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로마서 7장 - 김진흥교수

기사입력 2019.05.10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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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흥교수.jpg▲ 필자인 김진흥박사는 Sydney Collage 교수로 재직중이다.
   “롬 8:15-17은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들로 입양되었는지, 그래서 그분을 아버지로 부르게 되었는지 이야기 합니다. 제임스 패커(J.I. Packer)는 입양의 축복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어떤 사람이 기독교를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는지 판단하고 싶다면, 그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에 관하여 그리고 하나님을 자신의 아버지로 삼고 있다는 것에 관하여 얼마나 깊이 생각하는지 살펴보십시오. 이런 생각이 그의 예배와 기도를 촉진하고 그의 삶의 전반적인 모습을 조정하지 않는다면, 기독교에 대한 그의 이해는 별로 깊지 못한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가르치는 모든 것, 신약성경을 새롭게 즉 구약성경보다 더 낫게 만드는 모든 것, 단지 유대적인 것에 대조되는 독특한 기독교적인 모든 것은 하나님의 아버지되심에 관한 지식에 요약되어 있습니다. ‘아버지’는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을 부르는 이름입니다.            

                                            (제임스 패커, 하나님을 아는 지식)  

1. 성령 하나님과 그리스도인의 거룩한 삶 (8:1-17)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인정받는 길’이라는 중심주제와 관련하여 사도 바울은 그동안 로마서에서 주로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주로 증거하였다. 그러나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이 오직 하나이신 ‘야웨’(Yaweh) 하나님으로 믿고 고백하였던 창조주와 구세주께서 성 삼위 하나님이심을 잘 알고 있었던 바울은 성령 하나님에 관해서도 잊지 않고 증언하였다. 성령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부활시키신 성결의 영’(롬 1:4)이시며, 육체의 할례가 아니라 성도들의 ‘마음에 할례를 주시는 분’(롬 2:29)이시다. 또한 성령은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의 가슴에 쏟아부어 주시며’(롬 5:5), 그리스도인이 율법의 조문에 따라 섬기는 옛 방법이 아니라 ‘새로운 신령한 방법으로 하나님을 섬기도록’ 이끄시는 분이시다(롬 7:6).

  이제 8장 전반부(8:1-17)에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거룩한 삶을 가능하게 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촛점을 맞춘다. 앞서 설명한 대로, 로마서의 5-8장은 교차대조법이라는 수사법에 따라, 그리스도인의 장래의 영광에 대한 확신을 반복하여 강조하고 있다. 바울이 말하려는 요지를 돋보이게 해 주는 이 수사법에 따라 살펴보면, 8장 전반부는 5장 후반부(5:12-21)과 짝을 이루며, 동일한 토픽을 다룬다. 5장 후반부가 ‘그리스도의 사역 안에 있는 그리스도인의 확신의 기초’를 설명하였다면, 이제 8장 전반부는 동일한 그 토픽을 강조하면서 ‘성령 하나님께서 그 확신을 중재하신다’는 중요한 요점을 덧붙여 설명한다. 한편 바로 앞의 7장과의 연관관계를 살펴보면,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이 ‘죄의 세력으로부터’ 구원받았을 뿐만 아니라(6장) ‘율법의 세력으로부터도’ 구원받았다(7장)는 사실을 설명하는데, 여전히 ‘그리스도인 안에 남아 있는 옛사람의 성품으로 인한 심각한 갈등’이라는 어려운 문제를 8장에 와서 ‘성령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통하여 해명한다.  

  율법과 복음을 대조하는 피상적인 인식과는 달리, 로마서 7장에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율법은 선하고 의롭다’고 분명하게 강조한다. 문제는 율법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의롭고 선한 율법의 요구를 이루지 못하는 죄인의 전적 무능력에 있다고 올바르게 지적한다. 따라서 죄인이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되는 유일한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다는 사실을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초지일관 강조한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7:24)라는 실존적인 탄식에 대한 해답 역시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다.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4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8:3-4). 하나님의 의롭고 선한 율법의 요구가 우리에게 이루어지는 것은 무엇보다도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율법을 완전하게 순종하심으로 성취하셨기 때문’이다. 거듭나지 못한 죄인의 ‘전적 무능력’ 곧 율법의 선하고 의로운 요구를 감당할 수 없는 우리의 형편을 명백하게 가르친 사도 바울의 교훈을 고려할 때,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8:4)이라는 의미심장한 말씀을 이해할 때에 ‘칭의와 구별되는 성화’라는 개념으로 너무 쉽사리 뛰어들지 않도록 조심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마치 그리스도의 대속의 공로에 힘입어, 그리고 성령의 선물로 말미암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제 자유롭게 순종하여 (과거에는 온전히 지키지 못하였던) 율법을 스스로 ‘성취’할 수 있게 되었다는 식의 주장이다. 얼핏 보면 이런 개념이 왜 잘못인지 파악하기 쉽지 않겠지만, 이런 식의 이해는 쉽사리 ‘인본주의적 관점’과 연결되어 사도 바울이 전하는 ‘오직 은혜’의 복음의 핵심을 흐려버릴 수 있다. 달리 말하자면, 우리는 칭의뿐 아니라 성화에서도 하나님의 은혜에 전적으로 의지해야 한다는 성경적 교훈을 잊어버려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일에 있어서도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 의지한다! 종교개혁자 루터 선생의 찬송이 증거하듯이, ‘내 힘만 의지할 때는 패할 수 밖에 없지만, 힘 있는 장수 그리스도 예수께서 날 대신하여 싸우신다!’ 그러므로,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은 궁극적으로 잘 될 것이라는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관점을 성경에서 찾으려면, 바로 롬 8:1-7을 주목할 수 있다. 

