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미디우 크러티 (중간층)을 탈출하자

기사입력 2017.02.27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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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음이 무엇인지 알아보려고 하지 않는 복음주의자들이 많고, 칼빈이 누구인지 알아보려고 하지 않는 칼빈주의자들이 많다. 좋은 부모노릇은 하고 싶은데 좋은 부모에 대하여 공부하지 않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지혜를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보려고 하지않는 철학도 중에 철학사를 꿰고 있는 이들이 없지 않다. 정치에 엄청난 관심이 많고 참여적이면서 정치가 무엇인지 알아보려고 하지 않는이들도 부지기수이다.
이런자리에 있는 계층을 "바위산 중턱에 주저앉아 산너머에 무엇인 있는지 어대충 상상으로 해결하려는 사람을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Mediu-Craty /미디우 크러티; 중간치기, 조금 기분나쁘게 얼빠진 전문가, 또는 거리치기)" 이라고 칭한다.

 뭐 나도 어떤 영역의 전문가들이 바라보면 결코 예외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하여 부지런히 각성하지 않고는 아무도 감당 할 수 없는 강적이라는 것이 두렵다. 이런 계층의 사람이 가진 열정이 얼마나 큰 불순 세력인지 역사는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성경에 나타난 거짓교사들, 거짓 선지자들이 다 이런 부류였다. 내가 얼마든지 그런 사람이 될수 있다. 악한 형명가, 비뚤어진 애국주의자, 자기나라만 아는 국수주의자들이 다 이런 부류였다. 이런 사람들이 역사를 사정없이 비틀어 놓았다. 역시 나도 그 대열에 설수 있다.
 이런 얼치기 수준에 있는 나같은 사람들이 이 상황을 벗어난 분들을 존경하고 배우려는 겸허함을 갖는다는 것은 정말 쉽지않다. 지기 싫어하는 성격, 자신의 수준이 그렇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어하는 오만과 편견, 두터운 자만심이 무시 무시한 덫이다.
 모든 영역에는 정상을 정복하고 그 너머를 섭렵한 분들이 있게 마련이다. 이러한 탁월한 지혜자들을 찾아 부지런히 배우려는 사람이 되는 것이 그나마 그 얼빠진 중간치기의 치기어린 태도를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자기를 숨기기 위해 바위뒤에 숨어서 모든것을 다 본 사람인양 하는 것을 자기기만이라고 할 수 있겠다. 자기기만이 몸에 밴 사람의 특징은 모든게 손쉽다. 아주 간단하다. 갈라부치고 편가르기에 능하다. 금방 해답을 제시한다.
적당히 얼버무리면 된다. 거짓이 몸에 배어 있어서 엎어치고 메치고 해서 그 위기를 어물쩡 넘기고 아무일 없었던 것처럼 지나치는 습관에 몸에 배어있다. 이를테면 "해아래 새것이 있겠나? 또는 모두 별수 없는 인간이지...뭐 별 사림이 있겠나?"
이런 말을 별로 어렵지 않게 내뱉는 것이다. 그리고 금방 허무주의에 빠지거나 자기 고집을 극대화하고는 대화를 거절한다. 중치기로 살려고 안주해버린 모습이다.
 이런 사람들은 속히 자기 안전지대를 벗어나지 않으면 새로운 세상은 없다. 지금 좋은 것에 빠져서 단맛만 즐기고 있는 사람은 불원간에 망함의 중심이 서 있게 된다.
 예를 들어 "용서는 하되 잊지는 말자" 라는 말은 단지 과거의 역사를 기억하라는 뜻 만을 함의하고 있는 것이 절대 아니다. 용서받은 사람들이 또 그러한 파괴적인 죄악을 재반복 할 때는 강력한 제재, 심지어 목숨을 걸고 다시 그 괴악을 자행하지 못하도록 지적하고 비판하고 저항하는 사람으로 살아가라는 말이다.

