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자본주의와 기독교 - 3

기사입력 2017.03.17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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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1.jpg▲ 최윤목사는 기독교경제연구소장과 청어람교회 담임목사이다.
   예수님은 지난 2천년 동안 단 한 번도 제대로 이해받지 못했습니다. 그 중요한 원인은 예수의 정신이 너무나 급진적이며 현대적이었다는 것입니다. 예수의 정신엔 사회주의, 여성주의, 생태주의, 아동인권을 비롯한 인류가 현대에 들어서야 깨달은 여러 소중한 정신들을 내포하고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예수님을 둘러싸고 그를 좇는 무리와 일행엔 언제나 여성들이 여럿 포함되어 있습니다. 되짚어 보건데, 인류 역사의 어떤 현인이나 종교 창시자도 여자를 일행에 포함시킨 일이 없습니다. 20세기 초만 하더라도 여자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직도 중근동의 여러 나라들은 그들의 종교적, 사회적 전통을 내세워 여성의 인격을 인정치 않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2천 년 전에 그 척박한 근동의 땅에서 여자들과 동행했고 여자 가운데서도 가장 천한 성매매 여성과 인격적으로 교우했습니다. 예수의 그런 행동이 사람들을 얼마나 ...당혹스럽게 만들었을지 그 사회에 얼마나 큰 충격을 주었을지 잘 생각해보십시오. 오늘 기독교인은 과연 어떤 행동으로 사회에 당혹감과 충격을 주고 있습니까?

   기독교는 예수의 정신을 되찾아야 합니다. 이기심과 사적 소유를 기반으로 한, 땀 흘려 같이 일하고도 남보다 수 천, 수 만 배의 돈을 벌어들이는 사람이 존경받는, 계급적 착취와 제국주의적 착취가 공공연한, 사랑이나 존경까지도 돈으로 매매되는 자본주의는 기독교인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들에게 말 그대로 악마의 사회체제입니다. 그래서 막스 베버(Max Weber)는 이를 두고 ‘천민자본주의’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이른바 정부의 간섭을 대폭 줄이자는 ‘작은 정부’와 ‘국제적인 자본이동의 자유화’를 내세우는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자본주의는 초기 자본주의의 야만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80년대 말 자본주의의 강력한 경쟁자이던 동구 사회주의들이 몰락하면서 더 빠르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지금 인류를 나락으로 떨어트리고 있습니다. 소위 ‘양극화’라고 부르는 빈부격차는 급속하게 벌어지고 그 격차는 좁혀질 수 없을 정도로 견고합니다. 국가 간, 뿐만 아니라 기업과 개인 간에도 이윤을 차지하기 위해선 도덕도 윤리도 없이 공공연한 침략전쟁도 불사합니다. 그런데 교회는 그런 현실에 대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응하기는 커녕 오히려 그에 부응하고 있습니다. 그런 현상이 가장 강한 교회가 바로 한국의 교회입니다. 한국 교회가 이렇게 된 배경은 흔히 미국식 ‘근본주의 기독교’, 말하자면 지금 트럼프 일당이 믿는 그런 기독교가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맞는 얘기지만 보다 더 결정적인 배경은 세계 교회사에서 유례가 없다는 이른바 ‘한국교회의 놀라운 부흥사’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한국교회의 놀라운 부흥은 주로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개발 파시즘 기간 동안의 일입니다. 물론 그건 시간상의 우연한 일치가 아닙니다. 한국교회는 개발 독재의 가장 충직한 선전선동 장치였습니다.

   “믿으면 받는다.” 라는 한국 교회의 설교는 “하면 된다.” 라는 개발 독재의 구호와 일치했습니다. 한국 교회의 무조건적 반공주의는 민주주의적 의견을 빨갱이로 몰아붙이는 독재 권력의 행보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결정적인 기여를 했습니다. 또한 교회는 사람들의 자연스런 저항의식을 배설하게 하는 공간이었습니다. 관제 행사가 아니라면 여럿이 모이는 일조차 불편하던 시절, 교회는 사람들이 마음껏 소리치고 교제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습니다. 특히 파시즘이라는 사회적 억압에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식의 전근대적 가부장제에 시달리던 여성들에게 교회는 그야말로 해방의 공간이었습니다. 게다가 믿으면 남편도 자식도 잘된다는데 당시 여성들에게 그보다 더한 가치가 어디 있겠습니까. ‘아줌마’들은 교회 부흥의 돌격대가 되었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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