  그렇지만, 장로교회의 대요리문답이 주의깊게 가르치듯이, 칭의와 성화는 몇 가지 측면에서 뚜렷하게 구별된다(WLC 77): ‘칭의는 그리스도의 의를 ‘전가’(impute)하는데, 성화는 그 의와 능력을 우리에게 ‘주입’(infuse)해 준다; 칭의는 죄의 책임을 사면(pardon)하는데, 성화는 죄의 세력을 정복(conquer)한다; 칭의는 모든 사람들에게 동일하게(equal) 완전히 적용되는데, 상화는 사람들마다 다르게(different) 적용된다; 칭의는 이 세상에서 완전하게 성취되지만, 성화는 오는 세상에서 완성된다; 칭의는 사법적인(forensic) 선고인데, 성화는 하나님와의 사귐에서 영적으로 성장하는 관계적인(relational) 성격을 가지고 있다.’ 사도 바울은 롬 8:5-17에서 성화의 이런 독특한 성격을 ‘두 가지 삶의 상태’ 곧 육신을 따르는 삶과 성령을 따르는 삶을 대조하는 방식으로 분명하게 가르치고 있다. 우선, 성령을 따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성령께서 원하시는 바에 자신들의 생각을 맞춘다(5절). 그들은 ‘사고방식’(mindset)이 달라졌다. ‘마인드셋’이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에 대한 반응과 이해를 미리 결정짓는 정신적 태도 혹은 성향을 말한다. 즉 세계관, 인생관, 가치관이 달라졌다는 말이다. 그 결과는 너무나 날카롭게 대조된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To set the mind on the flesh is death, but to set the mind on the Spirit is life and peace, ESV, 8:6). 왜 이렇게 극명하게 대조되는지 그 이유는 하나님 그리고 그분의 선하고 의로운 율법이라는 척도에 비추어 볼 때 이해할 수 있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지 않으므로, 하나님께 적대적이기 때문이다(8:7). 본래 우리 모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는 육신에 있는 자들’(8:8), 즉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도록 그분의 형상으로 지음받았으나, 하나님의 영광을 온갖 우상숭배로 가려버린 존재였다. 사망을 피할 수 없는 육신의 생각에 사로잡혀 사는 자들이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의 영, 그리스도의 영’(8:9),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8:11)이신 보혜사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심으로, 우리에게는 장래의 영광에 대한 소망이 한층 더 확실하다: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8:11). 이것은 우리에게 엄청난 ‘사랑의 빚’이며(8:12), 마땅히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위를 변화시켜야 하는 원인이 된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아야 하며, 그 성령의 인도하심 대로 죄악된 본성에 따른 옛사람을 벗어버려야 한다. 그는 죄악된 옛 본성을 대표하는 ‘육신’(flesh)의 유혹에 져서 살아가서는 안되며, 반대로 성령의 인도와 능력에 따라 자신의 죄악된 행실을 죽여야 한다(8:13). ‘하나님의 아들’로 여겨지는 그리스도인은 다름 아니라 하나님의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살아가는 사람이기 때문이다(8:14). 성령 하나님은 우리를 인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게 하고, 하나님 아버지에게 헌신하는 삶을 살게 하고, 또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도록 우리를 변화시키신다.

  사도 바울은 롬 8장에서 그 성령의 인도에 순종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을 확언하며, 바로 그런 사람들에게 장래의 영광이 확실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된 것이 축복이라면, 그것은 반드시 사랑의 이중계명에 따라 사는 사람으로,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는 사람으로 변화되었다고 지적한 패커의 설명은 바울의 교훈을 올바르게 반영한 것이다. 

