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 I, Daniel Blake

기사입력 2017.01.02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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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다니엘 블레이크 I, Daniel Blake, 2016

movie_image (2).jpg▲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 포스터
 

장르 : 드라마
제작 : 영국, 프랑스, 벨기에
시간 : 100분
개봉 : 2016.12.08

감독 : 켄 로치
출연 : 데이브 존스(다니엘),
        헤일리 스콰이어(케이티)





 창세기 1장은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위대한 선언으로 시작한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은 보시기에 좋았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인간도 하나님이 창조하셨다는 점이다. 게다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했고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 이보다 더 위대한 인권선언이 어디 있는가?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이다. 하나님의 존귀한 성품을 반영한 존재다. 그러므로 인간 자체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위대하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집트에서 오랫동안 사람대접을 받지 못했다. 그들은 파라오의 권력에 의해 노예로 전락했고, 재산을 몰수당했으며, 태어난 자녀가 죽임을 당하는 끔찍한 일을 겪어야 했다. 강제로 노동에 동원되어야 했고 노동에 대한 대가를 받지 못했다.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없었다. 야훼 하나님은 그들을 이집트의 속박에서 건져내셨다. 그리고 그들이 원래 얼마나 존귀한 존재들인지 알려 주신다. 파라오가 아니라 그들이, 모든 사람이 신의 형상이다.

 이어 야훼는 이스라엘에게 새로운 법을 주셨다. 모세를 통해 시나이 산에서 내린 율법은 그들이 야훼의 백성임을 선포했다. 야훼가 거룩하니 그들도 거룩한 자들이 되어야 했다. 야훼의 거룩을 반영하는 자들로 살아야 했다. 이어 율법은 그들을 종교적 거룩 뿐 아니라 삶의 거룩, 즉 공평과 정의를 구현하는 삶, 최소한의 인간다운 대접을 받는 삶, 그런 나라의 비전을 제시했다. 야훼의 율법은 구조적 가난에 처한 자들, 곧 고아와 과부, 나그네에 대한 돌봄을 포함했다.

 켄 로치의 신작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21세기 권리장전이다. 인권선언이다. 평생 목수 노동자로 살아온 다니엘은 심장병으로 인해 일을 계속할 수 없다. 일을 그만 둔 다니엘은 의사의 소견서를 바탕으로 실업급여를 신청했다. 그러나 실업급여 대상자가 될 수 없다는 통보를 받는다. 화가 난 다니엘은 고용청을 찾아가 자신이 상황을 호소하고자 하지만 직원은 퉁명스럽게 인터넷으로 사전 예약을 해야 상담이 가능하다고 하고 다니엘을 내몬다.
평생 성실한 목수 노동자로 살아온 다니엘에게 인터넷은 너무나 생소하다. 그는 컴퓨터 근처에도 가보지 않았다. 다시 전화로 상담하고자 하는 다니엘은 상담원이 통화중이니 기다리라는 기계음만 듣는다. 한 시간 정도 전화기를 들고 있다가 겨우 상담원과 대화하게 되었지만 상담원은 인터넷을 통해 신청하라는 말만 되풀이한다. 다니엘이 아무리 자신의 사정을 설명해도 동일한 말만 돌아온다. “규정이 그러합니다.” 무책임한 공무원들은 더 이상 고아와 과부, 나그네의 보호자가 아니다. 자신들의 역할을 망각한 자들이다.

 우여곡절 끝에 인터넷 카페에 찾아간 다니엘, 도대체 뭐가 뭔지 알 수 없다. 그에게 인터넷은 신세계다. 마우스 작동법조차 알 수 없는 다니엘이 자신의 실업급여 신청을 온라인으로 하는 과정 자체가 인생의 고단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다시 고용청을 찾아 간 다니엘, 그러나 직원의 반응은 한결같다. “규정대로 하세요.” 이게 도대체 뭐냐고, 나는 인터넷을 모른다고 항의하지만 그들은 오히려 경찰을 부르겠다고 협박한다. 이 지난한 실랑이를 보고 있노라면 도대체 제도가 무엇인지, 누구를 위한 것인지 분노가 치민다. 고용청 직원들은 그저 책상에 앉아서 마우스만 클릭할 뿐, 다니엘의 상황에 대한 공감은 전혀 없다. 그들은 사람을 만나지도, 그들의 상황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끝내 포기에 이르게 된 다니엘의 한 마디가 아스라하다.
“다 필요 없소. 사람이 자존심을 잃으면 다 잃은 거요. 당신들은 나를 사람으로 대접하지 않소.”

