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도서] 교리교육의 역사

기사입력 2017.02.07 15:28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기사내용 프린트
  • 기사내용 메일로 보내기
  • 기사 스크랩
  • 기사 내용 글자 크게
  • 기사 내용 글자 작게
교리교육의 역사
정두성 / 세움북스

정현욱.JPG▲ 정현욱목사는 10여개 출판사의 신간 서평단으로 활동하며 두란노<생명의 삶 플러서> 집필자로 활동하고 있다.
  20세기 시작되면서 세계는 근대와는 전혀 다른 얼굴을 가진 시대와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소위 포스트모더니즘 시대가 도래하면서 권위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양상이 사회 전반에 일어났습니다.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를 간략하게 설명하면 전체보다는 개인을, 권위보다는 상호 관계를, 획일성보다는 다양성을 강조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는 지금까지 누리지 못한 자유와 즐거움을 선사해주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권위에 대한 반감을 넘어 부정하는 현상까지 일어나면서 기독교는 위기에 빠져들었습니다. 빛이 강하면 그림자도 강한 법입니다. 포스트모더니즘 시대가 도래하면서 성경에 대한 권위가 떨어지면서 진리에 대한 회의가 심각하게 대두되었습니다. 많은 교회들이 마이너스 성장을 막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지만 결과는 미미합니다.
 그런데 특이한 현상을 ‘오직 성경’만 가르치는 이단들은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성장을 위해 전도운동과 갖가지 프로그램을 도입한 교회는 오히려 쇠퇴하고, 성경만을 고집하는 이단들이 파죽지세로 교회들을 점령해 나가고 있습니다. 그들의 공경 무기는 그동안 교인들이 싫어한다는 명목으로 잘 가르치지 않았던 성경이었습니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거짓된 가르침이 진리를 가진 교회를 잡아먹고 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교인들이 성경을 모르기 때문에 속수무책으로 이단의 속임수에 넘어가고 있습니다.

 성경의 권위가 떨어지고, 거짓 교사들이 날뛰는 이 시기에 교회가 다시 회복해야 하는 것은 바로 ‘바른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교회 역사를 봐도 교회가 부흥하고 성장했던 시기는 말씀이 뜨거웠던 시기였습니다. 초대 교회가 그랬고, 종교개혁 시기가 그랬고, 우리나라 초대교회 당시에도 역시 말씀의 부흥이 곧 교회의 부흥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가르침이 교회 역사 속에서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배워보고, 현재 교회 안에는 어떤 교육이 필요한지 알아보겠습니다.
 최근에 초대교회와 종교개혁 시기, 한국교회 초기 교회 교육을 정리한 한 권의 책이 출간되었습니다. 정두성 목사의 <교리교육의 역사>가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책을 통전적으로 관통하는 방법을 통해 각 시대 속에서 행했던 교리 교육의 특징 중에서 공통점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교리교육의역사.jpg 먼저 교리가 무엇인지 간략하게 설명해 보겠습니다. 66권을 된 성경은 크게 신약과 구약으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구약은 모세오경, 역사서, 시가서, 선지서로 구분합니다. 신약의 경우는 복음서와 역사서인 사도행전, 서신서와 마지막으로 묵시록인 요한 계시록으로 구분합니다. 개신교의 이러한 분류법은 피상적입니다. 유대인들은 약간 다르게 구분합니다.
 구분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지만, 성경이 내용은 상당히 다릅니다. 예를 들어 모세 오경인 창세기부터 신명기까지의 성경조차도 서술 방식이 천차만별입니다. 창세기는 대체로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고, 레위기는 율법으로, 신명기의 경우는 모세의 설교가 대부분입니다. 이렇듯 성경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공통점은 있습니다. 성경의 이야기와 율법, 시와 예언 속에 나타난 공통점 특징을 찾아내 정리한 것이 바로 ‘교리(敎理, doctrine)’입니다. 이 부분은 이전 글 (청소년을 위한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1)을 참조하시면 됩니다. 교리교육이란 성경의 핵심 이야기를 주제별로 엮어 명징하게 정리한 것을 공부하는 것입니다. 만약 성경에 대한 명확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면 아무리 똑똑한 이단이라도 거뜬히 이겨낼 수 있습니다. 그들의 주장은 거짓이기 때문입니다. 거짓은 절대 진리를 이길 수 없습니다. 든든한 교회는 바른 교리교육을 통해 세워지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럼 교회는 그동안 어떻게 교리 교육을 진행해 왔을까요?

