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로마서 3장

기사입력 2019.01.09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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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c593f0d38b703c8ae787ddac5e1328_1mQZ8ikCotNuHGODBmoU5NR.jpg▲ 필자인 김진흥 박사는 Sydney Collage of Divinity 교수로 재직 중이다.
“먼저 본문(롬 2:17-3:20)을 읽은 후에 우리가 상기한 바 있는 해석을 살핀다 할지라도, 당신은 아직 이같은 문체가 매우 난해함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바울이 지금 말하고 있는 주제에 대한 유대인들의 심리를 우리가 이해하지 못한 것이 그 이유 가운데 하나일 것입니다. 3장에 가서야 비로소 당신은 바울이 지금 ‘회당에서 토론하고 있는 듯한 상황’ 아래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것입니다. 질문들과 또 그 질문에 대한 반박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표현들이 때로는 반어적이고 또 어느 때는 난해하다는 사실입니다.” (앤드류 큐벤호벤)
 
로마서 2장 후반부에서 바울은 모든 사람의 죄와 비참을 논의하는 맥락에서 마지막으로 ‘유대인’의 죄와 비참에 관하여 지적한다. 하나님의 선택된 민족으로서 유대인의 특권과 자부심(2:17-20)을 언급한 다음, 곧바로 바울은 그들이 자랑하는 바로 그 특권들이 유대인의 실상을 가리지 못한다는 사실을 폭로한다. 율법을 자랑하지만 바로 그 율법을 범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며(2:23), 하나님의 이름이 이방인들 가운데 모독을 당하게 하며(2:24), 할례의 의의를 무효화한다(2:25). 그러므로 ‘유대인’이라는 사실 자체는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인정받는 일에서 큰 의미가 없다고 바울은 선언한다: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참된 유대인이라는 인정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한테서 받아야 한다(2:28-29). 유대인에 대한 이런 준열한 책망으로 바울은 1:18에서 시작된 ‘인간의 죄와 비참’에 관한 논의를 완결한다.
바울은 2장의 초반부에서 상대적으로 도덕적인 사람들, 곧 ‘타락한 죄인들에 대하여 스스로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오만함을 근본적으로 잘라버렸다. 완전하게 의롭고 공정하신 재판장이신 하나님의 완전한 의의 기준에 따르면, 그런 도덕적인 사람들도 역시 죄인으로 드러나게 될 것이라고 가르쳤다. 그런 다음 바울은 이 첫번째 논의의 세 번째 부류로 유대인들의 죄와 비참을 2장 후반부에서 다루었다. 율법과 할례로 대표되는 선민 사상에 근거하여 자신을 이방인보다 우월하고 의롭다고 여기는 유대인의 의식이 사실상 ‘허위의식’이라고 폭로하였다. 그들이 받아 누린 선민으로서의 특권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인생의 본분을 잘 감당하기는커녕 오히려 그들이 자랑하며 가르쳤던 그 율법을 어기고 살아감으로써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였다. 그 자신이 ‘유대인 중의 유대인’이라고 자부하였던 사도 바울은 ‘참 유대인됨’(true Jewishness), 즉 참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자격은 율법에 대한 외면적 순종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성령께서 일으키시는 내면적인 마음의 순종의 문제, 곧 ‘마음에 받는 할례’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가르친다.(이런 점에서 유대인의 어떤 독특한 지위를 강조하는, 세대주의를 비롯한 모든 주장들은 사도 바울의 교훈을 왜곡하는 것이다.)
 
1.  선교여행 기간에 회당에서 벌어졌던 논쟁?
로마서 3장의 전반부(1-20절)는 ‘비참-구원-감사’(Misery-Deliverance-Gratitude)라는 세 가지 테마 중 첫 번째 논증을 마무리하는 부분이다. 그런데, 그 첫 구절은 ‘유대인의 장점, 할례의 유익’을 묻는 질문으로 시작한다. 이 단락은 하나님의 언약 백성인 유대인들조차 ‘불의하다’고 정죄하는 것이 과연 온당한지 여부를 다루고 있다. 유대인들의 불신과 불의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참되심, 미쁘심(신뢰할 수 있음)과 의로우심은 불변한 것을 사도 바울은 힘써 강조한다(3-6절).

