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칼럼] 선교는 재창조

기사입력 2017.04.10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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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는 재창조

 
lee.jpg▲ 필자인 이찬우선교사는 인터서브선교회 남아시아 지역대표로 사역하고 있다.
   병원에서 약사로 일을 하다가 청년의 때에 타문화권 선교사가 되겠다고 했던 그 결심을 실행해 옮기기로 하면서 나는 어느 국제 선교단체에 훈련을 받으러 갔다. 6개월 과정의 훈련 기간 중에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한 기초단계 훈련부터 짧지만 직접 선교지 체험 훈련까지 하게 되었다.

 선교사가 되겠다는 마음으로 그 훈련에 임했기 때문에 내 마음에는 계속해서 선교에 대한 관심과 질문이 많이 있었다. 그리고 배우는 하나 하나의 과정을 어떻게 하면 선교와 연결을 지을까 생각하였다.

  어느 날 평상시와 다름 없이 아침에 성경을 읽고 묵상을 하는 가운데 그 날 읽은 본문이 내게 질문을 하게 만들었다. 마가복음 3장 13절 말씀 이하의 본문이었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부르시는 장면이다. “또 산에 오르사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그 동안 복음서에서 예수에 대하여 읽을 때마다 인간의 모습으로만 읽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 날 아침에, 제자들을 부르시는 이 장면에서 예수는 바로 천지를 창조하신 그 하나님이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알게 되었다.

 그리고 천치를 창조하실 때에 말씀으로 창조하신 그 하나님이 지금은 예수 안에서 동일한 말씀으로 제자들을 부르고 있다는 것을 보게 되었다.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할 때에 그 무질서가 질서를 갖추고, 존재들이 형성되듯이 그 어떤 것도, 누구도 그 말씀에 거역할 수 없는 절대 명령을 창세기에서 읽는다. 동일한 그 하나님, 능력의 하나님, 창조의 하나님이 이제 예수라는 인간의 모습 속에 나타나셔서 동일한 능력과 명령으로 사람들을 부르고 계심이 이 본문이었다. 마가복음 본문은 아주 단순하게 적고 있다.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더 설명하지 않는다. 그들이 거역하거나 거부하거나 망설였다는 이야기가 없다. 본문은 계속된다.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 하는 일들에 대하여 언급을 한다. 소위 우리가 보통 말하는 어떤 사역의 종류와 같은 것들이다. 이 부름을 받은 사람들에 대하여 나의 생각이 옮아갔다. 이들이 누구인가? 어떤 자들이기에 예수님의 선택을 받게 된 것일까? 우리가 잘 알듯이 이들은 그저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세리, 어부들......그 사회 속에서 특별할 것이 없는 그저 평범하기 짝이 없는 이들.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왜 이들을 부르셨는가?”라고. 그 예수님이 내게 이렇게 대답을 하시는 듯 했다. “재 창조 하려고......”. 그때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질문을 쏟아 놓았다. “왜요? 그 때는 말씀으로 창조 다 하셨으면서 이제는 왜 이 사람들을 통해서 창조를 하려고 하시냐”고. “이제 그 능력이 다 떨어지셨는가? 도대체 대단한 사람들도 아닌 이 보통 사람들을 통해서 무슨 재창조 같은 위대한 일을 하시려는가?”라고 하면서 계속 그 말씀 앞에 머물고 있었다. 그때 내 마음에 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시편 23편 말씀을 읽어 보라고. 그 말씀은 그 당시에 익히 잘 알고 있었고 거의 외우다시피하는 말씀이었기 때문에 성경을 열어 볼 필요가 없었다. 그럼에도 혹시 내가 잘 모르고 있었던 구절이 있나 해서 그 말씀을 열어 보았다. 차근차근 시편 23편을 읽어 보았다. 한번 읽었을 때에는 아무것도 새로울 것이 없었다. 또 다시 천천히 그 말씀을 읽어 내려갔다. 5절 말씀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새롭게 다가왔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주께서, 원수의 목전....이 두 마디가 크게 울림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내 마음 속에 이런 설명이 떠오르는 것이었다.
 