2. 성도의 견인(8:18-29)

  이 단락의 첫 구절에서 사도 바울은 ‘현재의 고난’과 ‘장래의 영광’을 뚜렷하게 대조하고 있다. 인간의 타락(창 3장) 이래로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 아래 있는 세상은 허무함과 고난 아래 처해 있다(8:20).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던’ 피조된 세계는,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헛되다’라고  전도자가 탄식하는 현실로 변하였다(전 1:1-2). 이제 그리스도인들뿐 아니라 모든 피조물이 본래 선하고 아름다왔던 하나님의 피조물로 회복되기를 갈망하고 있다(8:21)고 바울은 지적한다. 여기서 우리는 ‘창조-타락-구속’이라는 성경적 세계관의 기본적인 인식을 뚜렷하게 발견한다. 인생은 헛된 것이 아니며, 역사는 무의미한 것이 아니다. 모든 피조물은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새 창조의 영광스러운 목표를 향하여 나아가는 것이다. 그것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광 중에 심판주로 다시 오실 때 이루어질 것이다. 그리고 그때까지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미 그러나 아직 아니’(already but not yet)의 이중적인 구조 속에서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믿음으로 확신할 수 있는’ 소망을 가지고, 인내하며 기다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8:23-25).

장래에 관한 우리의 확신은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속에 근거를 두고 있을 뿐 아니라(5장), 우리를 위하여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탄식으로’ 중보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든든히 보장된다(8:26). 성령의 기도는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는’ 기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이 말하는 성령 하나님의 기도는 일종의 ‘방언 기도’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탄식’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온전히 나타나기를 갈망하는 모든 피조물의 구속을 위하여, 성령께서는 하나님 나라가 임하기를,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처럼 땅에서도 온전히 이루어지기를, 그리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온 천하만민과 모든 피조물에 의하여 높여지기를 기도하시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사람이 되신 하나님’, 곧 우리 주님께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고 명하시며 가르치신 기도이기 때문이다. 성령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영으로서, 그리스도께서 사도들을 통하여 교회에 전하신 그 뜻을 하나님의 자녀들이 깨닫고 받들어 실천하도록 격려하시고 도우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오직 보혜사 성령 하나님의 인도와 조명을 받는 참 그리스도인들만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기도한다. 오직 성령충만한 하나님의 자녀들만이 (모든 피조물이 그토록 탄식하며 갈망하는)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위하여 간구한다. 오직 성령으로 깨우침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사죄의 은혜를 받은 증거로서 다른 사람들의 죄를 기꺼이 용서한다고 고백을 기도로 드린다. 성령 하나님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간절한 중보기도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뜻대로 살아가도록 우리를 완전히 변화시켜 놓는다.

  또한 하나님의 뜻대로 부름받은 그리스도인들은 그의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8:27-28). 이 말씀은 무슨 뜻일까? 소위 번영신학(theology of prosperity)에서 강조하듯이, 예수 믿으면 만사형통하게 된다는 말일까? 바울이 곧바로 덧붙여 설명하는 내용을 보면, 그런 현세적이고 물질적인 해석은 사도적인 복음증거의 의도와는 전혀 동떨어진 것이다. 하나님께서 미리 아시고 또 예정하신 자들은 ‘그 아들의 형상’ 곧 하나님의 참된 형상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는 영생의 삶으로 인도되는 것(8:29)이야말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이루는 선’이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이러한 거룩한 삶의 추구, 곧 성화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의 연약함을 잘 아시는 성령께서 우리를 도우신다는 은혜의 사실을 강조한다! 그리고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 곧 하나님께 반역하는 자였을 때, 자신의 독생자를 주셔서 우리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확증하신’(5:8) 하나님의 사랑을 여기서 다시 한 번 강조한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8:32). 하나님의 사랑의 증거이자 우리의 구원의 보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하여 중보하고 계시므로, 그 누구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값없이 은혜로 주신 칭의를 빼앗아갈 수 없다(8:33-34). ‘환란, 곤고, 박해, 기근, 적신, 위험, 칼’과 같은 두려운 대상들이 그리스도인들을 영생의 길에서 벗어나게 위협하지만,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8:37).

  그러므로 사도 바울에 따르면, 거룩하신 성 삼위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사 하나님의 참된 형상으로 회복시키시고 영광스러운 하나님 나라로 온전히 이끌어 가시는 일에 한 마음으로 역사하고 계신 것이다! 바울의 다음과 같은 확신은 그런 진리에 대한 감사에 넘치는 ‘송영’이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8:3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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