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무한대를 본 남자 The Man Who Knew Infinity

기사입력 2016.12.26 17:24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기사내용 프린트
  • 기사내용 메일로 보내기
  • 기사 스크랩
  • 기사 내용 글자 크게
  • 기사 내용 글자 작게
무한대를 본 남자 The Man Who Knew Infinity, 2015

qq.jpg▲ 영화 <무한대를 본 남자>의 포스터
 
장르 : 드라마
제작 : 영국
시간 : 108분
개봉 : 2016.11.03

감독 : 맷 브라운
출연 : 데브 파텔(라마누잔),
        제레미 아이언스(하디 교수)





 미국의 저명한 작가 폴 오스터는 [오기 렌의 크리스마스 이야기]에서 ‘현대인들의 피상성’을 다루었습니다. 극중 인물인 오기는 편의점을 운영하며 매일 아침 뉴욕의 거리장면을 찍습니다. 오랜 친구 폴이 그의 사진을 대충 보자 오기는 “내 사진은 집중해서 봐야 하네. 천천히.”라고 말합니다. 다시 본 사진 속에서 폴은 사람들의 표정, 배경, 감정을 느낍니다.

 인도의 가난한 남부 출신 라마누잔은 숫자를 기가 막히게 봅니다. 비록 정식 학교를 다니지는 않았지만 수학의 천재입니다. 독학으로 수학 교과서들을 다 탐독하고 그 어려운 수학 공식들을 깨닫습니다. 그의 천재성을 알아본 그의 상사는 한 통의 편지를 캠브리지 대학의 하디 교수에게 보냅니다. 라마누잔이 밝힌 수학 공식과 이론들을 접한 하디 교수는 할 말을 잃어버립니다. 자신이 오랫동안 최고의 교육기관에서 훈련받은 수학의 이론들을 라마누잔이 꿰뚫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디 교수는 즉시 라마누잔을 캠브리지로 불러들이고 그와 함께 수학 이론을 연구합니다. 물론 하디 교수는 라마누잔이 정식으로 학계에 이론 발표를 하기 위해서 필요한 과제와 그가 들어야 할 정규 과목을 주선해 줍니다. 객관적인 증거와 공식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라마누잔의 학업 성취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 심지어 지도교수를 뛰어 넘습니다. 이에 지도교수는 화가 나서 라마누잔을 수업에서 쫓아내고 하디에게 더 이상 지도하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습니다.

movie_image.jpg▲ <그림출처 : 네이버 영화>
 하디 교수만이 라마누잔의 천재성을 봅니다. 하디는 라마누잔이 이미 정규과정의 수준을 넘어섰으며, 어쩌면 자신의 학문적 성취까지 넘어설 수도 있음을 봅니다. 하디 교수 역시 숫자를 사랑하고 수학에 헌신한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수학에 대한 사랑, 헌신, 그리고 열정이 영화의 전반부를 채웁니다.

 
 그러나 라마누잔은 여러 가지 환경의 제약을 받게 됩니다. 우선 그는 인도인이자 힌두교도이므로 육식을 하지 않습니다. 때문에 학교 교직원 식당에 음식이 넘치지만 그는 따로 야채를 사다가 방에서 끓여 먹습니다. 또한 라마누잔은 고향에 두고 온 아내로부터의 편지가 오지 않자 심적 동요를 느낍니다. 설상가상으로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해서 학내에 군인들이 주둔하고 캠퍼스가 야전병원으로 이용됩니다. 물론 교수들도 징병되고 어려움에 처하게 됩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 라마누잔의 건강은 심각하게 악화되고 연구에 대한 열정도 식어집니다.
  
 동시에 하디 교수는 교수회에 라마누잔을 정식 조교수로 임명해 줄 것을 요구하지만, 이것 역시 막히게 됩니다. 이유인즉 라마누잔이 정식과정을 밟지 않았기 때문이고, 그가 인도인이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디 교수는 그의 탁월한 학문적 성과만으로 충분히 그를 인정하나, 동료 교수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이 선입견, 피상적 이해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장면들입니다.