초대 교회의 교리 교육
 초대교회는 다사다난한 시기였습니다. 한 마디로 정의하기 쉽지 않은 갈등과 혼돈의 시기였습니다. 급격하게 일어나는 이단들을 대처하게 위해 교회는 공의회를 열어 교리를 정립하기에 이릅니다.
 요즘 우리가 외우는 사도신경은 사도들의 권위를 가진 가르침을 후대 교회가 정리한 것입니다. 사도신경 속에는 모든 교리가 축약되어 들어가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 성육신, 공생애의 고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 교회 생활과 심판까지 간략한 문장으로 정리되어 있습니다. 사도신경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거의 400년이 넘는 기나긴 세월 동안 교회가 이단과 싸우면서 만들어낸 성경적 교리입니다. 개인적으로 초대교회에서 가장 주목할만한 대상은 ‘교리 교사와 교리 학교’입니다.

 교리교사와 교리 학교는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들이 교회로 유입되면서 효율적으로 성경을 교육하기 위한 중요한 수단이었습니다.
 초기에는 교부들이 맡았지만 평신도를 교육해 대거 교리교사로 활용하였습니다.(57쪽) 초대교회는 평신도들의 활동이 활발했습니다. 6세기 이후 교회가 체계화되면서 ‘교리교사의 역할을 주교나 성직자만의 사역으로 점점 굳어’(59쪽) 졌습니다. 초대교회는 전적으로 평신도들이 대거 사역에 투입되어 활동했던 시기였습니다. 왜 평신도들이 사역이 활발했던 이유는 교회의 핍박과 여러 가지 환경적 악 조건으로 인해 어쩔 수 없는 상활이 연출되었기 때문입니다. 평신도들의 사역은 전문가인 교부나 감독들의 영향력을 앞서갔습니다. 이것은 일방적 가르침이 아니라 토의와 나눔 형식의 공부법 때문이 아닐까 진단해 봅니다.

 초대교회의 또 하나의 교리 학교는 ‘세례 후보자 학교’였습니다.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들이 세례를 받기 위해 교회로 들어오자 그들에게 성경을 가르치기 위해 일정한 기간을 두었습니다. 연구에 의하면 그 기간은 무려 2-3년 정도였다고 합니다. 이것은 지금의 일반 신학교 수준의 교육입니다.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현대교회가 행하는 2-4주의 시간과 일주 일에 단 한 번 행해지는 세례 교육과는 질적으로 달랐습니다. 전달식과 대화식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앞선 교리교사와 비슷하게 일대일 양육이었습니다.

 “초대교회 세례 후보자 학교의 대화식 교수법의 가장 큰 특징은 선생님과 학생의 일대일 개인 과외식 수업이 대부분이었다는 것이다. 일대일 수업을 통해 교사는 학생이 얼마나 내용을 잘 이해하고 따라오는지를 충분히 파악할 수 있었으며, 학생은 다른 이들과 비교됨 없이 자신의 진도에 따라 교육에 충실히 임할 수 있었다.”(60쪽)

 일대일 교육은 지식 전달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신자로서의 삶까지 코칭을 받았습니다. 세례 적임자 선정에서 시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지식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변화된 삶’(61쪽)이었다는 것을 안다면, 더욱 명백해집니다. 일종의 도제교육처럼 자주 만나고, 대화하고, 공부하며 진리에 조금씩 접근해 나갔던 것입니다. 매우 원시적 방법인 것 같지만 가장 확실한 공부법이었습니다. 강의식으로 진행되는 현대교육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바로 교사들이었습니다.

