두 차례에 걸쳐 대대적으로 벌이는 전도운동은 과거 보험회사의 실적발표회를 연상케 한다. 목회자를 평가하는 교인들의 기준도 교회의 양적인 성장이다. "꿩 잡는 게 매"라는 속어가 공공연히 사용되고 있다.

 

   그래서 목회자들은 자기 목회의 성공과 명예를 위해 혈안이 되어있고 성장을 위해서라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교인수를 늘리기 위해 설교나 전도를 장사하듯 한다. 그리고 거의 모든 목사나 교회들이 교인수를 과장한다. 더구나 회개도 없고 그리스도를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교회직분으로 교인들의 헌신과 충성을 사려고 이를 매매하듯 하고 있다. 제영혼 구원하여 제자 삼는 일이나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거룩한 사역"은 말뿐인 경우가 많고 큰 교회로 성장시켜 유명해지는 것에 마음을 빼앗긴 목회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리고 유명함에 따라 붙는 것은 권력이다. 일부 목회자들은 교회의 주이시며 동시에 만주의 주이신 그리스도보다 더 큰 영광과 힘이라도 가진 것처럼 행세하기도 한다. 소위 성공한 목회자들이다.

 

   영적인 눈을 가진 사람들은 현상을 넘어 실상을 본다(히 11:1-3). 그러나 믿음의 눈을 갖지 못한 사람들은 본질을 보지 못하고 현상에 마음을 다 빼앗긴다. 그래서 잘못된 성공주의에 빠져서 타락의 경사로를 빠르게 내려가게 된다. 본질을 찾아야 한다. 믿음의 눈으로 우리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사람들은 보이는 것이 더 확실하고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은 그 반대다. 보이는 것이 보이지 않는 것을 존재케 한 것이 아니다. 성경은 말한다.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존재하게 된 것이 아니라고(히 11:3b).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보이는 우주 만물을 창조하셨다는 것이 기독교 세계관의 시작이다.

 

    교회를 성장시키지 못하고 대형 목회를 이루지 못하였다고 열등감과 자괴감에 사로잡혀 자신의 아내를 구타하고 남을 속여 재물과 돈을 편취하는 거짓된 삶을 살고 있는 목회자가 꽤 있다는 것은 기독교 상담가를 사이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인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목회자들은 교리도 알아야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성경적인 세계관과 가치관을 알아야 하고 이를 교인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우리가 바라는 세계가 무엇인지,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가 무엇이며 어떻게 거기에 도달할 수 있는지를 가르쳐야 한다. 그래야 인생의 인도자가 될 수 있다. 주일에 빠지지 않고 교회 잘 나오고, 기도 많이 하고, 헌금 잘 하고… 그러면 신앙 좋은 사람으로 인정하고 만족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나라의 최고 가치인 사랑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할 줄 아는 사람, 이웃의 아픔을 공감하고 그들의 고난에 기꺼이 참여하는 사람들을 길러내는 목회자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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