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로마서 2장

기사입력 2019.01.02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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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c593f0d38b703c8ae787ddac5e1328_1mQZ8ikCotNuHGODBmoU5NR.jpg▲ 필자인 김진흥 박사는 Sydney Collage of Divinity 교수로 재직 중이다.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는 ‘나는 신약성경에 너무 빨리 혹은 너무 직접적으로 이르고자 하는 것은 기독교적이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율법이 우리의 죄를 드러내고 정죄하는 소임을 다할 때까지는, 우리가칭의의 복음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존스토트)
바울은 그리스도와 교회를 핍박하던 자신을 사도로 불러주신 주님의 뜻이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그들이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게’ 하는 일이라고 고백한다(롬 1:5). 그래서 그는 복음을 알지 못하는 모든 이방인들에게 ‘빚을 지고 있다’고 생각하였고(롬 1:14),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 대해서도 간절한 마음으로 ‘복음’을 전하기를 원하였다(롬 1:15). 그 복음은 유대인뿐 아니라 이방인에게도 구원을 가져다주는 하나님의 능력인데, 무엇보다도 믿음으로 말미암는 ‘하나님의의’가 그 복음에 담겨있기 때문이다:

“16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17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 1:16-17).

사도바울이 로마서의 서언을 마무리하는 이 두 구절을 많은 주석가들이 로마서의 주된 테마로 여긴다. 그 다음부터 바울은 그 복음을 온전하고 풍성하게 소개하기 위하여
(1) 모든 사람의 죄와 비참(롬 1:18-3:20),
(2) 그리스도의 구원(롬 3:21-11:36), 그리고
(3) 구속받은 우리의 감사의 삶(롬 12:1-15:33)
의 순서로 성경의 핵심교훈을 차근차근 제시한다.

모든 인간의 죄와 비참
오늘 우리가 묵상하는 로마서 2장은 1장 후반부에서 시작된 인간의 죄의 비참에 관한 논의를 한층 더 깊이 있게 다루는 본문이다. 사도바울은 1장에서 ‘하나님께 등을 돌리고 자신의 뜻대로 온갖 죄악을 저지르며 살아가는 악한자들’의 현실과 그 죄악들 가운데 그들을 ‘내버려 두시는’ 하나님의 처벌에 관하여 이야기하였다. 그런다음, 이제 2장에서는 그 악한 자들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착하고 도덕적이라고 자부하는 사람들(‘남을 판단하는 사람’, 1절)과 모세의 율법을 가지고 이방인들의 스승이 되어 가르친다고 자부하는 유대인들(‘맹인의 길을 인도하는 자, 어둠에 있는 자의 빛’, 19절)에 관해서도 준렬한 책망을 쏟아붓고 있다.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의 기준으로 바울이 강조하는 것은 ‘각 사람에게 그 행한대로 보응하시는 ’하나님의 공의이다(7절). 이 기준에 따라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않으시는’ 하나님께서 상대적으로 의롭다고 자부하는 사람들 및 율법과 할례와 언약을 소유한 유대인들의 실상을 평가하신 판결은 이미 구약에서도 분명하게 계시되었다: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11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12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13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14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15그 발은 피흘리는데 빠른지라 16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17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18그들의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롬 3:10-18)

상대적으로 의로운 도덕주의자들을 찌르는 복음의 칼날
누구나 인정하듯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은 기독교의 복음의 핵심이다. 그런데 그 두가지 결정적인 구속의 역사는 모두 인간의 타락과 죄를 전제로 하 고있다.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다면, 인간의 죄와 죽음과 사탄의 권세에 얽매여 있지 않다면, 나사렛 예수의 순종과 죽음은 인류를 ‘대속’하는 의미를 갖지 못할 것이다. 그것은 단지 아주 탁월하게 거룩한 한 인간의 ‘모범적인 행위’로 역사에 기억될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을 의지하지 않고서는 누구도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인정될 수 없으며, 따라서 의로운 자에게 주어지는 하나님 나라의 삶, 곧 영생의 삶을 누릴 수 없다는 사실이 기독교 복음의 기초에 있다.

이것은 성경이 결코 양보하지 않는 ‘불편한’ 사실 이다. 로마서 1장 하반부에서 묘사된 ‘내놓고 악하게 살아가는 자들’ 을 강력하게 비판하면서, 소위‘ 남에게 해끼치지 않고, 남의 신세지지 않으면서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선량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로마서 2:1-16에 있는 사도 바울의 비판은 대단히 불쾌하고 동의하기 쉽지 않은 고발이다. 그렇지만, 이 불편한 사실을 바울 뿐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분명히 강조하여 가르친다.