 원수 마귀가 인간을 타락하게 하여 하나님의 피조물인 인간을 조롱거리로 삼았는데, 이제 그 조롱거리가 된 인간, 아주 평범한 그들 12명을 선택해서 그들 안에 새로운 법을 세우고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온 우주에 하고 싶었던 그 회복을 이루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원수가 망가뜨려 놓은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해서 그들로 하여금 온 세상에 하나님 통치와 그 통치의 열매들을 보여주고 싶다는 하나님의 소망을 보게 되었다.
 그래서 그 분이 그날 산에서 12명을 부르시고, 우선은 전도와 귀신을 쫓는 일 등 어떤 사역을 시작하게 하기 보다는 우선 그들이 예수와 함께 있게 하기 위해서 부르셨다는 말씀을 계속해서 읽게 하셨다.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선교사로 사는 동안 어쩌면 가장 중요한 한 가지 일이 있다면 우선 예수님과 함께 하는 것이다. 그 예수 안에서 내가 진정으로 내가 되는 것이 바로 사역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그 임재 가운데서 이제 그분이 꿈꾸셨던 그 일, 재창조를 행하는 것이다.
또 질문이 이어졌다. 아, 이제 알겠는데 재창조는 어떻게 일어나게 되는 것일까? 라고.
잠시 이 질문을 가지고 묵상을 하는 가운데 이런 생각이 떠 오른다. 뭐 근사한 사역을 하는 것이 아닐 것이라고. 대단한 건물을 짓고, 대규모로 사람들을 모으고, 선교 센터, 학교, 병원 등 이런 보이는 사역 보다는 그저 매일의 삶 속에서 그 분의 임재와 성령의 인도하심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라고. 매일 읽는 말씀을 묵상하고 그 말씀을 내 손과 발로 살아내는 것. 마음으로 느끼고, 그 느낌을 나눌 때에 내가 그 말씀 속에서 만난 하나님의 영광이 내가 사역지에서 만나는 사람들 속에 비춤이 일어날 때 비로서 그들 안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그 창조가 일어날 것이라고.
 
 선교는, 선교사는 바로 생명의 말씀이 되신 예수님의 임재를 일상 가운데 느끼고 실천하는 삶이라고 말하고 싶다.
오늘날 선교지에서 수 많은 선교사들이 프로젝트에 목을 매고 있는 듯한 모습을 많이 본다. 그 프로젝트 때문에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고, 재정 압박에 시달리고, 때로는 그 프로젝트 때문에 선교사들 간에 갈등이 생기고, 가정에 불화도 생기고, 또 심지어 현지인들과의 갈등도 야기하는 경우들을 많이 목격한다.
파송교회도 보낸 선교사들을 통해서 뭔가 가시적인 사역의 열매를 요구하는 일도 부지기수에 이른다.
 
 예수께서 이 땅에 인간의 모습으로 오셔서 행하셨던 일들을 다시 한번 묵상해 보는 이 사순절 기간이다. 그 분이 오셔서 제자들을 부르시고, 그들과 함께 사시면서 하나님 나라의 통치가 어떤 것인지 몸소 보여 주심에 주목하고 싶다.
그리고 그분이 오셔서 세상 권력자들을 부르시지 않고, 학식이 높은 자들을 부르시지 않고 아무런 특이 사항이 없을 그 평범한 사람들을 부르셔서 온 세상을 변혁시키려고 한 그 꿈을 이뤄가시는 것을 본다. 아니 아직은 아니겠지만 궁극적으로 그 꿈이 실현될 것을 성경에서 읽는다.
 
 선교는 재창조이다. 우리 현장에 계신 선교사님들 한 분 한 분을 통해서 예수께서 그곳에서 오늘도 그들을 통해서 재창조를 이뤄가시는 것을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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