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Q&A] (성경)구약 시편에 계시된 구속사

기사입력 2013.02.28 21:07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기사내용 프린트
  • 기사내용 메일로 보내기
  • 기사 스크랩
  • 기사 내용 글자 크게
  • 기사 내용 글자 작게

구약 시편에 계시된 구속사(그리스도)

 
시가서는 구속사에 기초를 두고 있다. 수많은 시편들이 일인칭 복수로 쓰여 있다. 즉 하나님의 백성들이 여호와를 믿는 그들의 신앙을 고백하면서 그분의 이름을 찬양하고 그들의 대적들로부터의 구원을 구하고 있다. 시편 저자는 단순히 개인의 감정들을 표현하고 있지는 않다. 대개의 경우 시편의 저자가 다윗인데, 그는 자신이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사실을 충분히 인식하고서 하나님께 부르짖는다(삼하 22:51). 다윗 외에도 다른 사람이 영감을 받아 쓴 시편의 저자인 경우조차도 그 시는 여호와를 섬기도록 부름을 받은 대표자로서 쓴 것이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들을 대하심에 있어서 시편들이 하는 기능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모세의 노래가 주어졌을 때에 거기에 최초로 분명히 나타났다. “그러므로 이제 너희는 이 노래를 써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가르쳐 그들의 입으로 부르게 하여 이 노래로 나를 위하여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라”(신 31:19).
그 노래는 이스라엘에게 선포된 직접적 예언이 아니었으며 또 십계명처럼 언약법의 형태를 띤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은 하나님의 계시에 대해 찬양으로 화답하는 형태를 띠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이스라엘을 향하신 하나님의 증거 중 일부를 형성한다. 이스라엘의 유산 중 일부로 암송됨으로써 그 노래는 그들이 자신들의 반석이신 여호와께 신실하지 못함이 입증될 때에 “그들 앞에 증인처럼 될”(신 31:21, 22) 것이다. 후대에 기록된 이스라엘의 영감 된 노래들도 그와 똑같은 기능을 보이고 있다.
주의 백성들이나 주의 종들이 그분의 이름을 부를 때에, 그들의 노래들은 분명히 연락을 위해 기록된 것이 아니라 경배와 기원을 위하여 쓰인 것이다. 경배의 표현인 그 노래들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별하여 대하신 것, 즉 구속사로서 인쳐진 것이다. 하나님의 속성들을 묘사하는 찬양들은 많은 신들을 섬기는 이방인들 사이에 흔한 찬양들이 갖는 동기를 가지고 있지 않다. 수많은 여자 친구들을 둔 어떤 바람둥이와 같은 다신론자는 자신이 현재 은총을 구하는 그 신이 적어도 당분간이나마 모든 신들 중에 승리자라는 사실을 그 신에게 틀림없이 확신시켜주어야만 한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시편들은 오히려 묘사적 성격뿐 아니라 선포적 찬양의 특징도 지니고 있다. 여호와께서는 그가 어떤 분이시라는 것 때문만이 아니라 그가 행하신 일 때문에도 경배를 받으신다. 그분은 출애굽의 하나님이시며(시 80:8; 114편),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고 다윗과 더불어 자신의 언약을 세우신 하나님이시다(시 89편). 하나님의 구속역사는 죄를 고백하게 하는 근거가 있는 동시에 하나님의 구속의 자비를 새로이 베풀어주시기를 구하는 청원의 근거도 갖는다(시 74편, 80편). 시편들은 또한 여호와께서 친히 자기 백성의 구속자와 심판자와 구원자로서 다시 오실 때에 이루어질 하나님의 약속들의 성취를 선포한다(시 96:10-13). 그 위대한 날에는 구원의 새노래를 부를 것이다(시 96:1; 98:1. 참조 144:9).
신학적 깊이에서 시편들은 하나님의 언약의 노래들이며 그 언약적 소망의 노래들이다.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사역은 다윗의 자손에 의해서 이루어질 것이므로 그 시편들은 분명히 메시아적인 것들이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대적하는 자들에게 시편의 구절들로써 대항하셨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다윗의 자손인 동시에 그의 주가 되셔야 한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였다(시 110:1; 마 22:41-45). 하나님께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로 삼으신 것이 바로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라는 사실을 그들은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시 118:22, 23; 마 21:42, 43). 
그러나 다만 몇 안 되는 “메시야 시편들”에서만 이스라엘의 노래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사실 명백히 메시아적임이 드러나는 시편들로부터 우리는 수많은 다른 시편들에 적용되는 해석의 원리들을 알아차릴 수 있다.
예를 들면, 시편 22편은 분명히 메시아적이다. 그 시편에서 처음 시작하는 외침은 바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외치셨던 부르짖음이며, 고통 가운데 처한 그 시편 저자가 내뱉은 괴로움의 세세한 내용들은 분명히 구체적으로 갈보리에서 적용된 것들이다. 히브리서 저자는 그리스도와 관련하여 시편 22:22을 인용한다(히 2:11, 12). 하나님께로부터 버림을 받아 부르짖는 것뿐 아니라 찬양의 맹세까지도 그리스도 자신의 언급들인 것이다. 이것이 사실인 것은 예수님께서 세상에서 사역하실 때에 시편들을 노래하시고 그런 방식으로써 그것들을 성취하셨기 때문이기도 하다. 고통당하는 의인으로서, 여호와의 기름부음 받은 자였기 때문에 핍박을 받았던 다윗은 고통당하시는 진정한 의인, 곧 하나님의 아들이며 거룩하신 그분을 예시한다. 시편 22편의 첫 구절만이 그리스도의 구절이 아니라 이 시편 전체가 그리스도의 시편이다. 
명백하게 메시야적인 시편들에 더하여, 그에 못지않게 분명히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시편의 범주들도 있다. “왕의 시편들”(royal psalms), 시온의 노래들과 시온의 왕의 노래들은 신약의 성취하는 빛에 비추어 볼 때에 정확하게 메시야적이다. 그의 모든 적을 정복하고 승리하신 영광의 왕이 시온에 들어가실 때에 대하여 묘사된(시 24편) 장면은 그리스도의 승천에서 성취된다. 광야를 통해 진군하여 그의 거룩한 산으로 들어가시면서 사람들과 선물을 주고 받으시는 주님(시 68:18)이 바로 세례 요한이 광야에서 그분이 오실 길을 준비하였던 그 주님이시다(사 40:3; 마 3:1-3). 오실 심판자(시 96:13; 97;7. 참조. 히 1:6)이신 그분, 그분이 바로 자신의 백성들을 자신과 함께 승리의 행진 대열로 인도하시는 구세주이시다. 그 분의 보좌는 영원히 세워졌으며(시 2편; 110편), 그분은 우주를 통치하신다(시 2편; 72편; 110편). 그 왕은 자신의 신부와 자신의 권속들을 복된 면류관으로 받으신다(시 45편). 다윗의 혈통에 속한 왕과 영원하신 왕을 찬양하는 시편들은 모두 예수님 안에서 결합되는 것이다.
부경성경연구원 제공(http://www.bkbs.org/)
[부경성경연구원 제공 ctmnews@ctm.kr]
<저작권자ⓒCTMNews & ctmnews.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
 
 
 
 

주소: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상로 102 3층(초량동) | 인터넷신문등록번호:부산광역시 아00096 등록일자:2011.07.25

발행인/편집인 : 김성철, 청소년보호책임자 : 최종철 TEL : 070-7565-1407 FAX : 051-462-6698  | e-mail : ctmnews@ctm.kr

Copyright ⓒ 2011 http://ctmnews.kr All right reserved.

CTMNews의 모든 콘텐트(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