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로마서 6장

기사입력 2019.02.19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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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흥교수.jpg▲ 필자인 김진흥 박사는 Sydney Collage of Divinity 교수로 재직중이다.
 
“이같이 (지금까지는) 성화를 빼놓았기 때문에, 바울의 의도는 비판하는 자들에게 잘못 전달되었다. 이미 그 비판자들은 헐뜯는 마음으로그가 선을 이루기 위해 악을 행하자”(3:8)고 말한다고 잘못 인용한다. 그때 바울은 그들의 비난을 무시해 버리고 그것에 대해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그들이 다시 집결하여 공격을 가하자, 그들과 논박한다. 이것이 로마서 6장의 주제이다. 그들의 비난은 무엇이었는가? 행위 없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의롭게 된다는 바울의 복음이, 선행을 쓸모 없는 것으로 만드는 듯하다는 것만은 아니었다. 그보다 더 나쁘게도, 바울의 복음은 사람들로 하여금 이전 어느 때보다도 더 죄를 짓도록 자극하는 듯이 보인다는 것이었다… 비난하는 자들에 대한 바울의 대답은, 하나님의 은혜는 죄를 용서해 줄 뿐만 아니라, 우리가 죄 짓는 데에서도 구해 준다는 것이다. 은혜는 단지 의롭게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또한 성화시킨다. 은혜는 우리를 그리스도께 연합시키고(1-14), 우리가 새롭게 의의 종이 되도록 한다(15-23)” (존 스토트)
 
1. 유대인들, 그리고모든 인본주의자들에대한 바울의논박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6:1)는 사도 바울의 반문은 1-3차 선교여행 동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십자가의 대속의 공로에 의지하여 하나님 앞에 의롭다 인정되는 은혜의 복음에 대한 율법주의자들의 반대를 극적으로 표현한다. 그들은 사도 바울이 전하는 복음이 선행에 힘쓰는 삶을 나태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죄를 많이 지을수록 은혜를 더 많이 받는다고 왜곡하는 뻔뻔스러운 교훈이라고 비난하였다. 그들은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5:20)라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경륜에 관한 사도 바울의 선언을 이런 식으로 왜곡하여 공격하였다. ‘만일 우리가 은혜로 구원을 받아 완전히 용서받고 의롭다 함을 얻고 율법의 선행에서 자유롭게 되었다면, 그리고 그런 구원이 장래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때에도 분명하다면, 계속하여 죄를 짓는 것이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냐!’ 이런 주장은 오늘날의 소위 구원파의 이단적인 주장과 별로 다를 바 없다!
1세기 이래로 이 율법주의자들은 사람이 정말로 의롭게 변하지 않았는데, 그를 의롭다고 칭하는 것은 일종의 사기 혹은 속임수라고 생각하였다. 종교개혁 시대의 로마 카톨릭 신학자들이 이신칭의의 교리를 송장에 비단 옷 입혀 놓은 것이라고 조롱하였던 것도 바로 이런 동일한 사고방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들의 생각으로는, 오직 율법의 선행을 통하여 참으로 의롭게 된 사람만이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인정받을 수 있다! 이것은 바로 사도 바울이 완전하신 하나님의 율법의 기준에 비추어 결코 가능한 구원의 길이 아니라고 롬 1:18이래로 거듭하여 역설한, 거짓된 주장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완전하신율법의 의를 제 나름대로 하향평준화시키는 인본주의자들은 모든 계명들 가운데 단 하나를 범하여도 율법 전체를 어긴 것이라는 하나님의 높은 공의의 기준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우리의 가장 작은 범죄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천지의 대주재이신 절대자의 위엄을 거스르는 심각한 일이라는 사실을 그들은 깨닫지 못한다. “너는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말며 급한 마음으로 말을 내지 말라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음이니라 그런즉 마땅히 말을 적게 할 것이라”( 5:2)라는  전도자의 충고가 그들에게 절실하게 필요하다.  다시 한 번 구약을 건너 뛰어, 너무 쉽게 신약으로 들어가는 일의 위험성을 지적한 본회퍼(Bonhoeffer)의 경고를 떠올리게 된다.
끊임없이 자신의 행위를 의지하려는 자들의 이런 비난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세례와 연관하여 그런 주장의 악하고 어리석은 모습을 반박한다. 세례는 본래 물에 잠그거나 혹은 물로 씻음으로써 영적인 정결을 표시하는 예전이었다. 예를 들어, 세례 요한은 하나님의 백성을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3:11) 물로 세례를 베풀었고, 따라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기를 촉구하였다(3:8). 그런데, 사도 바울이 롬 6장에서 말하는 세례는 물로 씻는 예전을 말하는 것 같이 않고,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와의 신령하고 밀접한 관계를 맺어주는 것을 가리킨다. 소위 대위임령에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 안으로’(into the name of the Father, and of the Son, and of the Holy Ghost) 베풀라고 명하신 뜻을 상기시키듯,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 혹은 신령한 연합 안에 있는 관계를 강조한다(cf. 고전10:2). 그래서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그리스도인은 죄에 대하여는 죽고, 의에 대하여는 살아 있는 그런 존재가 되었다(6:3-6)라고 역설한다. 그러므로 이신칭의의 교리가 마음껏 죄 짓고 살아도 된다는 비난은 결코 용납할 수 없다’(“그럴 수 없느니라!”, 6:2). 이미 롬 5장에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리스도인은 죄와 사망이 왕노릇하는 영역에서 은혜가 통치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왕국으로 옮겨진 사실을 선포하였다(5:17,21). 그런 위대한 변화는 단지 법정적인’(forensic) 차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삶 자체에도 근본적인 영향을 끼친다! 그리스도인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6:6). 그뿐 아니라, 여전히 우리를 종노릇 하게 만드려는 불구대천의 원수들곧 우리의 옛 사람의 성품과 이 세상의 유혹과 사탄에 대항하여 그리스도인은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겨야한다(6:11).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이라는 역사적 사건은 죄인인 우리가 공의로우신 하나님과 사귈 수 있는 법적 지위를 회복해주셨을 뿐만 아니라(칭의), 그리스도인 각 사람의 삶에서 죄에게 종노릇 하던 옛 사람이 죽고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가는 새사람으로 바뀌는분명한 변화(성화)를 이루어놓으셨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칭의와 성화의 이런 불가분한 관계를 사도 바울의 교훈을 따라 바르게 가르친다: HC 64문답
) (우리의 선행이하나님 앞에서의가 없고아무런 공로가 없다는 62-63문답의) 이러한 가르침으로 말미암아사람들이 무관심하고사악하게 되지않겠습니까?
) 아닙니다. 참된믿음으로 그리스도에게접붙혀진 사람들이감사의 열매를맺지 않는것은 불가능합니다.
여기서 다시 한 번 교회사적이고 조직신학적인 핵심 요점을 짚고 가자.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 선생이 아우구스티누스를 비롯한 교부들의 의학적 개념’(medical concept) 대신 법정적 개념’(forensic concept)으로 구원을 설명한 것이 종교개혁의 핵심이라는 주장은 올바른 지적이다. , 죄인을 병자로 보고 하나님의 은혜를 주입하여 회복을 강조하는 관점보다, 법정 앞에선 죄인에 대한 너그러운  판결이라는 관점으로 구원론을 이해한 것이 종교개혁의 이신칭의, 오직 은혜라는 근본 원리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우리가 잊어버려서는 안 되는 한 가지 요점이 더 있다. 루터를 비롯한 모든 성경적인종교개혁자들은 칭의와 더불어 로마서가 강조하는 성화를 결코 소홀하게 지나치지 않았다! 예를 들어, 루터는 종교개혁의 구원론을 소개하는 그리스도인의 자유’(1520)라는 초창기 작품에서, ‘속 사람의 자유와 그 자유의 원천, 즉 그리스도의 공로에 근거한 이신칭의가 주는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강조하면서, 동시에 이웃을 향한 그리스도인의 선행을 함께 강조하였다. 이 책에서 루터가 강조한 그리스도인의 패러독스를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모든 일에 관하여 매우 자유로운 주인이며, 그 누구에게도 복속되지 않는다. 동시에 그리스도인은 다른 모든 사람들에 대하여 매우 유능한 종이며, 모든 사람에게 복속된다.” 루터는, 외형적으로 모순되게 보이는 이 두 명제들이 조화되지 않으면, 그리스도인의 삶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삶이기 때문이다! 
 