 영화 후반부에 이르면 하디 교수와 라마누잔의 갈등도 발생합니다. 하디 교수가 라마누잔에게 무한급수, 연분수, 수의 분할 공식 등의 연구를 재촉합니다. 그것만 완성되면 왕립협회 교수로 추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연구에 별 성의를 보이지 않는 라마누잔에게 하디는 역정을 냅니다. 그 때 라마누잔이 말합니다. “교수님, 저에게는 아내가 있습니다. 고향으로부터 편지가 끊어진 지 벌써 2년입니다.” 하디 교수의 시선이 흔들립니다. 그렇습니다. 그는 단지 동료 수학자로서만 라마누잔을 대하였을 뿐, 그의 가정사, 그의 감정, 그의 고뇌를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자신조차 라마누잔을 피상적으로 알고 있었다는 사실 때문에 하디는 흔들립니다.

 영화는 우리에게 말합니다. 삶의 위대함은 어떤 업적이 아니라 관계에 있다고 말입니다. 우리는 너무 공적이고 객관적입니다. 그러나 삶은 주관적 감정과 진지한 대화, 서로에 대한 깊은 자각에 있습니다. 그것이 인간이고 삶의 본질임을 가르칩니다.
마이클 프로스트 교수는 우리에게 ‘눈을 크게 뜨라’고 가르쳐 줍니다. 그의 책 [일상 하나님의 신비](eyes wide open)에서 우리가 얼마나 피상적으로 서로를 대하는 지, 현대인의 관계가 얼마나 기계적인지 말합니다. 우리는 서로를 직책으로, 직함으로, 일적 관계로 여깁니다. 그러나 한 번 더 눈을 크게 뜨고 찬찬히 들여다보면, 우리가 상대하는 사람은 누군가의 아들이자 딸이며, 누군가의 가장이며, 누군가의 어머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인격적 관계며 사랑의 관계입니다. 이 사실을 깨달을 때 우리는 서로에게 더욱 진지해지고, 삶은 풍성해 집니다. 마틴 부버가 말한 바, ‘나와 너’의 관계, 사랑의 공동체가 됩니다.

 [무한대를 본 남자] 제목이 다소 애매합니다. ‘무한 가능성을 본 사람’이 더 낫다고 여겨집니다. 피상성의 눈꺼풀이 벗겨질 때, 사랑과 인격의 눈이 떠질 때 우리는 서로에게서 무한한 가능성을 보게 될 것입니다. 도스토예프스키처럼 그리스도 안에서 놀랍게 변화될 가능성의 사람으로 보게 될 것이며, 폴 브랜드 박사처럼 회복되고 치유될 미래적 존재로서 환자를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한 인격, 사랑의 눈을 뜬 사람들, 서로에게서 무한한 가능성을 볼 수 있는 사람들, 그런 공동체, 사회를 만들어 갈 수 있기를 가을이 깊어지는 시점에서 희망해 봅니다. 우리는 사랑받기 위해, 사랑하기 위해 존재하기에.


 
김양현 목사.jpg▲ 김양현 목사 <기독영화 평론가>
 
본 글을 기고한 김양현 목사는
서울 영천교회 청년 담당목사로 영화와 신앙의 통섭을 꿈꾸는
기독영화평론가이다.
부산 CBS 시네마 톡톡을 오랜동안 진행했으며 현재 각종 신문과 잡지에 기독교적 관점의 영화평을 기고하고 있다.
본 글은 월간고신에 기고한 글을 재연재 하는 것임을 밝힌다.
<저작권자ⓒCTMNews & ctmnews.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
 
 
 
 

주소: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상로 102 3층(초량동) | 인터넷신문등록번호:부산광역시 아00096 등록일자:2011.07.25

발행인/편집인 : 김성철, 청소년보호책임자 : 최종철 TEL : 070-7565-1407 FAX : 051-462-6698  | e-mail : ctmnews@ctm.kr

Copyright ⓒ 2011 http://ctmnews.kr All right reserved.

CTMNews의 모든 콘텐트(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