교회개혁 시기의 교리교육
 루터의 95개조 반박문이 비텐베르크 성문에 붙여지면서 종교개혁은 시작되었다고 봅니다. 그전에도 이미 개혁의 목소리가 있었지만 힘은 없었습니다. 그러다 교회가 개혁되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자유 토론 형식의 95개조를 내걸었는데 이것이 걷잡을 수 없는 운동으로 확대되고 말았습니다.
 종교개혁의 중요한 모토 가운데 하나가 ‘다시 성경으로’입니다. 중세 교회는 교인들에게서 성경을 빼앗아 사제들만 성경을 읽고 해석했습니다. 루터는 종교개혁을 주도하면서 몇 가지 일을 시작했는데, 성경 번역과 교리교육이었습니다. 둘 다 일반 교인들의 손에 성경을 돌려주고 바른 성경적 지식을 교인들이 알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자는 루터 교리 교육서의 특징을 다섯 가지로 정리했습니다. 그 특징은 ‘성경 중심적’이었고, ‘평신도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일상생활에서 실천하는 교리’, 교사들이 잘 가르칠 수 있는 ‘교사용 참고서’ 역할을, 마지막으로 ‘율법과 복음의 관계’를 명징하게 설명했습니다. 한마디로 루터는 성경을 일반 교인들에게 돌려주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루터의 교리 교수법의 탁월함은 ‘문답식 교육’(148쪽)입니다. 하에델베르크나 웨스트민스터 요리문답을 보면 어떤 형태인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문제가 있고, 그에 대한 답이 있습니다. 교사가 물으면 학습자는 답을 암송해 대답합니다. 루터의 문답법 교육은 일종의 교사와 학생 간의 대화를 통해 만들어가는 풍성한 교육의 다양성을 제공해 주었습니다. 이후로 계속해서 만들어진 교리 교육서들은 대부분 루터의 문답식 교리교육을 따릅니다. 칼뱅이 만든 <제네바 교리 교육서>를 직접 인용하면 이렇습니다.(162쪽)

1. 목사: 우리 인생의 최종 목표는 무엇이지?
어린이: 하나님을 하는 것입니다.
2. 목사: 왜는 너는 그렇게 생각하지?
어린이: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셨고 우리를 이 땅에서 영화롭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종교개혁 시기에 교회와 국가의 합의와 학교 설립, 부모 교육의 강조 등 많은 변화들이 있지만 가장 탁월한 것은 문답식 교육이었다는 것은 반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정두성은 문답식 교육의 장점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이는 문답식 교육의 학습 효과가 알려지면서 자연스럽게 나타난 현상으로 보인다. 즉, 이 문답식 방법이 단순 서술식의 방법보다는 교회, 가정, 학교에서 어린이들을 가르치기에 훨씬 쉽고 효과적이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교리 교육서의 순서에 따라 교사와 학생이 자신의 부분을 읽어 가기만 하면 기본 학습이 가능하니 신학적 비전문가인 평신도들도 어렵지 않게 다룰 수 있었다는 것이다. 또한 가정에서 부모의 교리교육이 강조되면서 부모가 자녀에게 효과적으로 지도할 수 있는 방법이었기에 더더욱 선호된 것으로 보인다.”(174-175쪽)

초기 한국교회의 교리교육
 한국교회는 선교사 입국 이전부터 자체적으로 성경교육이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조선 중후반에 서학(西學)이란 이름으로 들어온 천주교는 학문적이었습니다. 서학은 성리학에 주도되는 관념과 허의 학문을 타파하고 백성을 위한다는 실학사상과 일체를 이루면서 학문을 넘어 종교적 형태로 발전하게 이르게 됩니다.
 우리나라는 처음부터 선교사들이 아닌 자체적으로 신앙을 공부하고 교육하는 구조가 어느 정도 만들어졌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이러한 형태는 선교사들이 입국하여 본격적으로 교리교육을 할 때도 평신도들의 활약이 도드라진 이유입니다. 존 로스 선교사에 의해 만들어진 우리나라 최초 교리 교육서는 <예수 성교 문답>과 <예수 성교 요령>입니다. <예수 성교 문답>은 문답식 형식으로 만들어졌고, <예수 성교 요령>의 경우는 ‘교리를 풀어서 설명하는 방식’(223쪽)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문답은 교사와 학생이란 수직적 구조지만, 해설 방식은 혼자서 스스로 읽고 공부하는 것을 말합니다.

