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로마서 1장

기사입력 2018.12.22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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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흥교수.jpg▲ 필자인 김진흥 박사는 Sydney Collage of Divinity 교수로 재직 중이다.
  “교회 안에서 일어난 모든 큰 변화와 개혁들은 거의 다 이 바울서신의 연구와 깊은 관계가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본서(로마서) 연구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 속에 큰 역사를 이루시도록 기도하십시오. 많은 기대를 가지고 시작하면, 하나님께서 그만큼 많은 것으로 채워주실 줄 믿습니다.” (앤드류 큐벤호벤)
 
1.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롬 1:1-17)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자 사도’로 자신을 소개한 바울은 그가 하나님께 택함을 받은 목적이 ‘하나님의 복음’을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롬 1:1). 그런데 그 하나님의 복음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메시지이며,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소유로 부름받은 자라는 사실을 바울은 처음부터 분명하게 가르친다(롬 1:2-6). 그 하나님의 복음, 곧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메시지를 로마의 성도들에게 체계적으로 소개하는 이 서신에는 다음과 같은 여러 중요한 주제들이 담겨 있다:

-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어떻게 가능한지(예수님의 복음을 통하여);
- 유대인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들이 어떻게 지켜질 것인지(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을 여전히 지키심으로써);
- 구약의 언약에는 외인(外人)이었던 이방인들이 어떻게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는지(유대인들과 마찬가지 방법으로, 즉 예수님을 통하여 의롭다 인정받음으로써);
- 이방인들은 어떻게 예수님의 복음을 듣게 될 것인지(하나님의 사도인 바울을 통하여, 로마 성도들의 재정적 지원을 힘입어,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예수님을 신뢰하는 모든 사람들이 동참해야 할 선교의 사명을 통하여);
- 유대인과 이방인이 이제 어떻게 함께 살아야 하는지(성령의 하나되게 하시는 역사를 통하여);
- 그리고 아마도 모든 주제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으로서, ‘어떻게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유대인과 이방인을 막론하고 모든 불의한 자들을 의롭다고 선언하실 수 있는지, 그리고 그런 선언이 어떻게 하나님의 의로우신 본성을 해치지 않을 수 있는지(예수 그리스도의 대속과 순종의 사역을 통하여)

  이런 중요한 주제들을 보면, 로마서가 과연 간단하지 않은 서신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그렇지만, 사도 바울이 이 서신을 통하여 로마의 성도들에게 그리고 오늘 우리들에게 전해주는 하나님의 복음의 핵심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의’라는 사실, 곧 우리의 선행이나 율법 준수를 통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보고 선물로 주시는 하나님의 의’에 관한 메시지이다(롬 1:17). 사도 바울은‘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는하박국 선지자의 유명한 말씀(합 2:4))을 인용하여, ‘오직 은혜’(sola gratia) 그리고 오직 믿음(sola fide)으로 말미암는 의의 복음을 증거한다. 로마서를 푸는 중요한 열쇠는,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죄인인 인간이 내세울 수 있는 ‘유일한’ 의로움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선물로 인정하시는 의로움’(the righteousness that comes as a free gift, through Jesus Christ)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이 진리를 올바르게 깨달으면, 사도 바울의 서신이 주는 다른 많은 축복들도 커다란 위로와 기쁨으로, 또 하나님께 올려 드릴 영광으로 우리 앞에 환하게 펼쳐질 것이다. 그런데, ‘은혜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강조하면서도 사도 바울이 로마서의 서두(1:5)와마지막(16:26)에서 잊지 않고 강조하는 중요한 표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하게 하나니”
“모든 민족이 믿어 순종하게 하시려고”

  사도 바울은 이 믿음은 순종과 불가분리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로마서의 처음과 끝에서 잊지 않고 강조한다. 그리고 로마서 전체에서 이 순종이 ‘전가의 교리’에 의해서도 또한 ‘성화의 관점’에서도 동일하게 중요한 교훈이라는 사실을 가르친다. 달리 말하자면, ‘믿음의 순종’(obedience of faith, υπακοην πιστεως)은 (사도 바울은 전가의 교리를 가르칠 때) ‘믿음으로 구성된 순종’이라는 의미로 이해될 수 있고, 또한 (성화의 삶을 강조하는 롬 6장에서처럼) ‘믿음에서 나오는 순종’이라는 의미도  담고 있다. 전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한 순종에 근거한 것이고, 후자는 우리 속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의 열매이다. 이 두 가지 사상 모두가 의심할 여지 없이 로마서에서 뚜렷하게 나타난다. 사도 바울은 그 둘 가운데 어느 하나를 취사선택하지 않는다. 이 사실을 바르게 깨닫지 못하면, 결코 로마서를 올바르게 이해할 수 없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 선생은 ‘그리스도인의 자유’(1520)라는 명저에서 이 사실을 다음과 같은 유명한 역설(paradox)로써 우리에게 잘 가르쳐 주었다:

“그리스도인은 모든 일에 관하여 매우 자유로운 주인이며, 그 누구에게도 복속되지 않는다.
그리스도인은 다른 모든 사람들에 대하여 매우 유능한 종이며, 모든 사람에게 복속된다.”