어려서부터 십계명의 두 번째 돌판에 새겨져 있는 모든 계명들을 다 지켰다고 양심적으로 자부하는 젊은 청년 관원에게(막 10:20-21), 예수님은 그의 부족한 것을 지적하시면서 참된 이웃 사랑(“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라”)과 하나님 사랑(“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고 요구하셨다(눅 18:22). 십계명이 가르치는 이웃 사랑의 참된 정신이 무엇인지 깨우쳐주신 예수님의 말씀에, 부자 청년 관원은 근심하면서 주님을 떠났다. 어려서부터 십계명을 다 지켰다는 도덕적 우월감이 영생을 얻기에는 얼마나 턱없이 부족한것인지 이 일화가 여실히 보여준다. 예수님의 동생 사도 야고보 역시 그 엄격한 기준을 함부러 낮추지 않는다: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를 범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11간음하지 말라 하신 이가 또한 살인하지 말라 하셨은즉 네가 비록 간음하지 아니하여도 살인하면 율법을 범한 자가 되느니라”(약 2:10-11).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는 모세의 교훈을 인용하여, 다른 사람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의로운 삶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의롭다 인정받으려는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고 위험한 일인지 경고한다(갈 3:10).

장로교회의 대/소요리문답은 성경의 이런 근본적인 기준을 잊지 않고 잘 강조하는데, 순종의 규칙으로 우리에게 주신 십계명 해설을 마친 다음에 그 사실을 새삼 되새겨준다. 소요리문답(WSC)에 따르면,
•문 83: 법을 어기는 죄가 모두 똑같이 악합니까?
답: 어떤 죄는 그 자체로서 그리고 거기서 파생된 해악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서 다른 죄보다 더 악합니다.

그리고 대요리문답(WLC)은 ‘범죄자’가 누구인지, ‘피해자’가 누구인지, ‘저지른 죄의 본성과 성질’이 무엇인지, ‘죄를 저지른 시간과 장소의 환경’이 어떠한지에 따라, 어떤 죄가 다른 죄보다 더 크고 흉악하다고 자세히 설명한다(151문답). 이것은 상대적으로 더 윤리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과 내놓고 악한 삶을 자랑하며 살아가는 자들을 분명하게 구분해준다. 그러나 하나님의 공의로운 기준에 따라 평가할 때, 그렇게 상대적으로 윤리적인 사람들이라도 결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면할 수 없다고 대/소요리문답이 일치하여 강조한다: “모든 죄마다 마땅히 받아야할 보응은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를 받는 것입니다”(WSC 84). 왜냐하면 “모든 죄는, 그것이 아무리 적을지라도, 하나님의 주권과 선하심과 거룩하심, 그리고 그분의 공의로운 법을 대항한 것이기 때문에, 현세와 내세에서 그의 진노와 저주를 받아 마땅하며, 오직 그리스도의 피 외에는 결코 속죄될 수 없기” 때문이다(WLC 152).

장로교회와 더불어 개혁주의 신앙을 따르는 개혁교회 역시 복음의 이 ‘불편한’ 기초를 회피하지 않고 바르게 가르친다. 로마서의 구성에 따라 개혁주의 신앙을 설명하는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라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요약하여 가르치신 ‘사랑의 이중계명’으로 인간의 죄와 비참을 설명한다.

곧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근본적인 요구를 자신의 힘으로는 결코 이룰 수 없는 인간의 현실에서 우리의 죄와 비참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HC 제2주일
• 3문: 당신의 죄와 비참함을 어디에서 압니까?
답: 하나님의 율법에서 나의 죄와 비참함을 압니다.

• 4문: 하나님의 율법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답: 그리스도께서 마 22장에서 이렇게 요약하여 가르치십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 22:37-40).

• 5문: 당신은 이 모든 것을 온전히 지킬 수 있습니까?
답: 아닙니다. 나에게는 본성적으로 하나님과 이웃을 미워하는 성향이 있습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불편한 진실
종교개혁을 시작한 마틴 루터가 말했듯이, 원죄란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자기중심성’이며, 어떤 도덕적 노력으로도 끝내 이길 수 없는‘이기심’이다. 우리는 ‘본성적으로 하나님과 이웃을 미워하는’ 죄인으로 태어난다! 교회 밖의 많은 사람들에게, 심지어 적지 않은 그리스도인들에게까지 대단히 ‘불편한’ 성경의 이런 교훈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주와 구세주로 영접할 수 없는 것이 오늘날 우리도 올바르게 직면해야 하는 영적인 현실이다. 부자 청년 관원은 예수님께서 밝혀주신 그 불편한 진실 앞에서 돌아서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한때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자’(빌 3:6)로 자부하면서,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을 박해하는 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마땅한 도리’(요 16:2)로 알고 열심히 교회를 박해하였던 사울은, 부활하신 주님께서 그 불편한 진실을 깨우쳐주셨을 때 자신의 죄와 비참을 올바르게 인식하고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매달렸다!

오늘도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그리스도 밖에 있는’ 우리 자신의 전적인 무능력과 부패를 올바르게 깨달아야 한다. 그것을 거듭하여 마음에 깊이 새기지 않으면, 어느덧 우리도 바리새인과 서기관과 같이 ‘자신의 의를 자랑하고,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율법주의와 바리새주의에 빠지게 될 것이다. 로마서의 이 첫째 부분을 깊이 있게 묵상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왜 그렇게 소중하며 우리의 삶 전부를 거기에 걸어두어야 하는지 그 까닭을 올바르게 깨닫지 못할 것이다.
본회퍼 목사의 말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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