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설교] 올바른 예배

기사입력 2020.08.19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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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무엘하 6장과 역대상 13장과 15장에 기록되어 있는 ‘베레스 웃사’(Perez Uzza) 사건은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올바른 예배에 관하여 다윗 시대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소중하고도 엄위로운 교훈을 전해줍니다. 세계적인 Covid 19 사태 아래서 교회당에 함께 모여 예배드릴 수 없는 상황에서, 자칫 예배드리는 마음가짐과 자세가 흐트러지기 쉬운 형편에 처한 그리스도인들에게 베레스 웃사 사건에 관한 묵상이 올바른 예배에 관한 성경의 교훈을 되새길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베레스 웃사’ 사건은 오늘날 우리가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사건입니다. 얼핏 보기에 웃사는 웃사는 억울한 죽음을 당한 것 같습니다. 우차에 실려 예루살렘으로 옮겨지던 하나님의 언약궤가 흔들려, 자칫 땅에 떨어질 것 같은 급박한 상황에서 그것을 잡았던 웃사를 하나님께서 ‘충돌하신’(Perez, 밀쳐내신) 일은 지나친 벌인 것같이 보입니다. 왜냐하면, 웃사의 행위는 ‘급박한 상황’에서 이루어진 일이며, 그 ‘동기’가 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인 법 감정에서라면 충분히 면책이 되는 일인데, 하나님께서는 굳이 웃사를 쳐서 죽이시는 판결을 내리셨습니다. 그 처벌이 너무나 엄중하였기 때문에 우리의 생각에 선뜻 납득되지 않습니다. 그런 하나님의 처사를 잘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법궤’와 같은 거룩한 대상들에 대하여 미신적인 두려움에 빠지거나 또한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과 오해와 편견에 사로잡힙니다.

  그러나‘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우리를)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딤후 3:16) 합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치신’ 이 베레스 웃사의 사건은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며, 또 그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떤 신앙과 예배를 요구하시는지 보여주는 아주 중요한 역사적 사례입니다. 이 사건에서 우리는 개혁파 종교개혁자들이 올바르게 강조하였던 십계명의 두 번째 계명의 중요한 교훈을 되새겨 볼 수 있습니다.


  사무엘하와 역대상의 기록들을 자세히 비교해서 읽어보면,  ‘베레스 웃사’ 사건에서 사실 중심적인 인물은 ‘웃사’가 아니며, 하나님께서 진노하신 대상은 오히려 다윗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본래 베레스 웃사 사건은 유대 나라의 아주 중요한 정치적 종교적 행사의 와중에서 일어났습니다. 사무엘하 5장까지의 기록을 보면, 이제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은 기름부음을 받은 하나님의 종 다윗 왕 아래에서 전성기를 누리기 시작합니다. 그 은혜에 감사하여 다윗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올바르게 섬기는 일을 크게 진작시키기 위하여 사울 왕 시절 내내 방치되었던 언약궤를 새로운 수도 예루살렘으로 옮기는 국가적 제전을 계획합니다.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궤를 옮겨 오자. 사울 때에는 우리가 궤 앞에서 묻지 아니하였느니라”(대상 13:3). 이제부터는 하나님의 뜻을 좀 더 진지하게 살피고 그 뜻을 받들어 살아가기 위한 ‘선한 동기’로 온 백성이 참여하는 신앙부흥의 제전을 진행하였던 것입니다. 바로 이런 와중에 ‘베레스 웃사’라는 끔찍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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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윗이 얼마나 놀랐을까요? 이 돌발 사태에 대한 다윗의 첫 번째 반응을 ‘분하다’(charah)는 말로 표현됩니다. 좋은 의도로 추진하고 있는 국가적인 신앙 행사에서 이런 예상치 못한 참사로 일을 다 망쳐버렸으니, 다윗이 한편으로는 얼마나 분하고, 또 한편으로는 백성들 앞에서 면목을 잃었겠습니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고 했던 자신의 경건한 의도가 오히려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일으키는 결과에 이르렀으니, 다윗이 얼마나 분했겠습니까! 그래서 다윗은 이 사건이 일어난 곳을 ‘베레스 웃사’라고 이름 지은 것 같습니다. 웃사가 잘못을 저질렀고, 하나님께서 웃사에게 진노하셨으므로, 이 국가적 제전을 망친 책임을 웃사에게 돌린 것입니다. 그날에 다윗이 두려워하여 감히 여호와의 궤를 다윗 성 곧 예루살렘으로 옮기는 일을 계속하지 못합니다. 그후 3개월 동안 하나님의 법궤는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에 보관됩니다.

