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기독교 교육현장에서 죽음이해 및 죽음교육의 필요성 (2)

기사입력 2019.02.21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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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왜 죽음을 이야기해야 하는가?
   
가정호목사사진.jpg▲ 필자는 죽음교육연구소 소장으로 섬기고 있다.
 1) 죽음을 말해야 한다.
- 왜 죽음을 말하거나 보여주거나 드러내어 다루려고 하지 않을까? 어떤 음모가 있는 것일까? 아니면 죽음을 드러내놓고 말하는 것을 꺼려하는 어떤 영적, 문화적 정서가 지배하는 것일까? 사회적 두려움, 무서움, 어두움... 이런 것들이 있어 보이지 않는가? 우리나라에서 죽음을 은폐하려는 문화적 현상들을 살펴보자. 시신을 보여주지 않는다. 4층이 없다. 장례식에 대한 창의적인 고민이 없다. 장례식은 거추장스럽고 귀챦은 어떤 행사처럼 느낀다. 우리의 장례식을 새롭게 바꿔 볼 수는 없을까? 교회에서 죽음은 어떻게 다루어지고 있는가? 깊이 생각해 보면 좋겠다. 죽음과 선교, 미션얼한 관계를 살펴보면 좋겠다. 여러분 중에 성도의 죽음과 관련하여 얼마나 고민하고 읽고, 살피면서 죽음을 통한 선교적 가능성이나, 죽음 자체에 대한 연구를 해본 경험이 있는지 돌아보면 좋겠다. 
2) 죽음을 준비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공동체적으로 죽음에 대한 사색이나 스터디, 죽음에 대한 이해상황은 어떤가? 그리스도의 죽음에 대해 말하지만 인간의 죽음에 대해 어떻게 말하는가? 최근 우리 사회에 죽음과 관련하여 회자되는 이야기들은 무엇인가? 버킷 리스트, 안락사, 자살, 존엄사, 고독사... 그래도 이전보다는 조금 언급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게 다인 수준이다. 
목회에서 다루는 죽음에 관한 이야기들은 장례예배, 장례설교, 성경에 나타난 죽음에 대한 주제로 연구하거나 살펴본 사례를 별로 만나보지 못했다. 여러분은 어떤가? 죽음준비교육은 해외 여러나라에서 이미 수십년 전부터 다루어져 왔다. 일본, 독일, 미국, 영국... 우리나라도 이미 80년대 후반부터 싸나톨로지라(Thanatology)는 이름으로 학문분야에 들어와 있다. 철학에서, 심리학에서 문학에서 죽음은 굉장히 빈번하게 다루어지고 있고, 많은 자료들이 이미 축척되어왔다. 죽음이 갑자기 닥쳤을 때 우리는 무엇을 준비하고 무엇을 단정하게 단도리 하면서 살아야 할까? 
3) 생에는 순서가 있어도 죽음에는 순서가 없다.
모든 인간은 죽는다. 이미 나이가 들어가면서 우리 전 세대들이 죽어가는 모습, 생애를 마감하고 주님께로 돌아가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바라본다. 은퇴하고 손이 떨리고 머리를 가누지 못하는 연약한 선배들을 본다. 노인도 죽고, 어른도 죽고 청장년도 죽고, 아이들도 죽는다. 
청소년 자살률이나 청년 자살률이 OECD국가 중 선두그룹에 속한다. 노인 자살률은 단연 1위이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후기 자본주의, 정신수준이 미치지 못하는 돈의 범람, 자본의 범람으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 고독감과 외로움이 노인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 당신도 노인이 된다. 당신도 죽는다. 언제일지 예측 할 수 없다. 특별히 교통사고를 인한 죽음, 암 발병과 함께 찾아드는 죽음이 너무 빈번한 현실이다. 
4) 죽음은 언제나 일어나는 일이고 또 부지불식간에 갑자기 찾아오는 사건들이다.
우리는 늘 죽는다. 세포의 죽음이 그렇다. 손톱, 발톱, 머리카락, 세포의 변환주기를 따라 우리 신체는 사실상 일정한 시간이 흐르면 완전히 교체된다. 평생가지고 가는 세포들은 별로 없다. 여러번 교체되고 바뀐다. 한 연구 기관의 보고서를 참고해 보면 이렇다. 
“ 우리 몸에 존재하는 세포(cell)의 수는 최소 60조개, 많게는 100조개가 넘는다고 합니다. 이 수치는 현재의 과학기술로 추정되는 우주(universe)에 존재하는 별(별)의 수보다 훨씬 많은 수치 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그 단독으로도 우주 자체라는 말. 이 수 많은 각각의 세포들은 수명(lifespan)이 다르고, 일정한 주기(period·cycle)에 따라 다시 재생(recycling)됩니다.
 
약 90% 이상이 매년 재생되고, 크게 5년을 주기로 우리 몸의 모든 세포는 새로 재생됩니다. 그리고 각각의 세포마다 분열(division) 횟수에 한계가 있으며, 세포가 더 이상 분열하지 못할 때 결국에 죽음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세포의 재생기간은 나이에 따라 조금씩 차이를 보이지만, 성인(adult)을 기준으로 아래와 같으며, 세포의 재생기간은 건강(health)상태에 따라서도 차이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 백혈구(white blood cell) : 수 분 ~ 14일
· 적혈구(red blood cell) : 3개월
· 혈소판(platelet) : 3 ~ 10일
· 체세포(somatic cell) : 1개월
· 피부(skin) : 1개월
· 손톱(nail) 및 발톱(toenail) : 6개월
· 난자(ovum) : 10 ~ 24시간
· 정자(sperm) : 2 ~ 3일
· 근육(muscle) 및 뼈(bone) : 7개월
· 장기(organ) : 4개월
· 신경세포(nerve cell) : 7년
· 뇌세포(brain cell) : 60년 
이것들을 보고 알 수 있는 사실이 있습니다.
우리 몸에 존재하는 세포의 재생주기는평균적으로 3~6개월이기 때문에, 건강한 신체로 탈바꿈하기 위해서도 그만한 시간이 투자되어야 합니다.”
 