2. 참된 그리스도인의삶에 관하여
이신칭의(sola fide) 혹은 오직 은혜(sola gratia)의 교리를 잘못 이해하고 있을 때, 즉 이기적으로 왜곡하여 성화와 무관한 특권같은 것으로 오해하고 있을 때, 사도 바울의 교훈이 종종 예수님의 가르침과 충돌하는 듯이 보인다.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19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20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7:18-20)는 말씀은 일한 것이 없어도 그 믿음을 의로 인정하시는칭의와 너무나 거리가 먼 것처럼 보인다. 포도원지기에게 삼 년의 기한을 주고 이 후에 만일 열매가 열면 좋거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13:6-9) 하신 말씀은 선행으로 이루어야 할 성화의 삶을 강력하게 촉구하는 것처럼 보인다. 제자도에 관한 요한복음의 교훈 역시 우리의 순종을 통한 열매를 강조하는 것 같다: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15:8). 이런 말씀들이 무언가 이신칭의교리와 다르다고 느껴진다면, 그것은 우리가 벌써 성경의 균형 잡힌 가르침에서 벗어나고 있는 징후이다. 왜냐하면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롬 6장의 후반부는 그 사실을 우리에게 생생하게 증거한다. 우리는 우리의 몸, 곧 우리의 삶 전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려야하며, 우리의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내주어 거룩함에 이르러야한다(6:13,19). 죄의 노예 상태에 있을 때에 우리가 맺은 열매와 이제 죄로부터 해방되어 하나님의 종으로 살아가는 삶의 열매는 뚜렷하게 대조된다: “너희가 그 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냐 이제는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하나니 이는 그 마지막이 사망임이라 22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6:21-22). 이처럼 사도 바울의 교훈은 그가 신실하게 섬기는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그대로 본받고 있다. 그러므로 만일 이 두 가지 곧 칭의와 성화의 관계를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한다면, 루터 선생의 표현대로, 그는 기독교 신앙의 신비를 전혀 알지 못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누리는 새로운 지위에 관하여 우리가 바르게 이해한다면, 우리의 삶에서는 반드시 감사에서 우러나오는 순종이 있어야 한다고 역설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대신하여 이루신 구원의 역사에 힘입어, 그리스도인은 미래를 향한 확신과 소망 안에서 옛 사람을 벗고 새 사람으로 살아가는영적 전투의 삶을 치열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이 실제로 무슨 의미인가?’ 하는 중요한 신앙적인 질문에 대하여, 우리는 로마서 6장에 나와 있는 교훈들로 올바르게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그 교훈들을 따라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는삶으로서 우리의 대답을 뒷받침할 수 있어야 한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와 더불어 그분의 죽음과 부활에 연합된 자로 삼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이제부터 우리가 의의 종으로 살아가도록 성령께서 우리를 굳건히 이끌어주시기를 함께 간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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