구약성경의 많은 구절들을 인용하고 있는 이 단락을 읽어가면, 사도 바울이 여러 차례의 선교여행 동안에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서 구약성경으로 논쟁을 벌였던 장면을 눈에 떠올리게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대표되는 복음이야말로, 구약의 율법과 선지자들이 거듭 예언하였던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라는 바울의 메시지에 대하여, 회당의 유대인들 대다수는 그를 역병을 퍼트리는 ‘이단자’로 간주하고 극렬하게 박해하였다. 그들은 사도 바울이 전하는 ‘오직 은혜’의 메시지, 곧 우리의 죄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에 관한 복된 소식을 ‘선을 이루기 위하여 악을 행하자는 말’이라고 왜곡하여 비판하였다. 바울은 그런 자들이 ‘정죄 받는 것이 마땅하다’(3:8)고 비판한다. 그리고 바울은 시편과 잠언, 이사야에서 인용한 여러 구절들로써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모두 죄 아래 있다’는 결론을 다시 한 번 확증한다(3:9-10).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놀라운 우주에 분명히 나타나는 창조주의 능력과 신성을 깨닫지도 인정하지도 않는 이방인들뿐만 아니라, 율법과 언약의 특별한 계시의 은혜를 누리고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못한 유대인들까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3:23)라는 판단에서 벗어날 사람은 없다. 사도 바울의 이런 평가는, 그리스도 밖에 있을 때 우리는 결코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 곧 ‘하나님을 영화롭게’하는 삶(WLC, WSC 1)을 이룰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되새기게 한다. ‘그리스도 밖에서’ 자신의 선행으로 하나님 앞에 의롭다고 인정받으려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공의로운 평가는 ‘율법이 내리는 저주’밖에 없다: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 20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롬 3:19-20).
 
2. 복음의 핵심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롬 3:21-26의 여섯 구절을 “이 서신의, 그리고 성경 전체의 핵심요점이자 중심에 있는 것”이라고 강조하여 표현하였다. 이 구절들은 우리 자신의 선행이나 종교적 성향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 의롭게 될 수 없으며, 오직 우리를 대신하신 예수님의 죽음을 신뢰하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선언한다.  과연 이것은 그리스도 복음의 핵심적인 메시지이다!

사도바울은 1:18-3:20에 이르기까지, 우리 자신의 선행을 통하여 하나님 앞에 의롭다고 인정받는 길, 달리 말하자면 ‘율법의 길’은 죄와 비참에 빠진 우리에게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철저하게 논증하였다. 그래서 의롭게 되는 길은 ‘우리 밖에서’(extra nos) 주어져야 한다는 결론, 즉 하나님께서 은혜로 내려주시는 새로운 길밖에 없다는 사실을 바라보도록 우리의 마음을 준비해주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의’(3:22)이다. 그런데 그 ‘율법 외의 한 의’(3:21)는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 즉 구약성경에서 이미 예언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구약과는 별개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바로 그 구약의 참된 의미를 드러내어 밝히고 성취한 것이라는 사실을 사도 바울은 여기서도 잊 지 않고 강조한다.

