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Q&A] (성경)구약 구속사적 파노라마-출애굽기

기사입력 2013.03.07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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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세기에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후손을 통해 약속한 씨(자손, 메시야)를 보내겠다고 하셨다면 출애굽기에서 부터는 이 씨가 어떻게 자라가고 있는가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아브라함의 후손인 야곱의 혈속 70명이 애굽으로 내려간다. 이들은 창세기에서 보여준 창조, 타락, 그리고 구속에서 마지막 단계인 구속을 기다리는 자들이다. 그렇다면 이 구속을 위해 하나님이 이스라엘 안에 어떻게 일하고 계시는가를 출애굽기에서 보여준다고 이해하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출애굽기 전체의 구조를 살펴보면 애굽의 이스라엘(1-12:36),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생활(12:37-18장), 율법들(19-25장), 성막과 제사제도(26-40장)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애굽의 이스라엘(1-12:36)
 
이스라엘은 애굽을 모태로 70명에서 200만명으로 성장했다. 학자에 따라 달리 추산하지만 말이다. 아무튼 아브라함에게 가나안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께서 왜 아브라함의 후손들을
꿈을 해석하는 요셉.jpg
가나안에서 애굽으로 인도하셨을까?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겠다.  
먼저는, 이스라엘의 근본이다. 1장 1절과 5절에 제시한 바와 같이 야곱과 함께 애굽으로 간 “야곱의 혈속”(개역성경)이라는 것이다. 야곱은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이스라엘로 불려진다(창32:28,35:10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들을 야곱의 혈속이요 허리에서 난 자라고 한다. 이것이 애굽으로 내려간 이스라엘의 근본이다. 깨어지지 않은 인간, 하나님의 편에서 보면 어리석은 백성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이 비록 선택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라 할지라도 이들에게 하나님의 구원을 알고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이런 연유로 애굽은 이스라엘에게 최고의 교육 현장이 되는 셈이다.
 
다음은, 이스라엘 백성이 몸으로 느끼는 구원의 의미이다. 애굽에서 그들은 종처럼 살고 있다(1:8-14). 요셉이 살아 있을 동안에는 대우를 받으면서 자기들의 생업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후에
모세를 나일강에 띄우는 요겟.jpg
요셉을 알지 못하는 왕의 등장으로 이스라엘은 종처럼 살도록 강요받은 것이다. 이런 가운데 하나님을 찾게 되자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2:24절) 조상의 언약을 기억하사 모세를 통해 그들을 구원하시고자 하셨다.
 
그런데 하나님의 구원하심에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이름이 있는데 그것은“스스로 계신 자”이다. 여러 의미로 사용이 되지만 이 글에서는 하나님께서 구원의 일을 하시는 동안 보여주실 하나님의 일하시는 모습이라고 표현하고자 한다.‘하나님의 열심’으로 소개되기도 하는데 어떤 방해되는 일을 만나도 반드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타난 것이 애굽에 내린 재앙이다. 여기에서 하나님이 서로 나뉘게 하신다. 애굽에는 재앙을,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구원의 표를 주시는 것이다(8:23; 9:4, 26). 이런 분리의 최고의 절정은 유월절 사건이다. 하나님께서 애굽의 장자는 다 죽이지만, 어린 양의 피가 발린 집은 넘어가는 방식으로 이스라엘의 장자를 살리신다. 이것이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보여주신 구원(구속)의 증표이다. 이스라엘은 그들의 인생에서 구원이라는 것이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삶의 현장에서 사건을 통해 만난 것이다. 구원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방식으로 제물(어린 양)의 희생을 받아들인 자에게는 무조건적 선물이면서 애굽의 노예에서 하나님의 자녀로의 변화인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생활(12:37-18장)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 생활은 한 마디로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이다. 앞서 구원을 몸으로 취득했다면 그 구원을 주신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삶 가운데 어떤 분으로 존재하시는가하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도록 은혜를 베푸시는 장소가 바로 광야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유월절에 보이신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을 믿고 그 하나님의 도우심을 늘 바라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그래서 그런 믿음을 더욱 굳건하게 하고자 먼저 홍해를 만나게 하시고 그 홍해에서 하나님의 역사가 여전히 이스라엘과 함께 하심을 믿도록 하신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스라엘이 홍해의 위험에서 벗어나기는 하지만 그들이 보인 하나님에 대한 태도는 불신에 가깝다(14:11). 또한 이 일 후에 수르 광야로 사흘 길을 갔을 때에 마실 물이 없어 또다시 원망하기 시작한다(15:24). 그리고 신 광야에 이르렀을 때에는 온 백성이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는 일이 발생한다(16:3). 르비딤에 장막을 쳤을 때에도 물 문제로 다시 모세와 다투는 일이 벌어진다(17:2).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에 보인 태도를 보면 처음에는 일부 사람들의 원망으로 시작하여 온 백성이 동참하고 그 후에는 원망이 다툼으로 확대되는 양상을 띤다.
 