 저자는 당시의 교리교육에 있어서 ‘권서’인이 ‘지대한 공을 세운 사람’(224쪽)으로 칭찬한다. 권서인들은 교리 교육서들을 팔기도 하고 사람들을 모아 놓고 직접 가르치는 일도 했습니다. 한국교회는 이전 교회들과는 상당한 다른 면모를 보였는데 바로 수많은 서적들의 출현이었습니다. 한 예로 모펫 선교사가 <신앙 가이드북>을 번역한 <위원 입교인 규조>는 교육용인데 ‘서술식 설명체’로 되어 있고, 교회 치리법과 몇 편의 찬송가도 함께 수록되어 있습니다.(227쪽) 또한 <십계 요해>와 <사도신경 요해> 등의 책을 통해 교리를 쉽게 설명했습니다.

 한국교회에서 가장 주목한 부분은 바로 권서들입니다. 그들은 선교사들의 입국 전이나 후에도 여전히 크게 활약했습니다. 선교사들이 발간한 소책자들을 전국 방방곡곡을 돌면서 책을 팔고 성경과 교리를 가르쳤습니다. 초기 한국교회 역사를 보면 서울이나 인천, 부산 등의 대도시뿐 아니라 통영, 강원 등지의 외진 곳에도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아직 선교사들의 발이 닿지 않는 곳에, 잠시 머물다 스쳐간 곳에 교회가 세워지는 일은 다분히 권서인들이 순회를 하며 성경을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정두영은 이렇게 말합니다.

 “권서들의 수고와 그 열매는 한국 기독교 초기 역사에 있어서 교회가 빠른 속도로 정착하는 데 가장 중요하게 작용된 요소 중의 하나 ... 성경과 교리 교육서를 보급하는 일만 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방문하는 지역에서 보급한 성경과 교리 교육서를 가르치는 역할도 수행했다는 것이다. 즉, 이들은 성경과 교리 교육서의 배포자임과 동시에 이것을 가르치는 방문 교사의 역할까지 한꺼번에 완벽히 수행해 낸 것이었다.”(237쪽)
 
나가면서
 지금까지 교회사에 나타난 중요한 교리교육에 대한 간략하게 살펴보았습니다. 제가 언급한 것은 극히 미미합니다. 책은 수많은 교리서와 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필자가 보기에 교리교육의 중요한 축은 ‘교리 교육서’와 ‘교사’입니다.
 초대교회와 종교개혁 시대, 우리나라 초기 교회 역사는 평신도 교사들의 역할이 얼마나 지대한 것인지를 잘 보여줍니다. 그들은 단순한 종교생활에 그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교회 사역자로 활동했습니다. 대부분의 시기 동안 교육은 대화 형식의 공부였다는 것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 명의 교사가 수십수백 명의 학생들을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근현대의 방식과는 너무나 달랐다는 것입니다. 정보 전달이 아닌 인격적 교제와 나눔을 통한 교육 방식이었습니다. 이러한 교육의 교사의 삶이 뒷받침하지 않으면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진리와 삶이 분리되지 않는 전인격적 교육이 참 교리교육의 형태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권위가 무용지물이 되고 이단들이 날뛰는 위기의 시대입니다. 교회가 부흥했던 시기는 말씀에 헌신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판에 찍어내는 공장식 교육이 아니라 만나고 대화하고 삶을 나누는 여정을 통해 교리교육은 든든히 세워져 갔습니다. 어쩌면 지금의 한국교회는 성장에 함몰되고 교인들 간의 친밀성이 왜곡되고 소원(疏遠) 해진 탓은 아닐까요? 권위 있는 참 교육은 사랑과 동참에 있다고 믿습니다. 교회 교육에 관심이 있는 목회자, 교사, 중직자들에게 이 책을 권합니다.
<저작권자ⓒCTMNews & ctmnews.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
 
 
 
 

주소: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상로 102 3층(초량동) | 인터넷신문등록번호:부산광역시 아00096 등록일자:2011.07.25

발행인/편집인 : 김성철, 청소년보호책임자 : 최종철 TEL : 070-7565-1407 FAX : 051-462-6698  | e-mail : ctmnews@ctm.kr

Copyright ⓒ 2011 http://ctmnews.kr All right reserved.

CTMNews의 모든 콘텐트(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