movie_image.jpg<그림출처 : 네이버 영화>
 자신의 상황을 포기한 채 돌아나서는 다니엘은, 자신과 비슷한 상황에 처한 케이티를 만난다. 케이티는 런던에서 뉴캐슬로 이주한 솔로맘으로 데이지와 딜런의 어머니다. 케이티는 단지 상담 시간에 10분 늦게 왔다는 이유로 신청 자체가 거부당한다. 케이티가 자신은 런던에서 온 지 얼마 되지 않고 지리를 몰라서 늦었다고 항의하지만 동일한 말만 되돌아온다. “규정이 그러합니다. 당신이 늦게 온 것이지 우리가 잘못한 것이 아닙니다.” 듣고 있던 다니엘은 큰소리로 항의하자 그들은 함께 청원경찰에 의해 쫓겨난다.

 다니엘은 케이티의 사정이 딱함을 지나칠 수 없어 그녀의 작고 낡은 집으로 함께 가게 되고, 이 가족이 전기세를 내지 못해 난방도 하지 못한 채 지내는 상황이 안쓰럽다. 게다가 데이지랑 딜런은 아직 어린아이들이 아닌가? 다니엘은 자신의 주머니에 남은 돈을 케이티 가족에게 건네고 돌아온다. “밀린 전기세를 내세요. 아이들은 따뜻하게 자야 해요.”

 켄 로치는 이렇게 다니엘과 케이티를 통해 우리의 현실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극 중 다니엘의 말처럼, 그는 게으름뱅이도 아니고 사기꾼도 아니고 거지도 아니고 보험증서의 숫자도 화면의 점도 아니다. 그러나 제도가, 소위 공무원이라 하는 자들이 그렇게 취급했다. 그를 인격이 아닌 숫자로, 감정도 없는 소모품으로 취급했다. 다니엘의 또 다른 대사를 보자. “이럴 시간 있으면 장관이나 체포하란 말이야. 대저택에 살면서 주택 제한법을 만드는 인간 말이야.”

 켄 로치는 굳이 가르치려 하지 않는다. 단지 다니엘과 케이티를 통해 현실을 그대로 보여줄 뿐이다. 로치 감독은 이론이 아니라 삶을 말한다. 그의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어느 새 가슴이 뜨거워지고 이어서 생각하게 된다. 다니엘은 곧 나라는 사실을, 존중받아야 할 사람은 바로 나라는 것을, 나 또한 개돼지가 아니라 한 사람이라는 것을, 신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존귀한 자라는 것을 느낀다.

 켄 로치 감독은 자신의 영화를 통해 희망을 불어넣고자 했다고 밝혔다. 자신은 영화를 통해 사람들을 일깨우고 가르치고 새로운 가능성을 위해 움직이게 하고 싶다고 했다. 그의 바람이 더욱 확장되기를 나 또한 소원한다. 이사야가 꿈꾸던 나라, 예수께서 선포하신 나라가 오늘 우리에게도 임하기를 기도한다. 고아와 과부를 돌보는 나라, 인간을 인간으로 대접하는 나라, 한 사람의 가치를 존중하는 나라를 소망한다. 다니엘이 손으로 쓴 마지막 말이 긴 여운으로 남는다.

 “나는 개가 아니라 사람입니다. 그렇기에 내 권리를 요구합니다. 나는 요구합니다. 당신들이 나를 존중해 주기를. 나는 한 명의 시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나는 존중받아야 할 사람입니다. 나는, 다니엘 블레이크입니다.”



김양현 목사.jpg▲ 김양현 목사 <기독영화 평론가>
 
 본 글을 기고한 김양현 목사는
서울 영천교회 청년 담당목사로 영화와 신앙의 통섭을 꿈꾸는
기독영화평론가이다.
부산 CBS 시네마 톡톡을 오랜동안 진행했으며 현재 각종 신문과
잡지에 기독교적 관점의 영화평을 기고하고 있다.
본 글은 월간고신에 기고한 글을 재연재 하는 것임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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