   그런데, 그 3개월 동안 다윗은 자신의 선한 동기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웃사를 치신 참된 이유를 발견합니다. “전에는 너희가 (법궤를 어깨에) 메지 아니하였으므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를 충돌하셨나니, 이는 우리가 규례대로 저에게 구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대상 15:11-15 참조)


모세의 율법을 묵상한 결과 실패의 참된 원인을 깨달은 다윗은 의미심장한 고백을 합니다. 우선, 다윗은 베레스 웃사 사건을 더 이상 ‘웃사의 탓’으로 돌리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하나님이 ‘우리’를 충돌하셨는데, 그 까닭은 ‘우리’가, 즉 다윗을 포함한 이스라엘의 종교지도자들이 잘못을 저질렀기 때문이라고 자인합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비롯한 이스라엘의 지도자를 징계하셨다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율법의 규례에 따라 어깨로 매어서 옮겨야 할 언약궤를 수레에 실어 옮기게 한 사람들은 바로 그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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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다윗은 여기서 단순히 ‘절차상의 실수’ 혹은 ‘방법론적인 오류’만을 말하는데서 그치지 않습니다. “우리가 규례대로 하나님께 구하지 않았다”는 다윗의 말에는 그 이상의 반성과 깨달음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두 번째로 법궤를 옮길 때, 다윗이 보여준 예배의 자세에 그 깨달음이 뚜렷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두 번째 시도에서 다윗은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 명한 대로’, 즉 레위기의 규례를 철저하게 준행하여 ‘성결하게’ 모든 절차를 진행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정말로 하나님께서 기꺼이 그 예배를 받아주실 것’이라고 다윗이 자신하였습니까? 이두 번째 시도에서 법궤를 멘 레위인들이 여섯 걸음을 걸었을 때, 다윗은 행렬을 멈추게 하고 수송아지 일곱과 수양 일곱을 드려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역대하 12장 26절은 그 이유를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레위 사람을 도우셨으므로.”무슨 말씀입니까? 하나님께서 레위 사람들을 도우셨다는 말씀이 도대체 무슨 뜻입니까? 다윗은 ‘베레스 웃사’의 사건을 통해서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우리는 감히 하나님의 앞에 나설 수 없다’는 사실을 철저하게 깨달은 것입니다! 본래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감히 나아갈 수 없는 우리 자신의 처지를 깊이 깨달은 다윗은, 레위인들이 첫 여섯 걸음을 걸어도 아무 일이 없는 것을 보고서는, 자격 없는 백성들을 긍휼히 용납해 주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기뻐하고 감사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베레스 웃사’ 사건을 통하여 다윗은 단순히 ‘예배의 방법’이 잘못되었다고 깨달은 데 그친 것이 아니라, 그보다 더 본질적인 사실 곧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용납하심에 있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달은 것입니다.

   그것은 이미 사백여 년 전에 호렙산에서 모세를 통하여 주신 십계명의 제2계명이 가르친 중요한 교훈입니다. “제2계명에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을 형상으로 표현하지 않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그의 말씀에서 명하지 아니한 다른 방식으로 예배하는 것을 금하는 것입니다”(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96문답).

  다윗이 왜 하필이면 언약궤를 ‘소가 끄는 수레’로 옮기려고 했을까요? 아마도 엘리 제사장 시절에 블레셋에 빼앗겼던 법궤가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왔을 때 소들이 끄는 수레에 타고 돌아왔던 유명한 기적을 다시 한번 회상시켜, 하나님의 영광을 이스라엘과 주변 나라들에 과시하려는 의도였을 것입니다. 오늘날의 방식대로 표현하자면, ‘세상적인 방식으로, 세상이 인정하는 방법으로’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거룩하신 하나님께서는 올바른 예배의 방법을 가르치는 성경을 가지고 있는 그리스도인이 그 성경의 교훈을 저버리고 인간 중심적인 세상적 방식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바로 이런 점에서, 베레스 웃사 사건을 통하여 우리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들에게 주시는 ‘올바른 예배’에 관한 교훈은 심중하게 다가옵니다. 교회당에서가 아니라 가정에서 혹은 다른 처소에서 예배를 드릴 때, 예배하는 우리의 자세가 흩트려지기 쉬운 것은 단지 환경 때문만이 아닙니다. 오히려 모여서 열심히 예배를 드릴 때에도 우리는 ‘베레스 웃사’의 잘못을 답습하기 일쑤였습니다. 선한 동기로, 온갖 노력을 다하여서 드리는 예배였는데도 하나님께서는 그 첫째 예배를 찢어버리셨습니다. 예배의 올바른 방법까지도 하나님의 말씀에 철저히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예기치 않는 결과를 맞이하였습니다. 그러나 은혜로우신 하나님께서는 베레스 웃사 사건을 통하여 책임 있는 영적 지도자인 다윗과 레위 사람들에게 올바른 예배의 성경적 절차뿐 아니라, 그 기초를 이루고 있는 참된 진리, 곧 ‘거룩하신 하나님’을 새롭게 인식하게 해 주셨습니다. 이런 은혜가 오늘 우리에게도 거듭 새롭게 임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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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인 김진흥 박사는
  - 시드니 신학대학원 교수 

  - 네들란드 개혁교회 캄펜신학교 졸업 신학석사(Drs.) & 신학박사(Th.D.)

  - 고려신학대학원 졸업(M.div.)

  - 서울대 인문학 서양사학과 졸업(B.A.)
  
- 전) 고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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