구원이라는 길에 들어서면 스스로 자라가는 것처럼 생각되기도 하지만 실상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여준 형태는 오히려 퇴보되고 불신자처럼 행동하는 것을 느끼게 된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태도이다. 여전히 그들은 옛 습관을 벗어버리지 못했고 자신들의 육신에 불편한 것이 생기면 모세를 원망하는 것으로 그들의 감정을 표현하여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의 요구에 언제나 침묵으로 일관하시고 들어 주신다는 것이다. 어떤 이는 이스라엘의 광야생활을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밀월여행이라고 하는데 하나님 편에서는 매우 불편한 밀월여행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광야생활의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그 하나님은 이스라엘 중에 계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구원하시고 그들을 버리시는 분이 아니라 그들의 인생 가운데 하나님이 함께 하고 계심을 더욱 경험하도록 이끄시고 그들의 작음 신음에도 응답하시면서 하나님을 더욱 알도록 길이 참으시고 지켜보시는 하나님의 성품을 우리는 광야에서 만나게 되는 것이다. 이런의미에서 하나님 성품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신뢰하도록 이끄는 하나님의 방식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 이런 참으심이 없었다면 우리는 모두 죽은 목숨인 것이다.
 
율법들(19-25장)
 
유월절을 통한 하나님의 구원의 방식과 구원 받은 백성과 함께 하시면서 그들을 선하게 이끄시는 하나님을 광야를 통해 만난다. 그리고 이 단락에서는 그 하나님의 임재를 이제는 말씀으로 만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을 취득해 가야 한다는 것이다. 우레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 가운데 임재하시는 하나님의 모습(19:16)은 말씀으로 나타나는 하나님의 위엄을 대변하는 도구들이다. 이렇게 나타나신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십계명을 기록한 돌판과 그 말씀에 근거한 삶의 확대된 방식(율법 규정)들을 제시해 주신다. 이 중 1-4계명은 하나님 사랑, 5-10계명은 사람 사랑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러나 엄밀하게 하나님 사랑과 사람 사랑을 구분짓기 어렵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6계명 “살인하지 말라”는 것은 같은 것을 두 가지 측면에서 말할 수 있는데, 구원받은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이 주시는 같은 구원에 참여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나님께와 동시에 구원의 공동체와 관계가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살인하지 말라는 것은 사람을 죽이지 말라는 뜻 이전에 하나님과의 관계를 기억하며 살라는 말씀인 것이다.
계명의 확대로 제시하는 규정이 21장 이후의 율법인데,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 된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그 핵심은 하나님이 값없이 주신 구원의 정신을 공동체에 나타내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이 구속사적 윤리요 구약적 복음의 삶이다. 그래서 21장 이하에는 공정과 공평 그리고 자비를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성품을 보게 되는 것이다.
 
성막과 제사제도(26-40장)
 
그러나 하나님께서 유월절의 구원과 광야의 인도와 동행 그리고 계명을 주심으로 이스라엘은 구원 받은 백성으로서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살 수 있는가? 이 단락은 이 문제의 해답을 주고 있다. 계명을 주셨지만 여전히 하나님은 성막의 제조에 대해 말씀하고 계시는 것이다. 성막을 만들도록 하신 것은 그들 안에 하나님이 계시는 자리를 만드는 것이다(40:34-38). 십계명을 주셨고 이스라엘은 앞서 하나님 앞에서 모든 명령을 다 지켜 행하겠다고 맹세(19:8)하였다. 이런 맹세가 이스라엘로 하여금 계명을 지키며 살도록 할 것인가? 그들은 모세가 40일 동안 죽음의 사투를 벌이며 말씀의 임재 앞에 서 있을 때에 금송아지(32장)를 구상해 낸다. 그리고 그 앞에서 춤추고 크게 노래하며 이 금송아지가 애굽에서 자기들을 구원한 신이라고 불렀다. 이런 모습이 십계명 앞에 사는 백성들의 본 모습이다. 그들은 스스로 계명을 지킬 힘조차 없는 것이다. 그들의 맹세는 헛된 맹세였고 다짐은 공허한 메아리였을 뿐이다.
이런 와중에 나타나는 것이 하나님의 자비이며 하나님의 긍휼이다. 그래서 12장에는 유월절 어린 양이 이스라엘의 희망이며, 성막 안에서 드려질 레위기 제사가 이스라엘의 궁극적 소망인 것을 나타내고 있다.‘성막(성전)’주제(motif)를 통해 보면, 이스라엘은 성막 안에서 드려지는 제물에서 유월절 어린 양의 모습을 발견하고, 범죄한 이스라엘이 창조주 하나님과 함께 살 수 있는 근거는 어린 양의 보혈의 은혜라는 진리이다. 결국 구약의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은 성막구조를 통해 구약의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그 안에서 하나님의 임재의 원리를 알고 누렸으며, 신약의 하나님의 백성인 교회는 성막(성전)을 종말론적으로 성취하신 참 성전되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현재적인 임재를 누리고 있을 뿐 아니라(요5:24; 요일5:11~13), 또한 신약 성전으로서 하나님의 영원한 임재를 대망하는 순례자로 살아가는 것이다(벧후3:18~14).
 
제공 : 부경 성경 연구원(www.bkbs.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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