 프랑스는 대혁명을 통해 민주주의가 어느정도 뿌리를 내려서 정치인들의 거짓이 통하지 않는 민주정치와 질서있는 민주주의가 확립되게 된 것이라고 프랑스에 거주하는 지인이 말하는 것을 들었다.
독일이 나치전범을 지금도 찾아서 강력하게 처벌하는 정치가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동독을 품고 넉넉히 새로운 질서를 확립해가는 실력있는 나라가 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지 않는가?
"용서는 하되 잊지는 말자" 라는 말을 패역무도한 정치범들이나 민족을 반역했던 반역자들이 지금도 여전히 악을 도모하고 괴악한 일들을 백주 대낮에 길거리에서 자행하여도 모든 것을 허용하고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자는 말로 오용하는 사람들이 허다하다.
심지어 하나님의 이름을 악용하여 십자군 전쟁을 벌이자는 이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진짜 고통스러운 역사를 다시하자는 것이다. 계엄을 선포하라고 으름짱이다. 우리 역사를 반동과 부패, 패역과 괴악으로 이끌어온 세력들이 청산되어야 한다.
기득권으로 똘똘 뭉친이들의 적대감, 멀쩡한 시민들을 빨갱이로 몰고 그들을 처단해야 한다고 외치는 이들의 뒤에는 누가 있는가? 그 뒤에는 친일부역자들이 있다. 역사의 전환점마다 카멜레온 처럼 변신하여 정치적인 우위를 점하고 지배계층을 만들어온 악질적인 정치인들이 뒷받침하고 있는것이다.

 북한의 핵폭탄이 우리의 국력일 수 있다고 암암리에 현혹하는 반역적 무리들, 김일성과 김정일, 그리고 김정은을 위대한 리더십을 가진 왕조라고 추켜세우며 황태자 운운하면서 은근히 부러움의 시선을 가지도록 호도하는 세력들의 뒤에는 누가 있겠는가?
이 두세력의 뒤에는 정치를 이용해 권력을 획득하고 자기배를 불리우려는 욕심으로 가득찬 정치몰이배들이 자리하고 있다. 좌우를 분간치 못하는 우매한 백성들이 이러한 간악한 무리들에게 현혹되어 고생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치열하게 자기이익 추구하는 열강들의 대척점이다. 게다가 남북분단이라는 정치적인 악재를 교묘하게 이용하여 기득권을 끝까지 붙들고 호의호식 하려는 사악한 정치꾼들이 자리하고 있다.

 지금 한반도의 역사는 바로 이 괴악한 세력들이 역사적 심판을 받아야 하는 중차대한 싯점이다. 기독신앙인이라면 분명히 게으름과 탐욕을 버리고 이 현실을 정확하게 바라보고 어떻게 기도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숙고하고 토론하고 실천하고 따라야 할 것이다.
자칭 지도자연 하는 사람들의 말을 쉽게 믿고 따르지 말고 그것이 성경적인가에 대하여 마음과 뜻을 다하여 공부하고 겸허한 마음으로 묻고 토론하는 열심이 불일듯이 일어나야 할 중요한 싯점이다.

 세월지난 뒤에 부끄러운 부모, 부끄러운 선배의 자리에 있지 않으려면 대오 각성해야 한다. 기독교인의 정치인식에 대하여 논의하고 있는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 (원제; Healing the Heart of Democracy)의저자인 파커 J 파머는
서너명이 모여서 시국을 논하고 민주주의를 논하는 그룹 100만개만 있으면 미국의 비극을 뒤집어 엎을 수 있다고 말한다. 의논이 성하고 모사가 성하면 일이 바로설수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팔며는 퀘이커 교도이다. 그는 민주주의가 뭔지를 이 책에서 너무나 잘 설명해주고 있다.
다행히 요즘 tv에서 흥미를 끄는 예능이 있단다. 이 프로그랭을 보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어느정도 객관성을 보여주기 때문이리라. 이 방송인즉 썰전이라고 한다. 혀전쟁이다. 보수와 진보의 혀로벌이는 전쟁이 흥미롭단다.
아들의 전언에 의하면 대학생들의 30-40%가 썰전에 대하여 말한다고 한다. 심지어 5,60대의 시민들이 썰전을 본다고 한다. 보수논객 전원책과 진보논객 유시민 그리고 그 이름도 희한한 김구라가 보는 사회인데 이 예능이 한계를 극복하는데 일조를 하고 있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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