  사도 바울의 두 구절(고전 9:19; 롬 13:8)에서 따온, 외형상 모순적으로 보이는 이 두 명제들이 서로 조화될 때, 비로소 그리스도인의 삶의 본질을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다고 루터 선생은 강조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삶의 모습이 바로 그런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이 로마서의 초두와 끝맺음에서 ‘믿음의 순종’을 강조하는 것은 이처럼 깊은 의미가 있다!  바울이 인용한 하박국서의 ‘믿음’(faith, emunah)의 개념도 역시 ‘견인불발’(steadfastness), 즉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에 대한 확고한 믿음에 근거를 둔 충절’(fidelity based upon a firm belief in God and His Word)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도 이런 측면에서 의미심장하다. 이스라엘과 모든 열방들의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무섭고 공의로운 심판을 기다리면서도, 선지자의 유일한 위로는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신실한 믿음이다. 그런 믿음이 경건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보게 만들었다.
 
2. 하나님의 공의로운 진노 (롬 1:18-23)
  ‘우리를 무조건적으로,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받아주시는 마음씨 좋은 분’으로 하나님을 소개하는 오늘날의 유행과는 달리, 사도 바울은 로마서의 첫 부분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 때문에 개인적으로 화를 내신다’는 불편한 진리를 제시한다.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을 뚜렷이 증거하는 그분의 피조물을 날마다 대하면서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거나 감사하지 않는 우리의 모습을 사도 바울은 가감없이 폭로한다. 그런데, 우리의 죄에 대한 철저하고 노골적인 비판은 단지 바울 시대의 로마 제국의 형편을 특별하게 지적한 것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런 신랄한 비판의 척도는 바울 자신의 견해가 아니라 구약성경의 율법서(레 18:22, 신 4:16-18) 역사서(왕하 17:15) 선지서(사 44:19-20, 렘 2:5, 10:14) 시가서(시 106:20)에서 가르친 하나님의 기준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점에서 로마서의 첫 부분, 곧 죄악된 우리 인간의 비참한 현실(Misery)에 대한 사도 바울의 설명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중심으로 한 성경의 복음을 올바르게 이해하는데 아주 중요한 기초가 된다. 자기의 죄를 깨닫고 고백하지 않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나타난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을 받아 누릴 수 없기 때문이다! 참된 기독교 신앙의 시작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른 우리의 삶의 근본적인 ‘방향전환’(Conversion)으로 시작되는데, 그런 변화의 핵심적인 두 가지 내용은 ‘회개’(Repentance)와 ‘믿음’(Faith)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복음을 올바르게 선포하기 위하여, 그리스도 밖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죄악된 현실을 날카롭게 해부한다. 하나님께 등을 돌리고 자신의 뜻에 따라 살아가는 것을 옳다고 여기는 사람들은 사실상 하나님께 버림받은 자들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롬 1:24)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곧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롬 1:26)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롬 1:28)

  세 번에 걸쳐 바울은 ‘내버려두심’을 하나님께 등을 돌린 인간의 죄악에 대한 공의로운 진노의 표현으로 소개한다. 의로우신 하나님의 뜻에 관한 이런 명백한 사도적 선포에 비추어 볼 때, 오늘 교회 안팎에서 이야기되는 다음과 같은 주장들을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지 새삼 돌아보게 된다:

“뼛속까지 악한 사람은 사실 극소수에 불과하며,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렇게 악한 죄인은 아니다.”
“동성애는 유전적인 경향이고, 일종의 질병에 해당하므로, 그것을 도덕적인 죄라고 말할 수 없다.”
“죄와 심판에 관하여 이처럼 강조하여 말하면, 많은 사람들이 낙담하여 교회를 떠날 것이다.”
“구약의 하나님은 진노하시는 무서운 심판관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만, 그러나 신약의 예수님은 사랑과 관용과 포용을 가르친 분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신 ‘사랑의 하나님’을 가르쳐야 한다.”

그러나, 성경을 진지하게 대하길 원한다면, 거룩하신 하나님께는 사랑과 진노가 함께 있다는 사도 바울의 교훈을 올바르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의 진노는 거룩하신 그분의 성품 가운데 하나이며, 무엇보다도 자신의 독생자를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사 죄의 삯인 사망을 온전히 치르게 하신 일에서 분명하게 나타났다. 그런데 바로 그 공의로운 진노를 드러내는 십자가야말로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확인하는 가장 큰 증거이기도 하다! 바로 이런 점에서 ‘사랑의 반대말은 진노가 아니라 무관심’이라는 말은 정곡을 찌르고 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증거되는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올바르게 가르치기 위하여, 하나님께 등을 돌리고 그분의 피조물을 우상시하여 살아가는 우리의 영적 암매를 철저하게  깨우치고 있다. 오늘 우리는 교회와 가정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과연 어떻게 전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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