‘하나님의 의’에 관한 사도 바울의 일관된 강조와 관련하여, 우리는 구약성경의 처음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장로 교회는 신앙고백서에서 ‘사람과 맺으신 하나님의 언약’(WCF 7)을 설명하면서, 타락 이전에 에덴동산에서 인류의 대표인 아담과 더불어 맺으신 하나님의 언약을 주목하여 가르친다. ‘행위언약’ 혹은 ‘생명의 언약’이라고 불리는 이 첫 번째 언약의 내용은 ‘하나님에 대한 완전하고 인격적인 순종을 조건으로, 아담과 그의 후손에게 생명을 약속’하신 것이다. 이 언약의 핵심을 모세를 통하여 주신 율법에서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 의로 살리라”(레 18:5;신 4:1; 롬 10:5)고 표현되었고, 사도 바울은 ‘인류를 대표하는 두 사람’에 관한 묘사에서 이 언약을 잘 설명하였다(롬 5:12-20). 그 두 사람(Adam)은 각각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죄와 사망을 이 세상에 들어오게 하였고, 또한 온전한 순종을 통하여 영생의 길을 다시 열었다. 이런 관점에서 어떤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라는 22절의 말씀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faith in Jesus Christ)이라는 의미보다도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 혹은 신실하심’(the faith or faithfulness of Jesus Christ)이라고 번역하기도 한다(예를 들어, ESV).
어떤 번역이든, 사도 바울은 이 본문에서 ‘율법 외의 하나님의 한 의’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즉 그분의 대속의 공로에 힘입어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가르치며, 따라서 그것은 우리 자신의 공로 덕분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가르친다(3:24). 따라서 하나님의 거저 주시는 선물인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입은 우리는 자랑할 데가 없다(3:27). 다른 한편, 우리 편에서는 하나님의 의를 온전히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도 분명히 나타난다. 의로우신 하나님은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심으로써’ 자신의 공의를 증명하여 보이셨다(3:26).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공의의 법칙을 지키기 위하여, 우리의 모든 죄책을 대신 지시도록 하나님의 아들을 사람으로 보내어 ‘화목제물’로 삼으사, 죄의 문제를 해결하셨다(3:25). 그래서 실상은 죄악으로 점철된 우리를 그리스도의 대속의 공로를 보시고 ‘의롭다고 인정’해 주실 수 있었다.
즉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의지하여 그분 안에서 하나님께 나아오는 자들에게 칭의, 곧 하나님과 사귈 수 있는 특권을 주실 수 있었다(3:26). 우리를 위하여 자신의 생명으로 화목제물을 드리신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의로우신 율법은 ‘파기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굳게 서게 되었다’(3:31). 이처럼,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하나님 앞에 의롭다고 인정받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의 속량’에 근거한 것이며(3:24), 그것을 믿는 믿음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은혜로 의롭다고 인정해 주시는데 있다(3:30).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하나님의 의를 얻을 수 있는 이 유일한 길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주는 위로와 격려
종교개혁자 루터가 강조한 대로, 로마서 3장의 후반부는 복음의 핵심을 잘 요약하여 전해준다. 그 말씀을 찬찬히 읽으면서,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란 무엇인지, 그 믿음이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주는지 다시 돌아보게 된다. 첫째로, 우리의 구원의 확신이 어디 있는지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된다. 그것은 우리 자신의 뜨거운 열정이나 수고와 헌신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 시도는 헛된 것이라는 사실을 바울은 로마서의 첫 부분(Miser)에서 확실하게 보여주었다. 우리의 구원의 확신은 주관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와 긍휼이라는 객관적인 기초에 두어야 한다.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3:24)는 말씀으로, 거룩하시고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엄격한 기준을 만족시키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도록 권유한다. 구원의 확신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붙잡는 믿음에서 찾을 수 있다. ‘율법 외의 하나님의 한 의’가 내게 달린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있다는 은혜의 복음을 올바르게 이해할 때, 우리는 자신의 죄를 부끄러워하는 자들을 올바르게 위로할 수 있고, 낙심하는 형제들로 하여금 다시 주님을 바라볼 수 있도록 격려할 수 있다. 우리가 혹시 신앙의 길에서 잠시 넘어졌을 지라도, 미쁘신 하나님은 항상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받아주신다는 사실을 굳게 붙잡고, 우리 마음을 다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하고 순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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