생물학적으로 보면 교체되는 세포는 죽음을 맞이하는 세포들이다. 시신 또는 주검으로 바뀌는 세포들을 떠나 보내고 있는 셈이다. 마치 마지막 죽음의 순간에 시신과 영혼이 이별하듯이 그렇게 날마다 자신과 이별을 경험하는 존재가 인간인 셈이다.
그뿐이 아니다. 날마다 잠들 때 마다 우리는 자신의 정신과 이별을 고한다. 잠드는 순간마다 자신과 이별하는 이별연습을 하는 셈이다. 달리보면 이 또한 죽음연습이라하여도 무리가 없는 셈이다. 
2. 목회사역에서 육신의 죽음의 문제들
1) 호상, 병사, 사고사, 자살사
노령화 되어가는 목회현장에서 앞으로 더 빈번하게 죽음과 대면하게 될 터이다. 그것이 좋은 죽음, 불행한 죽음, 사고로 인한 죽음, 자살로 인한 죽음 등등 다양한 죽음들과 마주할 터이다. 부산의 어느 교회 목사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부임한 이후 거의 매달 한두분의 장례를 집례하면서 생각하기를, "내가 목회 은퇴할 때 까지 노인들의 장례식을 치루다가 마무리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사실 중대형교회 목회지에 죽음은 늘상 있는 일이고 늘 다루는 문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죽음, 성도의 죽음에 대한 생각을 깊이 있게 해보기 어려운 현실이다. 왜일까? 
성도의 죽음은 여호와 보시기에 소중하다. (여호와께서는 성도의 죽음을 소중하게 보신다”(시편 116편15절) 왜 소중한 것일까? 교회이기 때문이다. 독생자를 내어주시고 구속한 그리스도의 몸이요, 신부이기 때문이다. 천상에서 함께 지낼 당신의 패밀리들이기 때문이다. 당신의 형상을 회복하는 일생의 과정을 통해 당신 자신이 영광을 받으신 귀중한 자녀들이기 때문이다. 땅에서는 호상, 악상, 병사, 사고사, 자발적 죽음, 등등 수많은 죽음, 다양한 죽음이 있지만 어떤 죽음이든 하나님 보시기에 귀하지 않은 죽음이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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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실버세대 교회교육
실버세대들에게 죽음에 대하여 교회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교회교육에서 지금보다 좀 더 깊이 있게 다루어야 하는 주제들이 노년이 된다는 것, 늙어간다는 것, 노화, 죽는다는 것, 그리스도 안에서 맞이하게 되는 죽음, 성경이 말하는 죽음, 교리적 관점에서 본 성도의 죽음, 신약에서의 죽음, 구약에서의 죽음, 요리문답에서의 죽음 등등의 주제들을 다루어야 한다. 자료들을 참고하여 살피면 좋겠다. 나누어 드린 자료를 참고하기 바란다. 
3) 죽음을 가르치는 교회교육
현재 교회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공과에서 죽음을 주제로 다루는 공과를 발견하지 못했다. 호스피스에서 다루는 죽음이나 웰다잉 그룹들에서 다루는 죽음들의 대부분은 그저 죽기 전에, 그 죽음을 주물러 대는 죽음 마사지 수준의 것들이 범람한다. 실제 인간의 죽음에 대한 고민들이 그렇게 깊지 않다. 통증완화를 다루는 수준이다. 또 죽음에 이르기 전에 외로움이나 고독감에 빠지지 않도록 돕는 정신,신경 분야의 헬스케어 정도이다. 
사실 웰_다잉이라는 말 자체가 굉장히 큰 헛점을 가지고 있다. 그리스도 없이 죽는다는 것, 구원의 은총을 경험하지 못하고 죽는 죽음을 “웰_다잉”이라는 이름으로 어루만지고 마사지 하는 격이니 오히려 이게 더 큰 형벌 일 수 있겠다 싶은 것이다. 죽음의 고통이나 두려움, 공포를 통하여 신 앞에 단독자로, 마지막 순간 구도자의 태도를 갖게 하는 기회마져 빼앗는 빈약한 “웰_다잉 체계” 가 대다수이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마지막 순간 찾게 될 신에 대한 경외마져 놓치게 되는 의료_기만에 빠질 수 있겠다. 이런 측면에서 웰-다잉 지도사들은 목회자와 마찬가지고 큰 책임의식을 가져야 할 것이다. 
4) 장례식과 장례예배의 분별
장로교에서 장례식을 예배로 분류하는 경향이 있다. 특별히 장례식장에서 드리는 예배는 죽은 자, 이미 영혼이 땅에 없는자를 위해 드려지는 것이 아니다. 장례식장에서 드리는 예배는 산자들을 위해 드리는 예배이다. 장례식 과정에서 드려지는 예배, 임종예배, 입관예배, 출상예배, 하관예배 등등, 이런 이름을 붙여서 드리는 예배들의 문제점을 살피기 바란다. 죽음과 관련하여 드리는 예배 중, 죽기전에 드려지는 임종예배를 뺀 집회에 “예배” 라는 이름을 붙여 행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이를 테면 "유가족을 위한 예배1,2,3" 으로 바꾸는 것이 옳을 것이다. 잘 생각해 보기 바란다. 예배란 죽은 자를 위해 드리는 것이 아니기에 이 점을 유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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